주간동아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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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치생명 OFF 되나

탄핵 주역들 역풍에도 변치 않는 소신 … 구세대 낙인 설자리 찾기 쉽지 않을 듯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4-14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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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정치생명 OFF 되나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야 3당 대표(최병렬, 김종필, 조순형· 왼쪽부터)가 3월13일 한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 수성갑 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선거기간 동안 매일 아침 부인 김금지씨가 다려주는 바지를 입었다.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8~10km.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이 길을 조대표는 쉬지 않고 걸었다.

    조대표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

    조대표의 선거전은 꼬장꼬장한 그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난다. 마이크를 잡는 것도, 로고송을 활용하는 것도 거부했다. 쇼를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공약도 없다. “아는 것도 없는 지역에 무슨 공약을 하느냐”는 조대표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1월 대구 출마를 선언했을 때 지역민과 언론은 조대표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탄핵안 가결 후 조대표는 설자리를 잃었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웬 고생이냐”는 측근들의 푸념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 그러나 조대표는 탄핵 역풍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지금도 탄핵은 소신의 산물로 생각한다.

    그는 4월7일 “탄핵의 정당성과 불가피성, 역사성 등에 대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봄바람처럼 지역 유권자들을 유혹하는 박풍(朴風·박근혜 바람)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지역구를 휩쓰는 이 바람에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조대표측은 박풍의 벽을 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총선 후 조대표의 활동공간은 그만큼 열악해질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서울’은 이제 새로운 질서가 꿈틀거린다. 추미애 선거대책위원장과 공천을 놓고 벌인 갈등과 파워게임 뒤 그에 대한 당내외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법을 어긴 대통령은 탄핵해야 한다”는 소신(?)은 지켰지만 정치생명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적장의 목을 벤다’는 그의 운세는 사실이 될 수 있을까.

    삭풍이 부는 황야에 홀로 선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처지도 조대표보다 나을 것이 없다. 조대표는 그나마 출마라도 했지만 최 전 대표는 이마저도 봉쇄당하는 설움을 겪었다. 소장파 및 공천심사위원들과 기싸움을 벌이며 ‘비례대표’로 부활을 노렸지만 “노욕을 부린다”는 핀잔만 듣고 밀려났다. 3월 말, 일본으로 가 온천욕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지만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억울한 심정은 지금도 다스리기 어려운 지경이다. 총선 막판 최 전 대표는 모든 것을 잊고 부산과 경남, 울산을 돌며 선거지원에 나섰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최 전 대표의 총선 후를 향한 행보다. 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총선 결과에 따라 최대표의 역할은 달라질 것”이라며 정치적 재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원내 진입과 관련, “아직 그 문제를 논할 시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최 전 대표 주변에서는 그가 재·보궐 선거에 출마, 재기를 노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새로 등장한 박근혜 대표의 정치력과 지도력이 예상보다 훨씬 굳건하다. 대중성도 최 전 대표보다 뛰어나다. 최 전 대표는 뒷물에 밀려나는 ‘장강의 앞물’ 신세를 면키 어려워 보인다.



    탄핵안이 아직 세를 얻지 못한 3월 초, 박관용 국회의장은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때 국회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루 수백건의 항의 메일이 쏟아졌다. 16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5월 말, 정계은퇴가 예정된 박의장으로서는 손에 묻은 이 피를 씻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손을 씻을 기회와 공간 확보는 쉽지 않다. 박의장의 정치이력에는 이제 항상 ‘피의 역사’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박의장도 이 점이 걸리는 듯하다. 그는 탄핵안 가결 후 국회의장 홈페이지에 “제게 소망이 있다면 입법부의 권능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한 의회인으로 기록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의장은 최근 자신의 공보수석을 한 최구식 한나라당 후보(경남 진주갑)를 찾아나섰다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유용태 민주당 원내대표와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 등 탄핵정국의 실질적인 코디네이터들 역시 총선을 맞아 악전고투 중이다. 이미 정치는 내용적으로 그들을 변방으로 돌릴 준비를 끝내놓고 상황을 관망 중이다. 유원내대표는 당내 소장파의 ‘한·민공조’라는 비판과 사퇴 압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완벽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등 정면 승부를 걸었다. 그는 홍총무와 수시로 접촉하고 대책을 숙의했다. 막판까지 탄핵안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소속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표 단속을 했다. 그러나 역풍은 엄청났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그런 그를 민주당을 망친 인사로 규정하고 공천장을 뺏으려 했다. 조대표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공천장을 지켰지만 기운은 빠질 대로 빠진 상태.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는 열린우리당 이계안 후보가 내세우는 탄핵심판론이 어느 지역보다 무성하다.

    민주당에 조대표가 있다면 한나라당에는 홍총무가 있다. 탄핵안 가결에 모든 정력을 쏟은 그 역시 쉽지 않은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고양 일산갑 지역에서 한정적으로 탄핵찬반 선거를 치를 것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제안했으나 그의 말은 일거에 ‘천박한 제안’으로 전락해버렸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JP)가 사는 방법은 이들과 조금 다르다. 탄핵안 가결 대열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던 JP는 4월9일 “자동폐기하는 정도가 좋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뜻과 달리 됐다”며 다른 입장을 토로했다. 그러나 “가결해놓고서 취하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마지막 자존심을 세웠다. JP는 이번에 등원하면 10선을 기록한다.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 탄핵 후폭풍이다. JP의 유연한(?) 입장은 이런 정치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탄핵에 분노한 충청권 유권자들은 자민련과 JP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JP를 수행하고 충청권을 돌고 있는 K씨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고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2선 후퇴를 요구하는 소장파들의 목소리가 공공연히 당사를 감싸는가 하면 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열린우리당은 민심을 압도한다.

    탄핵주역들은 대부분 탄핵을 소신으로 포장한다. 탄핵에 반대하는 70%의 국민들은 그들의 이런 소신이 못마땅하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던 그들이 탄핵위기에 몰린 배경이다. 탄핵주역들은 국민들의 이런 판단에 따라 총선 관문에서 상당수가 낙오할 수밖에 없었다. 탄핵은 박근혜-정동영-추미애 등 여야의 얼굴을 50대로 물갈이한 채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탄핵’의 아이러니한 순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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