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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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자들의 고민과 방황

  • 입력2004-04-16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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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이민자들의 고민과 방황
    “어느 날 문득, 외로운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인의 딸 결혼식을 앞두고 모인 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화려한 치장 속에 감추어진, 남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서글픔과 안간힘, 또 두려움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민자의 시각에서 재미동포의 삶을 그린 ‘475번 도로 위에서’(동아일보사 펴냄)로 제36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동포 이경숙씨(54·사진).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한 그는 ‘일요신문’ 기자로 일하다 1975년 유학생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 톨리도에서 가발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너무 외롭고 심심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 우울증이 없어지고 피가 끓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475번 도로 위에서’는 톨리도에 사는 중년 여성 서경과 그를 둘러싼 동포들의 다양한 삶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서경은 대학교수인 남편과 대학생인 아들 딸과 함께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아들이 동성애자이며 게이바에서 춤을 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서경은 충격에 휩싸인다.

    고민의 무게는 다른 이웃도 마찬가지. 시끄럽고 천박한 분위기의 장씨 부부, 고교 동창이자 연적이었던 현이 등도 서경 못지않다. 결코 낙원이 아닌 이민지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서경은 서울을 떠올린다. 그러나 서울 방문 뒤 서경은 결국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곳은 지금 살고 있는 땅임을 재확인한다. 그래서 475번 순환도로가 감싸고 있는 작은 도시 톨리도에서 외로운 이민자들끼리 서로 갈대처럼 의지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은 서사적 힘이 있고 유머도 담고 있다. 소설가 이남희씨는 이 소설에 대해 “미국 이민사회를 내부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선 눈에 띈다. 더구나 이민자들의 고민과 방황을, 한국으로의 귀환이 아닌 그 땅 그 사회에서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은 것이 특히 신선하다”고 평했다.



    이경숙씨는 “미국에서의 삶도 한국에서의 삶과 마찬가지로 쓸쓸하고 남루하다”며 “어차피 삶은 길 위의 인생이다”고 말했다. 아침에 샤워할 때, 혹은 트레드밀에서 달리기할 때 많은 생각을 한다는 그는 “생각할 기회가 적은 현대인들이 혼자 있을 때 뭔가 생각케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50대 늦깎이로 문단에 발을 내디뎠지만 문학적 포부만큼은 20대 못지않게 신선했다.



    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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