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은 북한이 금강산 치마바위에 자연을 훼손해가며 큰 글씨로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이라고 새겨놓은 데서 비롯되었다. 민중서림에서 나온 ‘엣센스 국어사전’에는 ‘천출’이라는 단어가 단 한 개 나오는데, ‘賤出’이라는 한자 뒤에 그 뜻을 ‘천첩(賤妾)에게서 난 자손’이라고 풀어놓았다. 북한 언어문화연구소 사전연구실에서 펴낸 ‘조선말 사전’에도 단 하나의 천출이 나오는데, 역시 ‘賤出’이라는 한자와 함께 ‘낡은 사회에서 첩의 몸에서 난 사람을 천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밝혀놓았다.
그러니까 남·북한을 막론하고 ‘천출’은 ‘천하게 태어났다(賤出)’로 먼저 이해될 수밖에 없다. ‘하늘이 낳았다’는 ‘천출(天出)’은 조어적 성격이 강해 그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그래서 과거 금강산 지역을 방문했던 한국 기자들은 이 글귀를 볼 때마다 “미천할 천 자 천출이냐, 하늘 천 자 천출이냐? 북한은 봉건 유습인 계급을 타파했다는 사회이니, 미천할 천 자 천출이 옳은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킥킥’거리곤 했다.
차이점은 통일부 통일정책실의 이모 사무관이 4월2일 오후 1시쯤 금강산의 김정숙휴양소에서 남북의 공무원들이 5대 5의 비율로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뿐이다. 그 순간 남북의 공무원들이 뻣뻣이 굳어졌고 동석했던 북측의 보위부(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하다) 요원이 상부에 보고함으로써 ‘천출’은 태풍의 눈이 돼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무산시킬 뻔한 빌미가 돼버렸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8년간 타 부처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통일부로 옮겨온 이사무관은 이 일로 위기를 맞았고, 언론 접촉을 피하며 감사관실의 감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남북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돼 더 많은 한국인이 개성공단 등을 방문하거나 그곳에 상주한다면, 자유로운 문화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북한인들이 ‘형식상’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다는 김정일 배지를 던지거나 김정일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으로 더러운 것을 닦거나, 그 신문에 침을 뱉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남북은 ‘배지 파문’과 ‘사진 사태’를 일으킬 것인가.
남북 교류 과정서 겪어야 할 통과의례?
1980년대 3통(通)정책을 펼치며 ‘대륙’ 중국과 과감하게 접촉했던 대만은 별의별 문제를 다 겪으며 양안(兩岸)관계를 발전시켰다. 대만이 대륙과 접촉하며 겪은 문제 중에는 내놓고 말하기 힘든 것도 적지 않았다. 이중에는 대륙에 공장을 차린 대만의 기혼 남성이 대륙 여성을 현지처로 두고 ‘양안 살림’을 하다가 급사해, 유산 다툼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대개 대만의 본부인이 남편 재산을 상속하려고 할 때 대륙의 현지처가 아이를 앞세워 친자확인 소송과 함께 상속권을 요구하는 형태로 터져나왔다.
이 사건은 개인에게는 잊기 힘든 상처를 주었지만, 양안관계에서 본다면 ‘발전’의 계기도 되었다. 대만의 사법부는 친자를 인정해 대만 아버지의 재산이 대륙의 아이에게도 상속되도록 판결했는데, 이러한 선고는 오히려 대만과 대륙을 결합시키는 요소로 작용한 것. 이런 전례로 보아 이사무관의 천출 발언이 당장은 남북 갈등을 일으키지만, 결국은 남북을 잇는 가교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두 문화의 ‘접속’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1월29일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열린 제1차 남북경제협력제도 실무접촉으로 타결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다. ‘통행합의서’로 약칭되는 이 합의에는 개성과 금강산 지역을 방문하거나 머무는 한국인이 북한의 관습이나 법률에서 금하는 행동을 했을 때는 남쪽으로 추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합의서가 발효되려면 남측이 국회 비준을 받고, 북측도 국회 비준에 상응하는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남북이 얽혀들다 보면, 천출 파문은 오히려 양쪽의 급속한 접근을 회상하는 ‘추억거리’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북한을 막론하고 ‘천출’은 ‘천하게 태어났다(賤出)’로 먼저 이해될 수밖에 없다. ‘하늘이 낳았다’는 ‘천출(天出)’은 조어적 성격이 강해 그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그래서 과거 금강산 지역을 방문했던 한국 기자들은 이 글귀를 볼 때마다 “미천할 천 자 천출이냐, 하늘 천 자 천출이냐? 북한은 봉건 유습인 계급을 타파했다는 사회이니, 미천할 천 자 천출이 옳은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킥킥’거리곤 했다.
차이점은 통일부 통일정책실의 이모 사무관이 4월2일 오후 1시쯤 금강산의 김정숙휴양소에서 남북의 공무원들이 5대 5의 비율로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뿐이다. 그 순간 남북의 공무원들이 뻣뻣이 굳어졌고 동석했던 북측의 보위부(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하다) 요원이 상부에 보고함으로써 ‘천출’은 태풍의 눈이 돼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무산시킬 뻔한 빌미가 돼버렸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8년간 타 부처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통일부로 옮겨온 이사무관은 이 일로 위기를 맞았고, 언론 접촉을 피하며 감사관실의 감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남북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돼 더 많은 한국인이 개성공단 등을 방문하거나 그곳에 상주한다면, 자유로운 문화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북한인들이 ‘형식상’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다는 김정일 배지를 던지거나 김정일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으로 더러운 것을 닦거나, 그 신문에 침을 뱉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남북은 ‘배지 파문’과 ‘사진 사태’를 일으킬 것인가.
남북 교류 과정서 겪어야 할 통과의례?
1980년대 3통(通)정책을 펼치며 ‘대륙’ 중국과 과감하게 접촉했던 대만은 별의별 문제를 다 겪으며 양안(兩岸)관계를 발전시켰다. 대만이 대륙과 접촉하며 겪은 문제 중에는 내놓고 말하기 힘든 것도 적지 않았다. 이중에는 대륙에 공장을 차린 대만의 기혼 남성이 대륙 여성을 현지처로 두고 ‘양안 살림’을 하다가 급사해, 유산 다툼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대개 대만의 본부인이 남편 재산을 상속하려고 할 때 대륙의 현지처가 아이를 앞세워 친자확인 소송과 함께 상속권을 요구하는 형태로 터져나왔다.
이 사건은 개인에게는 잊기 힘든 상처를 주었지만, 양안관계에서 본다면 ‘발전’의 계기도 되었다. 대만의 사법부는 친자를 인정해 대만 아버지의 재산이 대륙의 아이에게도 상속되도록 판결했는데, 이러한 선고는 오히려 대만과 대륙을 결합시키는 요소로 작용한 것. 이런 전례로 보아 이사무관의 천출 발언이 당장은 남북 갈등을 일으키지만, 결국은 남북을 잇는 가교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두 문화의 ‘접속’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1월29일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열린 제1차 남북경제협력제도 실무접촉으로 타결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다. ‘통행합의서’로 약칭되는 이 합의에는 개성과 금강산 지역을 방문하거나 머무는 한국인이 북한의 관습이나 법률에서 금하는 행동을 했을 때는 남쪽으로 추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합의서가 발효되려면 남측이 국회 비준을 받고, 북측도 국회 비준에 상응하는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남북이 얽혀들다 보면, 천출 파문은 오히려 양쪽의 급속한 접근을 회상하는 ‘추억거리’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