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바닥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기자. 이틀 동안 스킨스쿠버 교육을 받고 뛰어든 바다는 환상 그 자체였다. BSAC 박종섭
고개를 돌리니 뱀 한 마리가 날쌔게 유영하고, 뱀이 지나간 길을 거북이가 날렵하게 내달린다. 어디 그뿐이랴. 해초에 매달린 새우가 수줍게 입을 오물거리고, 바닥을 기던 게는 잽싸게 눈을 꺼내 오도카니 이방인에게 눈길을 준다. 바닷속으로의 여행은 환상적이다. ‘태초에 바다가 있었다’고 했던가. 다이버는 원시(原始)의 순결함을 그대로 간직한 바다의 풍광에 어느새 스스로 바다가 되어 조류와 함께 출렁인다.
필리핀 민도로 섬 인근의 바닷속 풍광이다. 민도로 섬에서 만난 물속 신비경은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게눈 감추듯 날려버렸다. 누구나 3일 정도의 교육을 받고 물에 대한 두려움을 던져버리면 이런 천혜의 비경을 맛볼 수 있다. 다이버들은 “한번 바닷속에 들어간 사람은 평생토록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찌 그 광대한 풍광과 자유를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있으랴.
BSAC인스트럭터 박상호씨(37)는 “스킨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 어려운 레저스포츠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시간을 내면 3주 동안 기초교육을 마치고 바다 다이빙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규 과정은 이론 강의를 2~3일 듣고, 수영장에서 4일 동안 실기 강습을 받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속성 코스’로 3일 정도 교육을 받으면 조류가 심하지 않은 초보자용 다이빙 포인트에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바닷속에서 실습을 할 수 있는 셈이다.
BSAC 박종섭
이론교육을 마치고 리조트 뒤편의 수영장으로 향했다. 촉촉한 잠수복이 몸을 죄어오고 다리에 낀 핀이 영 부자연스럽다. 오리발질은 평소 수영장에서 핀 수영으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손쉽게 OK. 자유형킥과 배영킥은 각각 10분 정도 연습하고 통과할 수 있었다.
수심 3m 잠영을 할 순서다. ‘수영장이니까 죽지는 않겠지’ 하며 납으로 된 웨이트(물에 가라앉도록 허리에 차는 장비)를 둘러매고 수영장 중앙으로 몸을 움직이는데 벌써부터 숨이 막혀온다. 공기가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 걱정이 돼서 연신 호흡기에 입이 간다. 강의는 ‘다이빙을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물에 대한 두려움만 사라지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BSAC 박종섭
6시간 동안 계속된 수영장 교육을 마치고 드디어 바다 실습에 나섰다. 다양한 수중생물과 교감하며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발을 담그고 1m, 1m씩 내려갈 때마다 펼쳐지는 장관은 어느새 공포를 잊게 만든다. 바다 바닥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젖혀 일렁이는 태양을 바라볼 때의 감흥은 감히 형언하기 어렵다.
바닷속에서 다른 다이버들을 보는 것도 다이빙의 즐거움 중 하나다. 모두가 인어처럼 날렵하게 바다를 가로지른다. 안종대씨(43·회사원) 부부는 손을 꼭 잡고 함께 움직였다. 크기가 2m가 넘는 뱀이 부인 김명숙씨(43) 앞을 지나가자 부부 간의 실랑이가 시작된다. 뱀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부인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잽싸게 부인을 끌어당기는 남편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동반자 없이 단독으로 다이빙을 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돼 있다. ‘버디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규칙에 따라 반드시 2명이 한 조를 이뤄 움직여야 한다. 부부가 함께 즐기기에 딱 알맞은 레저스포츠인 셈이다. 5~6쌍의 버디로 이뤄진 한 팀의 선두엔 물길을 아는 현지 다이버가, 맨 뒤에는 낙오자를 방지하는 ‘감시자’가 조금 높게 유영하며 앞으로 헤엄치지 못하는 다이버들을 도와준다.
다이빙을 마치고 배에 오르는 순간의 상쾌함 역시 말을 잊게 한다. 수중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을 함께 보며 바닷속 경험을 복기하면서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맛보게 해준다. 다이버들은 “바닷속 첫 물질은 첫날밤만큼이나 설레는,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조여오는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말한다. 바다에 몸을 담가본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