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대회가 끝난 뒤 한국을 방문한 어느 재미교포가 “미국에서는 월드컵 중계를 볼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축구를 여성이나 아이들의 스포츠로 생각하기 때문에 인기가 없어 중계도 잘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축구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은 당연하고 한국의 과잉 열기가 의아하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지만, 우리는 거꾸로 그런 미국이 의아할 뿐이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한국학)는 문화비평서 ‘콜라 독립을 넘어서’에서 스포츠에 나타나는 미국인의 ‘선민의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운동 경기에 관한 한 미국은 이상한 나라다. 전 세계가 환호하는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고 자기들만 즐기는 스포츠를 만들어놓고 미국 안에서만 이게 전 세계려니 하고 좋아한다.” 그 예가 야구와 미식축구다. 최교수는 미국 야구의 ‘월드 시리즈’를 이렇게 꼬집었다. “미국 내에서 경기를 해서 결승전까지 올라온 두 팀이 싸우는 거면 아메리칸 시리즈지 왜 월드 시리즈인가.”
이처럼 미국과 세계를 동일시하는 그들의 자국중심주의와 선민의식에 대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오만한 제국’이라고 이름붙였다. 미국의 패권은 신국제주의-미국이 자유주의 확산과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맏형 노릇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타국의 국가주권에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와 경제적 풍요에 기초한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인구, 교육 수준, 천연자원, 경제발전, 사회적 통합력, 정치적 안정, 군사력, 이데올로기적 호소력, 외교적 동맹관계, 기술적 업적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미국의 우월성이 지속적 패권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다차원적 힘이 미국을 지탱하는 한, 일시적 쇠퇴는 있어도 쉽게 패권을 내줄 일은 없다고 전망했다. 이것은 80년대 말에 내놓은 전망이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적자예산·총격사망자 등 창피한 1등 수두룩
하지만 미국은 긍정적 의미에서만 1등이 아니다. 다음은 독설가로 알려진 마이클 무어(영화감독 겸 작가)가 밝힌 또 다른 리스트. 미국은 군사비 지출 많기로 제일, 적자예산 많기로 제일(국내총생산과 비교해서), 총격 사망자수 많기로 제일, 강간범 많기로 제일(2위 국가의 3배), 국제인권협약들에 서명 안 한 건수 많기로 제일이다. 그 밖에 중학생들의 수학점수 낮기로 제일이요, 1인당 연간 쓰레기 배출량 많기로도 제일이다.
이런 ‘나쁜 미국’의 모습은 ‘좋은 미국’에 가려져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꺼운 화장이 지워지고 있는 지금, 세계는 기만과 위선으로 얼룩진 미국의 맨얼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최근 잇따른 미국 기업들의 부패 스캔들이다.
미국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을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미국식 주식회사 시스템의 근원적 결함이라는 시각과, 제도상의 보완을 통해 극복 가능한 범죄행위 정도로 보는 시각이다.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체제가 드러내온 문제점을 꾸준히 비판해 온 인천대 이찬근 교수(무역학)는 “주주이익만 중시하는 미국식 주식회사제도의 모순이 내부감시 시스템을 유명무실화했다”면서 “종업원에게 감사위원회 추천권을 부여하는 등 내부감시 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대 최도성 교수(경영학)는 “주주자본주의의 특성상 단기간 업적을 내기 위해서라면 회계부정 말고도 다른 방법이 많다”며 최근 일련의 부패 스캔들을 주주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한계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또 기업의 투자 시스템이 고도화하면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기업의 재무전략이 간단할 때는 주식투자자를 비롯한 이해 관계자들이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기업들의 투자전략이 너무나 다양해져 이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는 회계부정 시리즈의 신호탄은 지난해 말 터진 엔론 스캔들이었다. 엔론의 부실을 눈감아주고 관련 문서까지 파기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아서 앤더슨사는, 한쪽에서 엔론 이익의 과다 계상을 눈감아주면서 다른 한쪽에서 엔론에 투자자들을 끌어다 주어 짭짤한 수수료를 챙겼다. 회계법인과 피감사기업의 관계가 ‘견제와 감시’에서 ‘밀월과 유착’으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미국 기업 시스템을 사실상 외부에서 감시해 온 제도는 주주들의 소송이다. CEO나 회계법인의 부정은폐 행위가 감지되면 주주들은 여지없이 소송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엔론 월드컴 제록스 등 회계부정 시리즈의 주역인 어느 기업도 주주소송이 제기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번 스캔들은 미국이 자랑해 오던 내부 감시와 견제 시스템이 붕괴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식 시스템에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라는 원리가 작동한다. 의회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인사들을 시도 때도 없이 청문회에 세우고, 집요한 언론은 ‘건수’만 포착하면 대통령까지도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내부감시 제도의 대표격인 회계 감시 시스템의 붕괴는 곧 주식회사의 근간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어처구니없게도 미국의 시장감시 시스템은 기업들로 하여금 입맛에 맞는 회계법인을 선택할 수 있게 방치함으로써, 시장의 신뢰 상실과 증시 폭락으로 이어지는 ‘화’를 자초했다. 외부의 공격에 의한 붕괴가 아니라 자멸이었던 것. 그러면서도 미국은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적 자본주의를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손가락질하는 데 앞장섰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미국의 비극이다.
‘견제와 균형’ 원리 무너진 미국식 자본주의
물론 잇따른 회계부정 사건과 주가 대폭락, 달러화 약세로 이어지는 금융불안을 당장 미국 경제 전반의 위기, 나아가 미국 패권의 쇠퇴로까지 확대해석 하는 데는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련의 스캔들이 쉽게 미국식 세계화 반대론자들의 손을 들어줄지도 의문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따지고 있는 사이 미국 경제를 떠받치던 투자자들이 이미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시장’을 내세우던 미국이 냉혹한 ‘시장의 심판’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와 미국’의 저자인 이삼성 교수(교토 리쓰메이칸대 객원교수·정치학)는 “미국의 경기 사이클과 헤게모니 쇠퇴를 직접 연관짓는 단선적 진단은 설득력이 없다(이미 80년대와 90년대 초 언론과 학자들이 반복했던 오류)”는 것을 전제로 미국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부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군비확장 예산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감면 추진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추진했던 정책의 복사판으로 경제불황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미국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세계적인 군사적 개입주의와 함께 ‘제국의 과잉확장’ 상태를 현실화하면서 미국의 제국적 기반의 약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99년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와 가진 대담에서 “21세기도 아메리카의 세기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음 세기는 누구의 세기도 아닐 것이다. 세계는 한 나라에 의해 지배되기에는 너무 넓고 복잡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근거로 20세기를 아메리카의 세기로 만든 원동력, 즉 거대한 경제력과 문화적 헤게모니가 과거처럼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들었다. 덧붙여 “세계 경찰이 되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겠다는 미국의 열망 뒤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때 미국은 이런 경고에 귀기울였다. 특히 일본에게 추월당한 80년대 미국사회는 위기의식이 팽배했고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쇠퇴론’을 주장한 미래학자 폴 케네디다. 하지만 90년대를 관통한 예상 밖의 긴 경제호황과 견고한 미국 독주체제는 긴장의 끈을 늦췄고 “21세기에도 미국을 대체할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이 없다”는 헌팅턴의 낙관론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한신대 김명섭 교수(국제정치학)는 2002년 ‘시민과 세계’ 창간호에 기고한 ‘포스트 9·11의 미국과 한반도’라는 글에서 ‘미국 안에서 없어지는 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경제적 풍요 속에서 많은 미국인들의 관심사는 보다 나은 물질적 풍요, 보다 긴 수명, 보다 행복한 가족에 매몰되었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세계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고, 그러한 미국인들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정책은 문명적 융합을 통한 국제적 표준의 수립이 아닌 미국적 표준의 세계화라는 일방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사일방어망이라는 새로운 우산이 제공해 주는 막연한 안전감에는 너그럽지만, 국제평화를 위해 다른 나라 국민들과 머리를 맞대는 데는 인색하다.”
미국의 창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와 조우 기회
결과적으로 미국을 뒤흔든 회계부정 사건도 신경제 10년 호황의 후유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일회계법인 대표를 지낸 이화여대 김일섭 교수(경영학)는 “10년 호황을 겪으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소송을 내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한마디로 조기경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호황기에는 드러나지 않던 문제들이 미국 경제가 주춤거리면서 비로소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일 뿐,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9·11 테러 이후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추락과 함께 연이은 부패 스캔들로 ‘상처 투성이 거인’이 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내부 고발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과거 석학들의 점잖은 충고와 달리, 언론인들이 앞장서 미국의 맨얼굴을 까발리고 시민들의 자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호들갑스럽다.
현 부시 대통령의 당선 과정을 ‘순 미국식 쿠데타’라고 몰아붙인 마이클 무어의 ‘멍청한 백인들’이나, 팍스 뉴스 채널에서 시사토크 ‘오릴리 팩터’를 진행하고 있는 스타 저널리스트 빌 오릴리의 ‘좋은 미국, 나쁜 미국, 멍청한 미국’은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LA라디오방송국 시사토크쇼 진행자이며 입바른 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흑인 출신 변호사 래리 엘더도 ‘미국인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미국에서 말해서는 안 될 10가지’에서 미국사회의 위선을 철저하게 벗겨냈다. 인종차별은 흑인이 백인보다 더 심하다, 백인들의 생색주의가 인종차별보다 더 심각하다, 미국의 복지정책이 진짜 복지를 망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이 오히려 무고한 시민들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등등 미국 사회가 뭔가 확실히 잘못돼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 역사학자 모리스 버만은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둔재생산국으로 전락한 미국이 몰락이라는 역사적 숙명을 향해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당장이라도 붕괴될 것처럼 떠드는,거의 자학에 가까운 ‘미국인에 의한 미국 비판’을 마냥 통쾌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한양대 공성진 교수(미래학)는 “경제 분야에서 나타난 한두 개 징후만 가지고 미국의 쇠퇴를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면서 “일부 균열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과 원칙,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국민 통합 등의 면에서 미국은 여전히 강한 나라”라고 했다. 다만 한국 사회가 이제야 비로소 미국이라는 창(窓)을 통하지 않고도 세계와 조우할 자신감을 갖게 된 점이, 절대 승자가 사라지는 국제사회에서 얻는 큰 수확일 것이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한국학)는 문화비평서 ‘콜라 독립을 넘어서’에서 스포츠에 나타나는 미국인의 ‘선민의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운동 경기에 관한 한 미국은 이상한 나라다. 전 세계가 환호하는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고 자기들만 즐기는 스포츠를 만들어놓고 미국 안에서만 이게 전 세계려니 하고 좋아한다.” 그 예가 야구와 미식축구다. 최교수는 미국 야구의 ‘월드 시리즈’를 이렇게 꼬집었다. “미국 내에서 경기를 해서 결승전까지 올라온 두 팀이 싸우는 거면 아메리칸 시리즈지 왜 월드 시리즈인가.”
이처럼 미국과 세계를 동일시하는 그들의 자국중심주의와 선민의식에 대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오만한 제국’이라고 이름붙였다. 미국의 패권은 신국제주의-미국이 자유주의 확산과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맏형 노릇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타국의 국가주권에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와 경제적 풍요에 기초한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인구, 교육 수준, 천연자원, 경제발전, 사회적 통합력, 정치적 안정, 군사력, 이데올로기적 호소력, 외교적 동맹관계, 기술적 업적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미국의 우월성이 지속적 패권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다차원적 힘이 미국을 지탱하는 한, 일시적 쇠퇴는 있어도 쉽게 패권을 내줄 일은 없다고 전망했다. 이것은 80년대 말에 내놓은 전망이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적자예산·총격사망자 등 창피한 1등 수두룩
하지만 미국은 긍정적 의미에서만 1등이 아니다. 다음은 독설가로 알려진 마이클 무어(영화감독 겸 작가)가 밝힌 또 다른 리스트. 미국은 군사비 지출 많기로 제일, 적자예산 많기로 제일(국내총생산과 비교해서), 총격 사망자수 많기로 제일, 강간범 많기로 제일(2위 국가의 3배), 국제인권협약들에 서명 안 한 건수 많기로 제일이다. 그 밖에 중학생들의 수학점수 낮기로 제일이요, 1인당 연간 쓰레기 배출량 많기로도 제일이다.
이런 ‘나쁜 미국’의 모습은 ‘좋은 미국’에 가려져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꺼운 화장이 지워지고 있는 지금, 세계는 기만과 위선으로 얼룩진 미국의 맨얼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최근 잇따른 미국 기업들의 부패 스캔들이다.
미국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을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미국식 주식회사 시스템의 근원적 결함이라는 시각과, 제도상의 보완을 통해 극복 가능한 범죄행위 정도로 보는 시각이다.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체제가 드러내온 문제점을 꾸준히 비판해 온 인천대 이찬근 교수(무역학)는 “주주이익만 중시하는 미국식 주식회사제도의 모순이 내부감시 시스템을 유명무실화했다”면서 “종업원에게 감사위원회 추천권을 부여하는 등 내부감시 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대 최도성 교수(경영학)는 “주주자본주의의 특성상 단기간 업적을 내기 위해서라면 회계부정 말고도 다른 방법이 많다”며 최근 일련의 부패 스캔들을 주주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한계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또 기업의 투자 시스템이 고도화하면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기업의 재무전략이 간단할 때는 주식투자자를 비롯한 이해 관계자들이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기업들의 투자전략이 너무나 다양해져 이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는 회계부정 시리즈의 신호탄은 지난해 말 터진 엔론 스캔들이었다. 엔론의 부실을 눈감아주고 관련 문서까지 파기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아서 앤더슨사는, 한쪽에서 엔론 이익의 과다 계상을 눈감아주면서 다른 한쪽에서 엔론에 투자자들을 끌어다 주어 짭짤한 수수료를 챙겼다. 회계법인과 피감사기업의 관계가 ‘견제와 감시’에서 ‘밀월과 유착’으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미국 기업 시스템을 사실상 외부에서 감시해 온 제도는 주주들의 소송이다. CEO나 회계법인의 부정은폐 행위가 감지되면 주주들은 여지없이 소송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엔론 월드컴 제록스 등 회계부정 시리즈의 주역인 어느 기업도 주주소송이 제기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번 스캔들은 미국이 자랑해 오던 내부 감시와 견제 시스템이 붕괴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식 시스템에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라는 원리가 작동한다. 의회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인사들을 시도 때도 없이 청문회에 세우고, 집요한 언론은 ‘건수’만 포착하면 대통령까지도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내부감시 제도의 대표격인 회계 감시 시스템의 붕괴는 곧 주식회사의 근간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어처구니없게도 미국의 시장감시 시스템은 기업들로 하여금 입맛에 맞는 회계법인을 선택할 수 있게 방치함으로써, 시장의 신뢰 상실과 증시 폭락으로 이어지는 ‘화’를 자초했다. 외부의 공격에 의한 붕괴가 아니라 자멸이었던 것. 그러면서도 미국은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적 자본주의를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손가락질하는 데 앞장섰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미국의 비극이다.
‘견제와 균형’ 원리 무너진 미국식 자본주의
물론 잇따른 회계부정 사건과 주가 대폭락, 달러화 약세로 이어지는 금융불안을 당장 미국 경제 전반의 위기, 나아가 미국 패권의 쇠퇴로까지 확대해석 하는 데는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련의 스캔들이 쉽게 미국식 세계화 반대론자들의 손을 들어줄지도 의문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따지고 있는 사이 미국 경제를 떠받치던 투자자들이 이미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시장’을 내세우던 미국이 냉혹한 ‘시장의 심판’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와 미국’의 저자인 이삼성 교수(교토 리쓰메이칸대 객원교수·정치학)는 “미국의 경기 사이클과 헤게모니 쇠퇴를 직접 연관짓는 단선적 진단은 설득력이 없다(이미 80년대와 90년대 초 언론과 학자들이 반복했던 오류)”는 것을 전제로 미국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부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군비확장 예산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감면 추진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추진했던 정책의 복사판으로 경제불황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미국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세계적인 군사적 개입주의와 함께 ‘제국의 과잉확장’ 상태를 현실화하면서 미국의 제국적 기반의 약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99년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와 가진 대담에서 “21세기도 아메리카의 세기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음 세기는 누구의 세기도 아닐 것이다. 세계는 한 나라에 의해 지배되기에는 너무 넓고 복잡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근거로 20세기를 아메리카의 세기로 만든 원동력, 즉 거대한 경제력과 문화적 헤게모니가 과거처럼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들었다. 덧붙여 “세계 경찰이 되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겠다는 미국의 열망 뒤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때 미국은 이런 경고에 귀기울였다. 특히 일본에게 추월당한 80년대 미국사회는 위기의식이 팽배했고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쇠퇴론’을 주장한 미래학자 폴 케네디다. 하지만 90년대를 관통한 예상 밖의 긴 경제호황과 견고한 미국 독주체제는 긴장의 끈을 늦췄고 “21세기에도 미국을 대체할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이 없다”는 헌팅턴의 낙관론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한신대 김명섭 교수(국제정치학)는 2002년 ‘시민과 세계’ 창간호에 기고한 ‘포스트 9·11의 미국과 한반도’라는 글에서 ‘미국 안에서 없어지는 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경제적 풍요 속에서 많은 미국인들의 관심사는 보다 나은 물질적 풍요, 보다 긴 수명, 보다 행복한 가족에 매몰되었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세계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고, 그러한 미국인들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정책은 문명적 융합을 통한 국제적 표준의 수립이 아닌 미국적 표준의 세계화라는 일방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사일방어망이라는 새로운 우산이 제공해 주는 막연한 안전감에는 너그럽지만, 국제평화를 위해 다른 나라 국민들과 머리를 맞대는 데는 인색하다.”
미국의 창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와 조우 기회
결과적으로 미국을 뒤흔든 회계부정 사건도 신경제 10년 호황의 후유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일회계법인 대표를 지낸 이화여대 김일섭 교수(경영학)는 “10년 호황을 겪으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소송을 내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한마디로 조기경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호황기에는 드러나지 않던 문제들이 미국 경제가 주춤거리면서 비로소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일 뿐,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9·11 테러 이후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추락과 함께 연이은 부패 스캔들로 ‘상처 투성이 거인’이 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내부 고발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과거 석학들의 점잖은 충고와 달리, 언론인들이 앞장서 미국의 맨얼굴을 까발리고 시민들의 자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호들갑스럽다.
현 부시 대통령의 당선 과정을 ‘순 미국식 쿠데타’라고 몰아붙인 마이클 무어의 ‘멍청한 백인들’이나, 팍스 뉴스 채널에서 시사토크 ‘오릴리 팩터’를 진행하고 있는 스타 저널리스트 빌 오릴리의 ‘좋은 미국, 나쁜 미국, 멍청한 미국’은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LA라디오방송국 시사토크쇼 진행자이며 입바른 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흑인 출신 변호사 래리 엘더도 ‘미국인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미국에서 말해서는 안 될 10가지’에서 미국사회의 위선을 철저하게 벗겨냈다. 인종차별은 흑인이 백인보다 더 심하다, 백인들의 생색주의가 인종차별보다 더 심각하다, 미국의 복지정책이 진짜 복지를 망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이 오히려 무고한 시민들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등등 미국 사회가 뭔가 확실히 잘못돼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 역사학자 모리스 버만은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둔재생산국으로 전락한 미국이 몰락이라는 역사적 숙명을 향해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당장이라도 붕괴될 것처럼 떠드는,거의 자학에 가까운 ‘미국인에 의한 미국 비판’을 마냥 통쾌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한양대 공성진 교수(미래학)는 “경제 분야에서 나타난 한두 개 징후만 가지고 미국의 쇠퇴를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면서 “일부 균열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과 원칙,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국민 통합 등의 면에서 미국은 여전히 강한 나라”라고 했다. 다만 한국 사회가 이제야 비로소 미국이라는 창(窓)을 통하지 않고도 세계와 조우할 자신감을 갖게 된 점이, 절대 승자가 사라지는 국제사회에서 얻는 큰 수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