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작곡가 박영희씨(57)가 오랜만에 한국 음악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7월3일부터 5일까지 영남대학교에서 열린 대구 국제현대음악제의 초청을 받아 온 그는 ‘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거의 10여년 만’이라며 고국 방문에 대한 감회를 드러냈다. “1974년 6월3일 독일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때는 딱 2년만 공부하고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벌써 28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네요.”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박영희는 독일 음악계에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 있는 작곡가다. 그는 1994년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 작곡과 정교수로 임용되었다. 독일 최초의 여성 작곡과 정교수가 된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는 여성 작곡가에 대한 차별이 없지 않았어요. 그러나 요즘은 그런 차별이 많이 줄어든 추세지요.”
독일 국가공무원 신분임에도 박교수는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제게 있어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한국은 제 집이니까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불교와 노자, 장자 등 한국적 정신세계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누가 ‘요즘도 한국을 가끔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한시도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고 대답해요.”
독일에서 살아온 날들이 한국에서 산 날과 비슷할 정도가 되었지만 박교수는 아직도 천상 한국인이다. 그의 작품들은 ‘타령’ ‘만남’ 등 한국어 제목을 가지고 있다. “독일 음악계는 동양적인 음악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래서 일본 등 아시아 각지의 작곡가들이 독일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죠.” 교수와 작곡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박교수는 학기중에는 브레멘에 머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학이 되면 이탈리아에 있는 집으로 가 작곡에 몰두한다. 독일인 남편(클라우스 후버) 역시 작곡가라서 이 같은 생활을 잘 이해해 준다고.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박영희는 독일 음악계에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 있는 작곡가다. 그는 1994년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 작곡과 정교수로 임용되었다. 독일 최초의 여성 작곡과 정교수가 된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는 여성 작곡가에 대한 차별이 없지 않았어요. 그러나 요즘은 그런 차별이 많이 줄어든 추세지요.”
독일 국가공무원 신분임에도 박교수는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제게 있어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한국은 제 집이니까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불교와 노자, 장자 등 한국적 정신세계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누가 ‘요즘도 한국을 가끔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한시도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고 대답해요.”
독일에서 살아온 날들이 한국에서 산 날과 비슷할 정도가 되었지만 박교수는 아직도 천상 한국인이다. 그의 작품들은 ‘타령’ ‘만남’ 등 한국어 제목을 가지고 있다. “독일 음악계는 동양적인 음악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래서 일본 등 아시아 각지의 작곡가들이 독일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죠.” 교수와 작곡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박교수는 학기중에는 브레멘에 머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학이 되면 이탈리아에 있는 집으로 가 작곡에 몰두한다. 독일인 남편(클라우스 후버) 역시 작곡가라서 이 같은 생활을 잘 이해해 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