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겸직과 부적절한 판공비 사용 의혹 등으로 학내외 비판 여론에 시달리던 이기준 서울대 총장이 결국 임기를 7개월 남기고 사퇴했다. 총학생회의 퇴진 운동, 교수협의회와 민교협 교수들의 해명 요구,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의 개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총장의 조기 퇴진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 같다. 총장 본인은 물론, 그동안 네 명의 총장이 연이어 이런저런 사유로 임기중 도중하차한 것은 서울대에도 불행한 일이다.
그러면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장실 점거라는 강경 투쟁을 주도한 총학생회나, 총장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에 대해 중간평가까지 실시하며 비판해 온 교수협의회는 승리한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번 사태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고, 교수와 학생을 비롯한 서울대 구성원 모두가 패자며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먼저 총학생회의 경우를 보자. 모집단위 광역화 철회, 등록금 인상분 반환, 이기준 총장 사퇴 등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총장실 점거를 강행했던 총학생회는, 우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썼다는 점에서 학내외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성인이라는 서울대생들이 자기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폭력적 방법을 동원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총장 파동’ 부끄러움… 원점서 시작하는 각오 필요
게다가 이들이 내세운 요구 조건은 명분과 설득력이 약했다. 예를 들어 모집단위 광역화는 학교가 외부와 약속한 사항이며, 오히려 입시생들은 입학 지원시 세부전공 선택의 부담이 없는 광역화를 선호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마 재학생들 불만의 근본 원인은 전공과정 진입 때 전공별 선발 인원에 지나친 제한을 두는 왜곡된 학부제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전공 선택의 완전 자유화를 주장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모집단위 광역화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등록금에 대해서도 서울대 등록금이 일반 사립대의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적 인상 반대보다는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 확충 등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결국 명분이 약한 요구 조건을 내걸고 총장실 점거라는 극한 방법을 택한 총학생회는, 일반 국민의 눈에는 과거 민주화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던 학생운동의 좋은 전통을 훼손한 것으로 비쳐졌다.
학생들의 이 같은 불법 행동에 대해 교수들이 스승으로서 따끔하게 나무라는 의사 표시가 없었다는 사실도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학장단이 성명서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보직교수라는 위치 때문에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총장과 아무 관계 없는, 아니 오히려 그동안 총장에게 반대해 온 교수협의회가 나서서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더라면 총장실 점거 사태는 좀더 빨리 해결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수협의회는 학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거의 한 달 동안 아무 의사 표시도 없었다. 그나마 최근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한 총장의 사과와 적절한 대책을 촉구한 ‘공개 서한’을 총장에게 보내며 학생들의 행위를 준엄히 꾸짖은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반면 민교협은 두 번의 성명서를 내면서도 총장의 잘못만 지적했지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총장의 연구비와 판공비 문제는 학생들이 총장실 불법 점거 때 탈취한 문건에서부터 불거져 나온 사안이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명백한 증거라도 그 입수 과정에 불법이 있으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총장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 행위의 불법성을 지적해 주는 일도 교수 책무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민주화’를 위한 교수 모임이라면, 민주주의에서는 과정의 정당성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서울대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일은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러울 뿐이다. 이 사태를 계기로 학생,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구성원 모두가 도덕적으로 국민의 기대에 걸맞게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총장 선출 방법에 대한 재검토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과거 네 번의 직선을 통해 총장을 선출했지만, 가장 적합한 인물이 뽑힌다는 보장도 없고 총장 취임 후 교수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힘있게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 내 인맥과 연줄을 통한 선거운동만 가열되고 기득권만 공고히 해주는 부작용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울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러면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장실 점거라는 강경 투쟁을 주도한 총학생회나, 총장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에 대해 중간평가까지 실시하며 비판해 온 교수협의회는 승리한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번 사태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고, 교수와 학생을 비롯한 서울대 구성원 모두가 패자며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먼저 총학생회의 경우를 보자. 모집단위 광역화 철회, 등록금 인상분 반환, 이기준 총장 사퇴 등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총장실 점거를 강행했던 총학생회는, 우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썼다는 점에서 학내외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성인이라는 서울대생들이 자기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폭력적 방법을 동원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총장 파동’ 부끄러움… 원점서 시작하는 각오 필요
게다가 이들이 내세운 요구 조건은 명분과 설득력이 약했다. 예를 들어 모집단위 광역화는 학교가 외부와 약속한 사항이며, 오히려 입시생들은 입학 지원시 세부전공 선택의 부담이 없는 광역화를 선호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마 재학생들 불만의 근본 원인은 전공과정 진입 때 전공별 선발 인원에 지나친 제한을 두는 왜곡된 학부제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전공 선택의 완전 자유화를 주장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모집단위 광역화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등록금에 대해서도 서울대 등록금이 일반 사립대의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적 인상 반대보다는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 확충 등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결국 명분이 약한 요구 조건을 내걸고 총장실 점거라는 극한 방법을 택한 총학생회는, 일반 국민의 눈에는 과거 민주화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던 학생운동의 좋은 전통을 훼손한 것으로 비쳐졌다.
학생들의 이 같은 불법 행동에 대해 교수들이 스승으로서 따끔하게 나무라는 의사 표시가 없었다는 사실도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학장단이 성명서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보직교수라는 위치 때문에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총장과 아무 관계 없는, 아니 오히려 그동안 총장에게 반대해 온 교수협의회가 나서서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더라면 총장실 점거 사태는 좀더 빨리 해결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수협의회는 학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거의 한 달 동안 아무 의사 표시도 없었다. 그나마 최근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한 총장의 사과와 적절한 대책을 촉구한 ‘공개 서한’을 총장에게 보내며 학생들의 행위를 준엄히 꾸짖은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반면 민교협은 두 번의 성명서를 내면서도 총장의 잘못만 지적했지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총장의 연구비와 판공비 문제는 학생들이 총장실 불법 점거 때 탈취한 문건에서부터 불거져 나온 사안이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명백한 증거라도 그 입수 과정에 불법이 있으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총장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 행위의 불법성을 지적해 주는 일도 교수 책무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민주화’를 위한 교수 모임이라면, 민주주의에서는 과정의 정당성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서울대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일은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러울 뿐이다. 이 사태를 계기로 학생,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구성원 모두가 도덕적으로 국민의 기대에 걸맞게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총장 선출 방법에 대한 재검토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과거 네 번의 직선을 통해 총장을 선출했지만, 가장 적합한 인물이 뽑힌다는 보장도 없고 총장 취임 후 교수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힘있게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 내 인맥과 연줄을 통한 선거운동만 가열되고 기득권만 공고히 해주는 부작용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울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각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