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 방법과 시기를 놓고 이인제 고문과 한화갑 고문 등 일부 인사들이 대치했던 지난해 12월 말. 이고문측은 반대세력이 주장을 꺾지 않자 ‘분당’이라는 초강수를 동원해 상대방을 몰아붙인 적이 있다. 동교동 구파와 충청권 및 수도권 출신의 자파 인사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렸고 ‘거사’에 동참할 인사들의 명단도 거론됐다. 당시 이후보의 강경한 입장은 여권 핵심부에까지 보고됐다. ‘판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았고 보다 못한 당 지도부는 교통정리에 나서 대척점에 섰던 인사들을 설득했다.
말하자면 4월 경선은 이처럼 이고문이 정치생명을 걸고 투쟁한 산물이었다. 이고문측은 4월 경선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판단 착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생각지도 않은 노무현 돌풍이 자신의 대세론을 하루아침에 허문 것.
이후보측은 “뭔가 판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며 의혹을 품었지만 ‘정치적 공세’를 넘어서는 근거와 확증을 찾는 데 실패했다. 무너진 대세론 속에 ‘정면 돌파냐, 회군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이후보 진영에 느닷없이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 날아들었다. 지난해 연말과 신년 초 몇 차례에 걸쳐 정계개편의 기운이 민주당과 정치권을 감돌았는데 최근 노후보의 입을 통해 공식 부상한 것이다. 이후보 진영이 정계개편론을 놓고 처음 보인 반응은 음모론이었다. 낯설지 않은 시나리오, 경선 와중에 터졌다는 것 등이 의혹을 부채질했다. 중대 결단설이 흘러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후보측은 정계개편론 속에 살 길이 숨어 있음을 눈치챘다.
음모론을 접은 이후보측은 대신 ‘색깔론’으로 치고 나왔다. 6월 정계개편이 본격화하면 보혁(保革)구도에서 각 세력의 이합집산이 추진될 것이고, 그 와중에 중심을 잡고 있으면 정치적 활로가 열릴 수 있다는 게 이후보 측근들의 판단이었다. 이후보측은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 실제 추진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사족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노후보가 가고자 하는 정계개편의 방향과 방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다.
사실 노후보가 그리는 정계개편은 전혀 새로운 그림이 아니다. 노후보가 주장한 정계개편론의 요지는 지역 중심 정당구도를 ‘정책 중심’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여기다 계층과 이념을 중심으로 한 종적 결합을 시도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개혁세력의 연대로 간다는 것. 이 같은 정계개편 구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권 일부에서 거론되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신 3김 연대론, 반(反) 이회창 세력 결집론, 영남 후보론, 개혁신당설 등 각종 정계개편 방안은 표현만 달랐지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그럼에도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 정치권의 이목을 끄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노후보가 여권의 대선 후보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 경우 노후보가 연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PK(부산·경남) 인사들의 동요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노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되어 한나라당 민주계와 개혁세력을 끌어안는 데 성공한다면, 정치 지형은 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화 세력의 복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편에는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구 여권 세력이 서 있다. 노후보가 정계개편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만들자는 의도로 보인다.
노후보의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당장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돼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 경우 한나라당 내 진보 성향 의원 상당수가 정계개편 정국에 몸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부산과 경남 의원들의 흔들림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내부서도 “정계개편 카드 너무 일찍 내놨다”
그러나 이념정당이 우리 정치 문화에서 낯설다는 사실은 성공의 장애 요인이다. 과거 몇 차례에 걸친 이념정당 추진은 실패로 끝났거나 군소정당으로 머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지역 성향의 표심이 여전한 상황에서 보혁구도로의 정계개편에 정치생명을 맡길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인제 후보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색깔론으로 무장한 정치 공세가 가해질 경우 보혁구도의 정계개편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노무현 신당=DJ 신당’이라며 정치 공세를 가하고 있다.
정치 현실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다. 노후보와 한배를 타야 할 대상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의중이 오리무중인 것. 노후보의 정계개편은 YS가 중요한 한 축이다. 하지만 YS의 의중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상도동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을 통해 흘러 나오는 YS의 의중은 일단 호의적이다. 지난 3월21일 YS는 “노후보도 고려 대상 후보군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후보가 듣기 좋은 얘기다. 하지만 YS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박종웅 의원을 통해 YS의 발언이 흘러 나오는 그 시점에 YS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혁규 경남지사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나 경남지사 후보 합의추대 문제를 의논했다. 드러난 대로라면 YS는 앞으로는 노후보의 거사를 부추기고 뒤로는 이총재와 보이지 않는 ‘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찍 꺼내든 ‘패’(정계개편)에 경악한 한나라당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은 당장 보혁구도로 판을 짜 노후보를 몰아붙일 태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쪽 카드를 너무 일찍 내놨다”며 불안한 모습이다. 한 당직자는 “지금은 경선에 최선을 다할 때”라며 “불필요한 말을 입에 올려 적군들이 연합할 구실을 줬다”고 아쉬워했다. 더구나 이인제 후보의 경우 “당의 좌경화를 막겠다”는 화두를 던져놓고 연일 색깔론을 제기한다.
그렇지만 이후보는 “정계개편은 추진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의 행간에는 노후보 주도의 정계개편이 아닌 또 다른 그림을 통한 정계개편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나마 김윤환 민국당 대표 정도가 노후보의 정계개편에 호의적이다. 김대표는 “노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 간판으로는 본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노후보의 정계개편 발언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역시 각론에 들어가면 노후보와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다. 노후보가 말하는 보수 대 개혁식 구분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노후보의 정계개편은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은 아니다. 노후보측은 “후보로 당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추동력 부족을 인정한다. 후보로 선출되면 추동력이 배가될 것이고 정계개편론도 그만큼 탄력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4월 경선은 이처럼 이고문이 정치생명을 걸고 투쟁한 산물이었다. 이고문측은 4월 경선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판단 착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생각지도 않은 노무현 돌풍이 자신의 대세론을 하루아침에 허문 것.
이후보측은 “뭔가 판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며 의혹을 품었지만 ‘정치적 공세’를 넘어서는 근거와 확증을 찾는 데 실패했다. 무너진 대세론 속에 ‘정면 돌파냐, 회군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이후보 진영에 느닷없이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 날아들었다. 지난해 연말과 신년 초 몇 차례에 걸쳐 정계개편의 기운이 민주당과 정치권을 감돌았는데 최근 노후보의 입을 통해 공식 부상한 것이다. 이후보 진영이 정계개편론을 놓고 처음 보인 반응은 음모론이었다. 낯설지 않은 시나리오, 경선 와중에 터졌다는 것 등이 의혹을 부채질했다. 중대 결단설이 흘러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후보측은 정계개편론 속에 살 길이 숨어 있음을 눈치챘다.
음모론을 접은 이후보측은 대신 ‘색깔론’으로 치고 나왔다. 6월 정계개편이 본격화하면 보혁(保革)구도에서 각 세력의 이합집산이 추진될 것이고, 그 와중에 중심을 잡고 있으면 정치적 활로가 열릴 수 있다는 게 이후보 측근들의 판단이었다. 이후보측은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 실제 추진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사족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노후보가 가고자 하는 정계개편의 방향과 방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다.
사실 노후보가 그리는 정계개편은 전혀 새로운 그림이 아니다. 노후보가 주장한 정계개편론의 요지는 지역 중심 정당구도를 ‘정책 중심’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여기다 계층과 이념을 중심으로 한 종적 결합을 시도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개혁세력의 연대로 간다는 것. 이 같은 정계개편 구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권 일부에서 거론되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신 3김 연대론, 반(反) 이회창 세력 결집론, 영남 후보론, 개혁신당설 등 각종 정계개편 방안은 표현만 달랐지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그럼에도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 정치권의 이목을 끄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노후보가 여권의 대선 후보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 경우 노후보가 연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PK(부산·경남) 인사들의 동요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노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되어 한나라당 민주계와 개혁세력을 끌어안는 데 성공한다면, 정치 지형은 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화 세력의 복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편에는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구 여권 세력이 서 있다. 노후보가 정계개편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만들자는 의도로 보인다.
노후보의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당장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돼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 경우 한나라당 내 진보 성향 의원 상당수가 정계개편 정국에 몸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부산과 경남 의원들의 흔들림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내부서도 “정계개편 카드 너무 일찍 내놨다”
그러나 이념정당이 우리 정치 문화에서 낯설다는 사실은 성공의 장애 요인이다. 과거 몇 차례에 걸친 이념정당 추진은 실패로 끝났거나 군소정당으로 머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지역 성향의 표심이 여전한 상황에서 보혁구도로의 정계개편에 정치생명을 맡길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인제 후보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색깔론으로 무장한 정치 공세가 가해질 경우 보혁구도의 정계개편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노무현 신당=DJ 신당’이라며 정치 공세를 가하고 있다.
정치 현실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다. 노후보와 한배를 타야 할 대상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의중이 오리무중인 것. 노후보의 정계개편은 YS가 중요한 한 축이다. 하지만 YS의 의중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상도동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을 통해 흘러 나오는 YS의 의중은 일단 호의적이다. 지난 3월21일 YS는 “노후보도 고려 대상 후보군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후보가 듣기 좋은 얘기다. 하지만 YS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박종웅 의원을 통해 YS의 발언이 흘러 나오는 그 시점에 YS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혁규 경남지사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나 경남지사 후보 합의추대 문제를 의논했다. 드러난 대로라면 YS는 앞으로는 노후보의 거사를 부추기고 뒤로는 이총재와 보이지 않는 ‘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찍 꺼내든 ‘패’(정계개편)에 경악한 한나라당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은 당장 보혁구도로 판을 짜 노후보를 몰아붙일 태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쪽 카드를 너무 일찍 내놨다”며 불안한 모습이다. 한 당직자는 “지금은 경선에 최선을 다할 때”라며 “불필요한 말을 입에 올려 적군들이 연합할 구실을 줬다”고 아쉬워했다. 더구나 이인제 후보의 경우 “당의 좌경화를 막겠다”는 화두를 던져놓고 연일 색깔론을 제기한다.
그렇지만 이후보는 “정계개편은 추진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의 행간에는 노후보 주도의 정계개편이 아닌 또 다른 그림을 통한 정계개편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나마 김윤환 민국당 대표 정도가 노후보의 정계개편에 호의적이다. 김대표는 “노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 간판으로는 본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노후보의 정계개편 발언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역시 각론에 들어가면 노후보와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다. 노후보가 말하는 보수 대 개혁식 구분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노후보의 정계개편은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은 아니다. 노후보측은 “후보로 당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추동력 부족을 인정한다. 후보로 선출되면 추동력이 배가될 것이고 정계개편론도 그만큼 탄력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