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출판사가 2년여의 준비 끝에 ‘테마 한국문화사’ 시리즈를 선보였다. 고고학, 미술사학, 민속학, 생활사 등에서 한국 문화사의 진수라 할 100가지 아이템을 뽑아 100권의 책으로 정리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첫회분으로 출간된 ‘백자’ ‘궁중문화’ ‘수원화성’ 등 3종은 본문구성이나 사진, 편집디자인 등 구석구석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출판사측은 ‘테마 한국문화사’라는 시리즈 제목을 정할 때도 500명의 독자, 출판 편집자들과 주요 필진에게 일일이 설문조사를 할 만큼 이 기획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였다. 자, 이제 내용으로 가보자. 각 분야 권위자인 필자들이 처음부터 어깨 힘을 빼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겠다는 자세다. 서술은 평이하지만 깊이가 있고 정확해 정치경제사 중심의 기존 역사교과서를 보완해 줄 일종의 대안교과서로 활용가치가 충분하다.
먼저 고려대 방병선 교수(고고미술사학)의 ‘백자’는 왜 우리가 ‘자기’라는 형식에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특히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 없이 덤덤한 색상과 기형(器形)만으로 아름다움을 표출해 낸 조선 백자의 조형의식은 식민사관 아래서 그 가치가 폄훼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 백자는 조선 사대부와 왕실이 지향했던 절제와 품격, 그리고 자유분방함을 오롯이 품고 있다. 박교수는 이것이 조선의 힘이요, 조선인의 삶과 꿈, 자랑이라고 했다.
‘백자’는 고려 청자를 계승한 15세기 상감백자, 15~16세기 화려한 청화백자, 17세기 철화백자, 18세기 달항아리와 떡메병, 문방구류 그리고 본격적인 청화백자의 등장, 18세기 우리 문화의 황금시대라 하는 진경시대 백자, 19세기 중국과 일본 도자기의 유입까지 시대별 백자의 변화과정을 큰 줄기로 해 조선 백자가 만들어진 과정이나 도자기를 통한 조선시대 대외 교류의 역사 등을 소개한다. 또 백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필요한 시(詩), 도(陶), 화(畵)의 의미, 도자기 각 부분의 명칭이나 도자 용어설명 등 기초지식을 전달하는 데도 소홀함이 없다. 그러니 이 품위 있는 책들 앞에서 너무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국사편찬위원회 신명호 편사연구사의 ‘궁중문화’는 왕의 새벽과 하루 일과로 시작된다. 지금은 궁궐에 가도 건축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저자는 그곳에 살던 왕과 왕을 지척에서 모시던 상궁들, 왕비와 왕족의 이야기로 궁궐이 살아 숨쉬던 때의 모습을 복원한다. 왕실의 새벽은 큰 의미가 있다. 잠자리에서는 자연의 한 인간이던 왕이 절대 권력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아침 수라를 들고,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쓰고, 시종들의 수행을 받으며 왕의 위엄과 권위를 갖춘 뒤 침전을 떠난다. 아침 조회, 국정현안 보고, 회의 주재, 신료 접견 등 공식 업무 외에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공부에 바쳤으니 조선의 왕도 그리 쉬운 직업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혹은 이 책을 들고 주말에 궁궐 나들이를 해보자. 조선시대 왕들이 일상업무를 보던 경복궁 사정전에서 경연(經筵·왕의 공부)에 열중하는 세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질 것이다.
‘수원화성’은 경기대 김동욱 교수(건축학)가 집필했다.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성곽도시이자 계획 신도시였던 화성은 건축가의 눈에도 경이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실학자 정약용의 화성 축성 계획안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축성과정에 거중기, 유형기, 평거, 발거 등과 같은 새로운 기기를 도입했으며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자들을 소집하고 부역노동 대신 노임제를 정착시키는 등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저자는 화성의 축성과정과 기술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상업이 번성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세계 도시로서 화성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본문을 다 읽었다고 쉽게 책을 덮어서는 안 된다. ‘테마 한국문화사’의 장점은 ‘부록’에서 더욱 빛난다. 우선 각 주제와 관련해 더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했다. 서울대 한영우 교수의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은 ‘궁중문화’와 ‘수원화성’편에서 모두 추천했다. 그 밖에 이 책의 집필에 도움을 준 문헌목록까지 꼼꼼히 수록했다. 100권을 기약한 ‘테마 한국문화사’가 완간되려면 앞으로 97권이 더 나와야 한다. 한 권 한 권 채워가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줄 탄탄한 기획물이다.
백자/ 방병선 지음/ 돌베개 펴냄/ 252쪽/ 1만8000원
궁중문화/ 신명호 지음/ 돌베개 펴냄/ 304쪽/ 1만8000원
수원화성/ 김동욱 지음/ 돌베개 펴냄/ 272쪽/ 1만8000원
첫회분으로 출간된 ‘백자’ ‘궁중문화’ ‘수원화성’ 등 3종은 본문구성이나 사진, 편집디자인 등 구석구석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출판사측은 ‘테마 한국문화사’라는 시리즈 제목을 정할 때도 500명의 독자, 출판 편집자들과 주요 필진에게 일일이 설문조사를 할 만큼 이 기획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였다. 자, 이제 내용으로 가보자. 각 분야 권위자인 필자들이 처음부터 어깨 힘을 빼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겠다는 자세다. 서술은 평이하지만 깊이가 있고 정확해 정치경제사 중심의 기존 역사교과서를 보완해 줄 일종의 대안교과서로 활용가치가 충분하다.
먼저 고려대 방병선 교수(고고미술사학)의 ‘백자’는 왜 우리가 ‘자기’라는 형식에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특히 아무런 장식이나 꾸밈 없이 덤덤한 색상과 기형(器形)만으로 아름다움을 표출해 낸 조선 백자의 조형의식은 식민사관 아래서 그 가치가 폄훼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 백자는 조선 사대부와 왕실이 지향했던 절제와 품격, 그리고 자유분방함을 오롯이 품고 있다. 박교수는 이것이 조선의 힘이요, 조선인의 삶과 꿈, 자랑이라고 했다.
‘백자’는 고려 청자를 계승한 15세기 상감백자, 15~16세기 화려한 청화백자, 17세기 철화백자, 18세기 달항아리와 떡메병, 문방구류 그리고 본격적인 청화백자의 등장, 18세기 우리 문화의 황금시대라 하는 진경시대 백자, 19세기 중국과 일본 도자기의 유입까지 시대별 백자의 변화과정을 큰 줄기로 해 조선 백자가 만들어진 과정이나 도자기를 통한 조선시대 대외 교류의 역사 등을 소개한다. 또 백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필요한 시(詩), 도(陶), 화(畵)의 의미, 도자기 각 부분의 명칭이나 도자 용어설명 등 기초지식을 전달하는 데도 소홀함이 없다. 그러니 이 품위 있는 책들 앞에서 너무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국사편찬위원회 신명호 편사연구사의 ‘궁중문화’는 왕의 새벽과 하루 일과로 시작된다. 지금은 궁궐에 가도 건축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저자는 그곳에 살던 왕과 왕을 지척에서 모시던 상궁들, 왕비와 왕족의 이야기로 궁궐이 살아 숨쉬던 때의 모습을 복원한다. 왕실의 새벽은 큰 의미가 있다. 잠자리에서는 자연의 한 인간이던 왕이 절대 권력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아침 수라를 들고,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쓰고, 시종들의 수행을 받으며 왕의 위엄과 권위를 갖춘 뒤 침전을 떠난다. 아침 조회, 국정현안 보고, 회의 주재, 신료 접견 등 공식 업무 외에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공부에 바쳤으니 조선의 왕도 그리 쉬운 직업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혹은 이 책을 들고 주말에 궁궐 나들이를 해보자. 조선시대 왕들이 일상업무를 보던 경복궁 사정전에서 경연(經筵·왕의 공부)에 열중하는 세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질 것이다.
‘수원화성’은 경기대 김동욱 교수(건축학)가 집필했다.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성곽도시이자 계획 신도시였던 화성은 건축가의 눈에도 경이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실학자 정약용의 화성 축성 계획안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축성과정에 거중기, 유형기, 평거, 발거 등과 같은 새로운 기기를 도입했으며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자들을 소집하고 부역노동 대신 노임제를 정착시키는 등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저자는 화성의 축성과정과 기술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상업이 번성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세계 도시로서 화성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본문을 다 읽었다고 쉽게 책을 덮어서는 안 된다. ‘테마 한국문화사’의 장점은 ‘부록’에서 더욱 빛난다. 우선 각 주제와 관련해 더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했다. 서울대 한영우 교수의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은 ‘궁중문화’와 ‘수원화성’편에서 모두 추천했다. 그 밖에 이 책의 집필에 도움을 준 문헌목록까지 꼼꼼히 수록했다. 100권을 기약한 ‘테마 한국문화사’가 완간되려면 앞으로 97권이 더 나와야 한다. 한 권 한 권 채워가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줄 탄탄한 기획물이다.
백자/ 방병선 지음/ 돌베개 펴냄/ 252쪽/ 1만8000원
궁중문화/ 신명호 지음/ 돌베개 펴냄/ 304쪽/ 1만8000원
수원화성/ 김동욱 지음/ 돌베개 펴냄/ 272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