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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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아라 쾌감, 날려라 스트레스

  • < 허시명 / 여행작가 > storyf@yahoo.co.kr

    입력2004-10-22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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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밟아라 쾌감, 날려라 스트레스
    4월부터 공무원 사회에서 주5일제 근무제가 실시된다. 물론 국내 100대 기업 중 3개사는 토요 휴무제를, 67개 회사는 격주 휴무제에 돌입한 상태다. 주5일 근무제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개념으로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셈이다.

    주5일 근무제와 함께 레저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다. 우리가 레저 기행을 떠나는 것도 그 대안의 하나다. 이번에는 3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어울리는 레저인 산악자전거(MTB·Mountain bike)를 타러 나섰다.

    산악자전거는 값이 비싸다. 10만~20만원 하는 보통 자전거 값만 헤아리다가 그 10배, 100배 하는 가격을 운운하면 대개 ‘미친’ 호사가의 놀음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산악자전거는 제가 벌어 제 돈 들여 살 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30~ 50대 연령층에서 많이 탄다. 산악자전거는 이동용이 아니고 운동용이다. 보통 자전거를 끌고 산을 한 번 쿵쾅거리고 내려오면 자전거 바퀴는 타원형으로 휘어 일회용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부품 하나하나의 성능을 섬세하게 극대화한 첨단공학의 산물이 바로 산악자전거다. 우리 일행이 기점으로 삼은 산악자전거 전문점 케빈(www.kevin. co.kr)에는 1428만원짜리 자전거가 근엄하게 버티고 있었다.

    밟아라 쾌감, 날려라 스트레스
    산악자전거 애호가들은 우리나라의 지형이 70%가 산악이라 산악자전거의 천국이라고 극찬한다. 도심만 벗어나면 어디서든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남산, 우면산, 수도권에서는 산본 수리산, 남한산성 코스가 알려져 있다. 우리 일행은 경기 북부에서 소문난, 그래서 신도시 일산의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양주군 비암리 산자락을 타기로 했다. 산 이름은 10만분의 1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야산이었다.

    우리 일행, 모두 18명의 동호인들은 비암리 송그래미 마을 못미쳐 시멘트다리께에 차를 세워놓고 오른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비탈진 산길이었다. 언 땅이 녹아 땅이 질었다. 20~30m쯤 갔을까, 더 나가지도 않는 자전거 위에서 더 이상 용심 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전거가 맥없이 허물어졌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야 했다. 그런다고 우세를 살 일도 아니었다. 27단 기어를 잘 활용하여 유유히 오르는 고수가 있는가 하면,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야 하는 초보자도 있는 법이다.



    산악자전거는 힘으로 모는 것이 아니다. 힘만 믿고 가다가는 금세 지쳐 나가떨어진다. 마라톤처럼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서서히 출발해 꾸준히 속도를 올리고, 힘을 최대한 아껴가며 긴 언덕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산악자전거를 잘 타는 데는 체력과 기술력이 60%, 장비가 40% 기능을 한다. 좋은 자전거가 분명 좋은 기능을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레저나 레포츠에는 스스로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놓고 돌파해 가는 즐거움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보면 장비를 탓할 것은 하나도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안전 장비와 기본 복장은 필수적이다.

    밟아라 쾌감, 날려라 스트레스
    산악자전거를 타는 데 최소한의 장비는 굴러가는 두 바퀴 자전거와 헬멧이다. 초보자는 50만원대의 자전거를 타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서너 달 타보고 산악자전거가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라는 판단이 서면 300만~400만원짜리 자전거를 구입한다. 헬멧은 넘어지거나 나뭇가지에 부딪힐 것에 대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품목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전용 바지다.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 바지인데, 가랑이에 소가죽이 대어 있어 안장의 충격을 줄여준다. 상의는 너무 헐렁한 것만 아니면 된다. 마지막 필수품을 꼽는다면 전용 신발이다. 축구화처럼 밑바닥이 딱딱하고 돌기가 나 있는데, 바닥에 홈이 패어 있어 자전거 페달에 끼울 수 있다. 페달을 밀 때뿐 아니라 당길 때도 신발에 페달이 붙어 있어 힘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평페달보다 3분의 1은 더 힘을 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 장비와 상식이면 산악자전거의 기본은 갖춘 셈이다. 우리는 길게 뻗어내린 산줄기의 임도를 걷거니 타거니 하면서 전진해 갔다. 하지만 정상은 아직 보이지 않고, 딱히 정상이라고 할 곳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길로 삼기에는 너무 심심한 천생 산악자전거 코스다. 산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게 마련. 고개 하나를 넘자 자전거 안장에 몸을 싣고 보란 듯이 내달린다. 우둘투둘한 자갈을 밟고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몸서리치면서 내려간다. 하지만 초보자인 나는 속도를 내기가 두렵다. 자전거가 앞으로 처박히고 내 몸은 돌멩이처럼 팽개쳐질 것만 같다. 앞뒤 브레이크를 잡고 쩔쩔매며 비탈길을 내려온다.

    일행 중 늘 내가 먼저 출발하지만, 쉬는 곳에 도달할 땐 내가 맨 꼴찌다. 두 달쯤 타야 기어가 손에 익고, 자전거가 몸에 달라붙는다고 한다. 몸으로 하는 일이란 몸이 기억해야 한다.

    밟아라 쾌감, 날려라 스트레스
    비탈길에서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걷는 건축설계사 김용겸씨에게 물었다. “차라리 등산을 하는 게 낫지 않아요?” “등산은 심심하잖아요. 산악자전거는 속도감과 스릴이 있고 기술력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지요.” 그의 대답이었다. 등산은 두 다리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산악자전거는 다르다. 기계의 성능과 기술력에 따라 무수한 변주가 이뤄진다. 그리고 페달을 밟으면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의 심장을 작동시켜 보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헐떡거리며 비탈을 오를 때는 ‘내가 왜 이 짓을 하나’ 싶다가도 내리막길에 서면 ‘아, 바로 이 맛이야’ 하면서 신바람을 낸다. 그때의 맛이란 퍽퍽한 밀가루 속에 박힌 진한 팥처럼 달콤하고, 식도가 붙어버릴 것 같은 갈증 속에 쏟아붓는 물처럼 짜릿하다.

    그날 우리가 주파한 산길은 25km로 4시간 가량이 걸렸다. 솟는 땀이 흘러내릴 새 없이 쌩쌩 달려왔더니, 출발 지점에 되돌아왔을 때는 얼굴에 하얀 소금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고 멀리 강남에서 참전한 황영씨는 “차안에서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2층만 올라가도 숨이 차고, 밥 한 끼를 먹으면 소화제 한 알 을 먹어야 했는데, 이제는 하루에 네 끼를 먹어도 소화제가 필요 없게 되었어요”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1년을 탄 결과 생긴 몸의 변화였다. 특히 산악자전거를 타면 혈당치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해서 당뇨가 있는 중년 사내들이 많이 탄다는 말도 덧붙였다.

    성공과 실패, 시작과 끝, 출근과 퇴근, 일어남과 잠듦이 연속되는 하루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권할 만한 레저로 이만큼 후련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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