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클럽 ‘드럭’은 지난 90년대 중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인디밴드 열풍의 진원지다. 드럭은 또한 97년 ‘Our Nation’이라는 타이틀 아래 ‘크라잉 너트’와 ‘옐로 키친’이라는 두 무명 밴드(당시로는!)의 조인트 앨범을 발표하며 인디레이블의 등장을 선언했고, 이들의 ‘우리들의 나라’ 시리즈는 올해로 네 장째 만만치 않은 목록을 이루었다.
이 시리즈의 첫 주자인 크라잉 너트의 ‘말 달리자’는 글자 그대로 인디의 ‘애국가’가 됐으며, 특히 두번째 시리즈가 배출한 두 밴드 ‘노브레인’과 ‘위퍼’는 바로 인디음악의 자존심을 우리에게 납득시켜 주었다. 그리고 올해 드럭은 ‘레이지본’과 ‘쟈니 로얄’이라는 두 신예 밴드를 출격시킨다.
195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인디문화는 대자본의 시장논리와 권력의 정치적 억압에 대항하려는 마이너리티의 독립문화운동이다. 이들 음악의 최대 매력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의 무제한적인 몸부림이다. 인디가 미국 안의 식민지인 흑인 거리에서 발아하고 그것으로부터 연원한 로큰롤 음악과 밴드문화로부터 자양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록이야말로 질주하는 자들의 음악적 운명이며 밴드는 모든 것을 ‘스스로’ 이루려는 최소 단위의 음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도전적인 펑크 록의 기조 위에 거칠고 자유분방한 랩이 가세하는 이른바 하드코어 스타일을 선보인 ‘Our Nation4’의 검은 바탕 재킷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 검은 바탕 위에 또 하나의 검은색 재킷이 천천히 오버랩된다.
지금으로부터 꼭 15년 전, 무명의 더벅머리 청년들이 반란의 예술사를 기술하기 시작했다. 남루한 소극장 무대를 뒤흔든 이들의 사자후는 판에 박은 듯한 방송국 스튜디오의 지배 질서를 단숨에 뒤엎고 청년 수용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것은 공중파 매체에 의한 스타 매니지먼트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의, 그리고 소중한 성과였다. 당시의 언론들은 이 젊음의 질풍노도에게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을 선사했으며 그 폭풍의 선도자는 ‘들국화’였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목이 터져라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행진’했던 이들은 비록 ‘세계로 가는 기차’에 탑승하는 데엔 실패했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연대기를 열었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와 90년대 인디는 우리의 ‘얼터너티브’였다. 이 둘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으며 또 많은 것이 다르다. 80년대 기수들이 엄청난 흡입력을 지닌 카리스마를 무기로 새로운 반란을 도모하던 그 시대의 젊음을 장악했다면, 90년대 반항아들은 앞의 선배들이 가지고 있던 카리스마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지만 클럽이라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의 터전을 통해 다양한 도전의 패션을 쉴새없이 연금해낸다.
인디는 여전히 지하에 머물러 있다. 크라잉 너트가 인지도와 음반 판매에서 유력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댄스뮤직과 발라드의 스타 게임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다. 신해철이 이끌었던 ‘넥스트’가 해체한 뒤 주류 록 밴드라고는 ‘윤도현 밴드’가 유일한 이 척박한 풍토를 반전시킬 2000년대의 ‘꼴통’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단 2장의 정규앨범을 내고 해산했던 들국화의 신화가 새삼 그리워진다.
이 시리즈의 첫 주자인 크라잉 너트의 ‘말 달리자’는 글자 그대로 인디의 ‘애국가’가 됐으며, 특히 두번째 시리즈가 배출한 두 밴드 ‘노브레인’과 ‘위퍼’는 바로 인디음악의 자존심을 우리에게 납득시켜 주었다. 그리고 올해 드럭은 ‘레이지본’과 ‘쟈니 로얄’이라는 두 신예 밴드를 출격시킨다.
195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인디문화는 대자본의 시장논리와 권력의 정치적 억압에 대항하려는 마이너리티의 독립문화운동이다. 이들 음악의 최대 매력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의 무제한적인 몸부림이다. 인디가 미국 안의 식민지인 흑인 거리에서 발아하고 그것으로부터 연원한 로큰롤 음악과 밴드문화로부터 자양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록이야말로 질주하는 자들의 음악적 운명이며 밴드는 모든 것을 ‘스스로’ 이루려는 최소 단위의 음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도전적인 펑크 록의 기조 위에 거칠고 자유분방한 랩이 가세하는 이른바 하드코어 스타일을 선보인 ‘Our Nation4’의 검은 바탕 재킷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 검은 바탕 위에 또 하나의 검은색 재킷이 천천히 오버랩된다.
지금으로부터 꼭 15년 전, 무명의 더벅머리 청년들이 반란의 예술사를 기술하기 시작했다. 남루한 소극장 무대를 뒤흔든 이들의 사자후는 판에 박은 듯한 방송국 스튜디오의 지배 질서를 단숨에 뒤엎고 청년 수용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것은 공중파 매체에 의한 스타 매니지먼트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의, 그리고 소중한 성과였다. 당시의 언론들은 이 젊음의 질풍노도에게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을 선사했으며 그 폭풍의 선도자는 ‘들국화’였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목이 터져라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행진’했던 이들은 비록 ‘세계로 가는 기차’에 탑승하는 데엔 실패했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연대기를 열었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와 90년대 인디는 우리의 ‘얼터너티브’였다. 이 둘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으며 또 많은 것이 다르다. 80년대 기수들이 엄청난 흡입력을 지닌 카리스마를 무기로 새로운 반란을 도모하던 그 시대의 젊음을 장악했다면, 90년대 반항아들은 앞의 선배들이 가지고 있던 카리스마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지만 클럽이라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의 터전을 통해 다양한 도전의 패션을 쉴새없이 연금해낸다.
인디는 여전히 지하에 머물러 있다. 크라잉 너트가 인지도와 음반 판매에서 유력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댄스뮤직과 발라드의 스타 게임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다. 신해철이 이끌었던 ‘넥스트’가 해체한 뒤 주류 록 밴드라고는 ‘윤도현 밴드’가 유일한 이 척박한 풍토를 반전시킬 2000년대의 ‘꼴통’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단 2장의 정규앨범을 내고 해산했던 들국화의 신화가 새삼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