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일본 친구들과 ‘놀이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두 나라의 장기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고 서로 놀랐다.
한국 장기에서는 상대방의 병사를 잡으면 판에서 들어내 버린다. 그러나 일본 장기에서는 붙잡은 병사를 다시 내 편에 편입시켜 적을 공격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 친구들은 이것이 바로 일본의 국민성이라고 했다. 많은 전쟁을 하면서 살아온 일본인들은 포로가 되거나 전세가 불리해지면, 새로운 주인에게 충성해야 산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일본문화의 특징으로 주장한 ‘그러나`-`또한’ (but-also)의 틀이 생각났다.
일본 친구의 해석을 그 틀에 넣어보면 “충성스럽다. ‘그러나-또한’ 배신도 잘 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우리는 가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청명한 하늘과 풍요를 감상하고 감사할 여유가 없다. 정치인들이 가을이라는 화선지에 먹물을 부어 버린 탓이다. 물고 뜯기며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는 정치판을 보면서 나는 윷놀이와 고스톱을 생각하게 됐다. 정말로 놀이문화와 국민성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를 보자. 이것은 기본적으로 윷을 던져서 그 숫자만큼 ‘말’을 진행시키는 놀이다. 그러나 승패는 말을 얼마나 잘 쓰는지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을 쓰는 것을 살펴 보면, 자신의 말이 빨리 가도록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이 진행하지 못하도록 잡아내는 ‘네거티프 전략’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네거티브 전략은 고스톱에도 있다. 고스톱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바닥에 깔린 패를 많이 가져와 점수를 올리면 된다.
그러나 이 때에도 내 점수에만 신경써서는 안된다. 상대방의 패를 잘 살펴서 방해공작을 해야 한다. 만약 어느 사람이 청단을 하려고 하면, 나머지 두 사람은 청단이 나는 것을 방해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윷놀이의 ‘네거티브 전략’ 對 포커의 ‘포지티브 전략’
이에 비해서 서양 사람들이 즐기는 포커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의 진행 과정에서 상대방의 패를 나쁘게 만들 여지가 없다. 다만, 나의 패가 잘 들어오기를 바라고, 일단 패가 주어지면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 서양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특징이 포커라는 놀이를 만들었고, 또 포커를 즐기다 보니 자연히 그 곳에 담긴 ‘포지티브 전략’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서양 정치인의 선거운동이 상대방의 약점을 폭로하기보다 자신이 유권자를 위해 얼마만큼 잘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윷놀이와 고스톱에서 보이는 네거티브 요소는 정치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어떤 사람이 조금만 앞서가면 뒷다리 잡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 사는 어느 일본인이 다른 일본사람에게 한국인을 이기는 비결이라며 가르쳐 주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을 정도다. “유능한 한국인이 나타나면 그를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한국인에게 다른 한국인 친구를 소개해 주는 것이다.”
이런 국민성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고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런 노력의 첫걸음으로 윷놀이와 고스톱을 포지티브한 내용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명절 때마다 친지들이 모여 포티지브 전략을 구사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바뀌고, 정치인들 때문에 가을의 정취를 망쳐 버리는 일도 줄어들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성도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한다”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나-또한 포지티브 전략도 쓴다”고 표현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