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0

2011.10.31

총으로 민심 막으려다 총 맞았다

세기의 독재자들, 장기 집권에 탐욕으로 통치… 세계 최악의 독재자 1위로 김정일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1-10-31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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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으로 민심 막으려다 총 맞았다

    무아마르 카다피 1942~2011

    10월 20일 총에 맞아 죽은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는 금을 사랑했다. 1989년 총살된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방에는 모피, 보석이 가득했다. 23년간 튀니지를 주무른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가 도주한 대통령궁에선 마약 2kg, 현금 2700만 달러를 발견했다. 1986년 말라카냥궁을 접수한 필리핀 국민은 이멜다 마르코스의 구두 3000여 켤레에 혀를 찼다. 카다피의 딸 아이샤의 집에서 발견한 인어 모양의 황금색 소파가 눈부셨다. 소파에 조각한 인어 얼굴은 아이샤를 모델로 삼았다. 황금 소파는 카다피의 말로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남았다.

    독재자는 장기 집권하면서 인권을 유린한다. 자신을 숭배하게끔 한다. 언로를 막는다. 그러곤 세습을 시도한다. 탐욕이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탐욕은 몰락을 재촉하게 마련이다.

    튀니지 ‘재스민 혁명’을 필두로 올해 1월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봄바람이 불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독재자가 몰락했다. 살아서 실권(失權)한 독재자는 말로가 처참하다. 대체로 단죄를 피하지 못한다.

    보석과 모피 마니아였던 엘레나는 남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함께 총살당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22년간 루마니아를 철권 통치했다. 카다피처럼 민주화 시위를 총으로 막으려고 했다. 부부는 크리스마스에 죽었다. 시민과 반군이 부부를 처형했다. TV 방송이 부부를 총살하는 장면을 중계했다. 부부의 죽음은 루마니아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독재 치하에서 민중은 피폐하고 궁핍했다. 차우셰스쿠는 집권 기간에 시민 6만 명을 죽였다. 부부는 헬기를 이용해 도망치려다 붙잡혔다. 체포, 재판, 처형을 하루에 마무리했다. 부부는 북한으로 망명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의 차우셰스쿠는 김일성을 모방해 우상화 작업을 벌였다.

    발칸의 도살자와 사담 후세인



    부부는 죽어서도 안온하지 못했다. 2010년 루마니아 정부는 신원 확인을 명목으로 무덤을 파헤쳤다. 이들의 죽음은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그것과 더불어 극단적 최후의 전형으로 꼽힌다. 연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알프스 산맥에 올라 타 도망치던 무솔리니를 유격대가 붙잡았다. 연인과 함께 처형당한 무솔리니의 주검은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내걸렸다.

    ‘발칸의 도살자’라 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2000년 실각한 뒤 2001년 4월 세르비아에서 체포됐다. 1989년 5월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대(大)세르비아주의를 제창하면서 민족주의를 격발했다. 다양한 민족이 혼재하는 옛 유고 전역을 세르비아 민족이 통치하겠다는 탐욕이었다. 1991~95년 크로아티아 내전에서 20만 명, 1992~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에서 10만 명이 죽었다.

    1998년 코소보 사태 때는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 1만 명이 주검이 됐다. 85만 명은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전락했다. 인종 청소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1999년 구(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1999년 전쟁범죄와 학살죄,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밀로셰비치를 기소했다. 2년 후 체포된 그는 전범 재판을 받던 2006년 네덜란드 헤이그 감방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중동의 맹주를 꿈꾸며 24년간 이라크를 지배한 사담 후세인은 2003년 12월 고향인 티크리트에서 숨어 지내다 미군에 붙잡혔다. 후세인의 마지막 길도 비참했다. 덥수룩한 수염, 초라한 행색으로 토굴에 숨어 지냈다. 2006년 반인륜적 학살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라크 형법은 70세가 넘은 사람의 사형을 금지한다. 후세인은 70세를 4개월 앞둔 시점에 사형장에서 죽임을 당했다.

    니카라과를 62년간 지배한 소모사 일가의 최후도 허망했다.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는 20년 독재 후 1956년 암살당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차례로 차지했다. 아버지, 형이 가졌던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데바일레는 아버지처럼 암살당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팔레비 국왕 일가도 몰락했다. 40년간 이란을 통치한 팔레비는 혁명 이듬해인 1980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딸 레일라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1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었다. 아들 알레자는 올해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총 자살이었다.

    부패의 왕 수하르토 대통령

    총으로 민심 막으려다 총 맞았다

    베니토 무솔리니 1883~1945

    목숨을 유지하더라도 말로가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7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칠레인 3197명을 죽였다.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체포됐는데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일이다. 건강상 이유로 석방돼 귀국했으나 칠레 정부는 그를 가택에 연금했다. 2006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갔다. 22세 연하 부인이 빼돌린 657억 원 상당의 금괴(1.5t)를 비롯해 재산이 한국 돈 9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금융 동결 조치로 찾아 쓸 길이 난망하다. 올해 75세인 벤 알리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패의 왕으로 불리는 하지 무하마드 수하르토는 1998년 반정부 봉기로 물러난 뒤 10년간 은둔하다 사망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04년 그를 ‘20세기 가장 부패한 지도자’로 선정했다. 빼돌린 돈만 150억~350억 달러로 추산했다. 32년 동안 집권한 그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왕에 가까웠다.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1979년 반군에 쫓겨 리비아로 도망쳤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죽었다. 윈스턴 처칠이 ‘열대의 정원’이라고 부른 우간다는 아민이 집권한 8년 동안 지옥으로 변했으며 30만 명이 살해됐다. 이 ‘우간다의 히틀러’는 스카치위스키 마니아로 유명했다. 매주 영국으로 특별기를 보내 위스키를 공수해왔다. 자신을 따르는 이에게 고급 위스키를 선물로 나눠주거나 함께 마시면서 충성을 다짐받았다. 북한의 독재자는 최고급 코냑을 즐긴다. 코냑 제조사 ‘헤니시 파인 스피리츠’는 김정일이 1989년부터 99년까지 코냑을 구입하는 데 매년 65만~80만 달러를 썼다고 밝혔다. 김정일은 아민의 위스키와 비슷한 용도로 코냑을 사용했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쫓겨난 뒤 “구두를 모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일갈해 필리핀인을 들끓게 한 이멜다 마르코스의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실권한 뒤 3년 만에 병으로 죽었다. ‘미스 필리핀’ 출신의 이멜다는 올해 82세로 필리핀으로 되돌아가 하원의원으로 재직한다.

    이집트 혁명으로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83)는 후계자로 불리던 두 아들과 함께 재판을 받는 중이다.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유혈 진압을 명령하고 공공 재산을 빼돌린 혐의다.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이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과 비슷하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면서 ‘다음 차례는 누구?’라는 질문에 관심이 쏠린다.

    알리 압둘라 살레(69) 예멘 대통령은 33년째 권좌에 앉아 있으나 튀니지, 이집트 혁명의 영향으로 반정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최대 위기에 처했다. 그는 1979년 북예멘 권좌에 올랐으며 90년 5월 통일예멘의 대통령직을 맡았다. 권력을 유지하고자 이슬람 반군, 민병대를 처단해 이슬람 세계에서도 따돌림당한다. 재스민 혁명 이후 야권 연합체가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10월 초 퇴진을 발표했으나 시민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총으로 민심 막으려다 총 맞았다

    김정일 1942~

    이슬람 카리모프(73)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폭정으로 악명 높다. 6500명의 반체제 인사를 투옥했다. 정치범 2명을 산 채로 물에 넣어 끓이는 고문에 개입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국을 7번이나 방문했다.

    1989년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67) 수단 대통령은 30만 명이 죽은 다르푸르 대학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나 칼끝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도 악명 높은 독재자다. 제나위 총리는 선진국으로부터 받은 기아 지원금을 빼돌려 세계 각국의 부동산을 구입했다.

    무가베 통치 기간 2억3000만% 물가상승

    로버트 무가베(87) 짐바브웨 대통령은 30년간 집권했다. 45세 연하 부인과 산다. 3만여 명에 달하는 소수 부족을 학살했으며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을 살해했다. 정적 암살을 기도한 적도 있다. 통치 기간 물가상승률이 2억3000만%에 달한다. 2010년 짐바브웨 실업률은 90%.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는 홍콩과 중국 등에 수억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 그레이스의 사치벽은 엘레나, 이멜다의 낭비벽을 뺨친다.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74) 알제리 대통령은 건재하다. 물론 알제리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거세다. 튀니지에서 일어난 혁명이 그를 압박한다. 그러나 일당독재 체제를 구축한 부테플리카는 2008년 대통령 연임을 제한하던 헌법 조항마저 폐지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57) 벨라루스 대통령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주창해 ‘벨라루시안 지리놉스키(백러시아 극우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아시아에는 김정일이 있다.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악의 독재자 1위로 김정일을 선정했다. 무가베가 2위다. 김정일은 주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최대 20만 명을 강제수용소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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