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1

..

생명공학의 발달 … 福인가 禍인가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1-29 13: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생명공학의 발달 …  福인가  禍인가
    조지 오웰의 ‘1984년’(1949)과 앨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는 우리에게 소름 끼치는 미래를 제시했다. ‘1984년’이 정보기술의 미래를 다뤘다면 ‘멋진 신세계’는 생명공학의 발전이 낳은 끔찍한 세상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궁이 아닌 시험관에서 배양되고, 소마라는 환각제를 통해 순간적인 행복을 얻으며, 필리라는 가상체험 극장에서 실제와 똑같은 감각을 느낀다.

    두 권의 책이 출간된 지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 우리는 두 SF작가의 예지력을 평가하는 입장이 됐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휴먼 퓨처(원제 Our Posthuman Future)’에서 ‘1984년’의 정치적 예측은 빗나갔고, ‘멋진 신세계’는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즉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가 오웰의 텔레스크린을 현실화했지만, PC가 중앙집권화와 전체주의의 도구가 되는 대신 정보의 접근성 측면에서 민주주의 실현과 정치의 분권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헉슬리가 그려낸 ‘멋진 신세계’는 이미 현실화됐거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84년’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에서는 아무도 불행하지 않으며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생물윤리학자 레온 카스는 “질병이나 노예적 상태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인간과는 달리 ‘멋진 신세계’의 탈인간화된 인간들은 불행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탈인간화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굴종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노예다”라고 했다.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린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휴먼 퓨처’는 생명공학에 대한 가장 큰 두려움-인간본성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을 다룬다. 저자는 먼저 한두 세대 후에 펼쳐질 세 가지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첫째, 인간의 성격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신약(新藥)의 대중화다. 미래에는 제약회사들이 유전자 지식을 이용해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약품을 제조할 수 있게 돼, 무기력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활기찬 성격의 사람으로 바뀔 수 있고, 수요일에는 이런 성격을, 주말에는 저런 성격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독, 부작용, 장기적인 뇌손상을 걱정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약을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둘째, 수명의 연장과 노화의 해결이다. 아직 생명공학은 노화를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면 자녀뿐만 아니라 손자와 증손자 세대와도 경쟁하는 시대가 온다. 할머니와 손자뻘 되는 남성의 로맨스도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자신의 아이를 최상의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착상 전에 정기적으로 배아를 선별한다. 앞으로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자신보다 열등한 친구를 보면, 그들이 유전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고삐 풀린 생명공학이 이미 세 가지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프로작이나 리탈린 등 향정신성 약물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인간의 공격성을 줄이고, 인간 행동을 조작할 뿐만 아니라 지능이나 기억력, 정서적 감수성과 성적 능력을 증가시킨다. 인간 유전공학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이런 약물만으로도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래의 유전공학은 과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우생학’이라는 용어 대신 ‘개량’이라는 말로 다윈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NBA 농구 선수로 키우고 싶은 부모는 평균 이상의 큰 키에 대한 정보를 지닌 유전자를, 하버드 대학에 들어갈 아이를 원하면 그에 맞는 정보를 지닌 유전자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유전자 경쟁은 마치 군비경쟁처럼 어느 쪽도 이익을 얻지 못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다만 종교적이거나 다른 어떤 이유로 유전자 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맞춤아기’를 만드는 시대에 자신의 자녀만 뒤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후쿠야마 교수는 바이오테크놀로지 시대의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며 생명공학에 대한 정치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인간의 번영을 증진시키는 기술과 인간의 존엄성과 복지를 위협하는 기술을 구분하고, 이를 규정한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휴먼 퓨처’는 통제되지 않은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파장과 미래를 냉철하게 예견한 책이다. 부자의 유전자와 가난뱅이 유전자가 고착화되는 시대, 행복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미 포스트휴먼의 역사는 시작됐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송정화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360쪽/ 1만3000원





    화제의 책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