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8

2009.08.11

“이주노동자 삶? 백문이 불여일견”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8-05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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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 삶? 백문이 불여일견”
    한국 여고생과 사랑에 빠진 동남아 노동자, 트랜스젠더에게 입양된 필리핀 아이, 고국에 돌아가서도 한국을 잊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제4회 이주노동자 영화제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들거나, 이주노동자의 얘기를 다룬 작품이 상영된다.

    집행위원장 마붑 알엄(32) 씨는 “이주노동자들도 웃고 울고 사랑하고 꿈꾸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1999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도 처음엔 2~3년 돈을 벌고 돌아갈 계획이었다. 3년째 되던 해, 이대로 한국을 떠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경험한 이주노동자들의 끔찍한 현실을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영상으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는 2002년부터 미디어액트에서 영상제작을 배웠다. 이후 ‘쫓겨난 사람들’(2004), ‘리터니’(2009) 등 다큐멘터리를 감독했다. 특히 영화 ‘반두비’에서는 여고생과 사랑에 빠지는 이주노동자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 때문에 알엄 씨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악플(악성댓글)도 많이 달렸고,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전화도 받았어요. 시커먼 동남아 남자가 뽀얀 여고생과 사랑에 빠지는 걸 인정 못하는 거죠.”



    이제 알엄 씨는 유명인사다. 진주영화제에 갔을 때 많은 시민이 그를 알아보고 응원했다. 지하철에서 ‘영화배우’라고 치켜세우며 함께 사진 찍자고 한 사람도 있었다. 요즘 그는 문승옥 감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에 출연 중이다. 이주노동자방송(MWTV) 제작과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도 활발히 하고 있다. 영상을 통한 이주노동자 알리기 운동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한국인들은 베트남 쌀국수나 인도 카레는 좋아하면서도 동남아 노동자들을 싫어하는데, 참 이상해요. 제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이주노동자를 친구로 보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언젠간 우리를 평범한 친구로 봐줄 날이 오겠죠.”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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