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1

2009.01.27

그놈의 돈이 웬수 ‘콩가루 집안’ 늘어난다

재산 둘러싼 ‘골육상쟁’ 가족 해체 현주소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1-19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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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놈의 돈이 웬수 ‘콩가루 집안’ 늘어난다
    [사례 1 |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오빠]

    1남2녀의 막내인 A(32·여)씨는 최근 어머니 통장에서 한 달여 전 수천만원이 인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 부동산을 판 돈을 어머니 통장에 넣어뒀는데 오빠가 자신의 빚을 갚는다며 그 돈을 빼내 쓴 것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특별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기에 아버지 소유의 부동산과 예금 모두를 어머니 명의로 돌리기로 자녀들끼리 합의했지만 오빠의 태도가 바뀐 것. 오빠는 어머니가 생존해 있는데도 상속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미 ‘조상 땅 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아버지의 부동산을 모두 파악했다고 한다.

    A씨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라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오빠가 상속받는 것에 반대한다. 오빠가 전에도 집안 재산을 날린 적이 있고, 사업한답시고 어머니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할까봐 걱정돼서다. 특히 마음껏 써보지도 못하고 어렵게 모은 아버지의 재산이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오빠와 법적 소송도 불사할 생각이다. A씨는 “우리 집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돈 앞에선 사람이 간사해진다”며 “정말 저질에 속물이다. 오빠가 너무 실망스럽다”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사례 2 | 이혼한 어머니의 재산을 노리는 이복언니]

    지난해 이혼한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사는 B(27·여)씨. 어머니는 의사가 당뇨 합병증으로 언제 사망할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어머니가 이혼을 했기에 B씨는 현재 아버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 있는 상태다. 어머니와는 가족관계등록부상 남남이다. 어머니에게는 서울 강남에 자기 명의로 된 아파트가 한 채 있다. 문제는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생긴 이복언니가 어머니와 같은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 있다는 것. 어머니가 많이 편찮다는 소식에 이복언니는 전에 없이 아는 척을 한다.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머니 아파트는 내 것”이라며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B씨는 어머니가 유서 없이 사망할 경우 이복언니와 재산을 나눠 가져야 하는지 걱정이다.

    B씨는 어릴 때부터 사실상 혼자 어머니를 부양했다. 최근엔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돼 병원비와 약값을 대느라 자기 월급을 쏟아붓는 것은 물론 대출까지 받은 상태인데, 그나마 집 한 채 있는 것도 갑자기 나타난 이복언니에게 상속권리가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B씨는 이복언니가 상속권을 주장할 경우에 대비해 상속회복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놈의 돈이 웬수 ‘콩가루 집안’ 늘어난다
    [사례 3 | 행정도시 건설로 땅값 오르자 여동생이 소송 제기]

    4남5녀 가운데 장남인 C(56)씨는 얼마 전 셋째 여동생에게 고소를 당했다. 동생은 C씨가 다른 형제들을 속이고 등기했으니 땅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등기하지 않은 땅을 다른 형제들에게 분배하라고 요구했다. C씨의 아버지는 15년 전 사망했다. C씨는 부동산특별법으로 농지정리 땅을 환지해 아버지 명의로 된 땅의 일부를 자기 명의로 등기했다. C씨의 아버지는 장남에게 800평, 차남에게 500평, 3남에게 200평, 4남에게 200평을 나눠 가지라고 하면서 딸들에게는 여건이 안 돼 상속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유언이 있는 데다 특별히 쓸모 있는 땅도 아니어서 아버지 명의의 등기를 바꿔놓지 않았다.

    이후 C씨는 10년 넘게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런데 몇 년 전 행정도시 건설로 땅값이 오르자 셋째, 넷째 여동생을 중심으로 “많은 땅이 아버지 이름으로 돼 있으니 자녀들이 모두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며 “유언을 문서로 남겨놓지 않은 만큼 오빠가 주장하는 아버지의 유언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최대 명절인 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사는 사람들도 이날만은 고향집에 모여 부모형제와 살가운 정을 나눈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은 옛날 얘기로 밤을 지새운다. 일상의 시름을 잠시나마 뒤로한 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포근한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가족의 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게 있으니 바로 돈이다. 최근 한 방송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10억원 이상이면 양심을 저버릴 수 있고(50.7%), 부모형제 친구 연인도 버릴 결심이 있다(50.8%)고 답했다. 사실 돈 때문에 부모형제와 골육상쟁을 벌이는 경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서민도 재벌도 다를 게 없다.

    상속을 둘러싼 부모형제간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된다. 상속에 관한 법적 분쟁은 크게 상속회복 청구소송, 상속재산유류분 반환소송,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으로 나뉜다. 상속회복 청구소송과 상속재산유류분 반환소송은 민사법원,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은 가정법원이 맡는다. 상속분쟁에 파생되는 소송도 많다. 예를 들면 사실혼 관계는 법적으로 상속을 인정하지 않기에 상속인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확인받기 위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 인지소송 등도 벌어진다.

    상속 관련 분쟁은 최근 들어 증가 추세다. 상속 관련 사건은 2004년 2만1709건이 접수된 이후 2008년엔 2만6797건으로 23.4% 증가했다. 반면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은 2004년 978건에서 2008년 276건으로 1/4 수준으로 급감했다(그림 참조). 법원 관계자는 “상속회복 청구소송이나 상속재산유류분 반환소송은 일단 상속이 진행된 것을 전제로 한다.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은 공동 상속인들 간에 상속재산분할에 대한 협의가 안 된 경우 발생한다. 요즘엔 상속 이후 자신의 지분을 다투는 사례가 더 많다”며 상속재산분할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배경을 설명했다.

    재산 나눠주고 땅 치며 쓸쓸한 노년

    상속분쟁은 사망한 부모의 재산을 둘러싼 다툼이 대부분이지만 부모 생전에도 재산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처럼 아들과 딸, 형제간 재산상속 다툼이 주류였다. 1991년 개정된 가족법은 재산상속에서 아들딸 구분 없이 균등한 분배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아들 중심의 유산 승계는 여전해서 여권신장과 함께 불균등한 상속을 문제 삼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 최근에는 처럼 행정수도건설, 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한 토지보상금 명목의 돈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많다. 충북 청주·청원지역에서는 2001년부터 각종 택지개발보상금 명목으로 약 8200억원이 풀렸다. 2009년 한 해에만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10조원에 이르는 토지보상금이 시중에 풀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갑작스레 ‘돈벼락’을 맞는 사람이 늘면서 보상금을 둘러싼 가족 분쟁도 그것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사전에 재산의 합리적인 분할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분쟁 증가의 한 원인이다. 수십억원대 재산을 가진 한 사업가는 “재산을 일찍 자녀들에게 나눠줬다가 아무 대접도 못 받고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죽을 때까지 내 재산 마음대로 쓰면서 미련 없이 살다 갈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생전에 재산상속을 명확히 하지 않다 보니 사후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은행 테헤란로지점 정병민 PB팀장은 “고액 자산가 대부분이 유언장 만들기를 꺼려한다. ‘나 죽고 난 뒤의 일’이라며 안이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이미 자식들 간에 대충 합의를 봤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합의지 자식들의 합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상속이 문제가 되면 가족 간의 사적 분쟁이다 보니 웬만하면 법적 소송을 피하고 조정과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굳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송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 하지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형들과 재산 분쟁 중인 박모(44) 씨는 “서열에 따라 무조건 동생을 눌러놓고 자기들만의 계산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도무지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며 “공연히 대화한답시고 모여서 내뱉는 말 때문에 서로 감정만 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족 간에 소송이 벌어질 정도면 조정과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막판’에 이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법원에서도 가능한 한 조정을 시키려 하지만 오히려 가족 간 소송이 타인 간 사건보다 원만한 조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법정까지 오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감정싸움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가족 간 소송이 제기되면 돈보다는 인간적 도리를 내세우며 상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각인시키는 데 집중한다. 사건의 쟁점은 ‘정당한 재산분할’인데 다툼 과정에서 감정이 개입돼 인격적 험담이 오간다. 대전고등법원 이종석 부장판사는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비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내와 자식 등 배후의 제삼자들을 고려하다 보니 자신은 형제들과 화해해 적당히 처리하고 싶지만 뜻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가족 간 소송으로 가족관계가 붕괴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법적 해결에 나선 것을 결코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고 지적한다.

    사전 상속계획으로 분쟁 막아야

    2005년 2월 설 연휴에 경기 파주에서 유산분배에 불만을 품은 맏형이 동생 가족에게 엽총을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상속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자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 그래서 차라리 법적으로 상속분쟁의 소지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이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상속문제 전문 경태현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선 조정도 어렵고 감정 대립도 심하지만, 일단 결론이 나오면 서로 수긍하고 이후 관계를 회복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법조인과 PB는 법적 소송 이전에 상속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이 상속인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 경태현 변호사는 “피상속인이 재산분배 계획을 잘 세우고 이를 법적으로 명확히 해놓는다면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족 간 소송에는 객관적인 증거가 거의 없다. 가족 간의 법률행위를 문서화할 만큼 우리의 법률문화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이외의 사람은 그 내용을 알기 어렵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임위원은 “피상속인의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분쟁의 소지가 된다. 가족 구성원이라 할지라도 재산 문제만큼은 분명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은행 정병민 PB팀장은 합리적인 유언장 작성을 통해 가족 간 분쟁을 사전에 막자고 주장한다. 정 팀장은 “유교적 관념이 뿌리 깊은 우리 현실에서 유언장을 미리 쓴다는 것이 아직은 낯설다. 하지만 유언의 취지대로 상속이 이뤄지면 분쟁을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속세 등을 위한 현금자산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며 “당장은 좀 불편하더라도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두는 것이 남은 가족에게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 법적 분쟁은 물질만능주의가 가족 붕괴를 가속화하는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잘 물려준 재산은 자손들에게 큰 복이지만 자칫하면 복이 아니라 재앙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참다운 상속은 물질적 재산보다 고인의 가치관과 삶의 철학을 담은 정신적 재산이 아닐까.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

    피보다 진한 돈 … 감정싸움, 법정싸움


    그놈의 돈이 웬수 ‘콩가루 집안’ 늘어난다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 때 박용성 회장이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돈 앞에 가족애가 무너지는 것은 비단 장삼이사(張三李四)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돈 때문에 가족전쟁을 치르곤 한다. 그래서 ‘물보다 진한 것이 피고,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다’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2005년 7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새 회장으로 선임된 지 얼마 뒤 형인 박용오 전 회장 측에서 박용성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비리 의혹을 담은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집안싸움이 터졌다. 그 와중에 가족들이 반목해 박 전 회장을 가문에서 제명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창사 이래 ‘가족경영’을 자부해온 두산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2003년 8월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두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고(故)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 회장 간에 경영권 다툼이 일었다. 2004년 3월 현 회장 측이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승리해 ‘숙부의 난’은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족 간 불화로 회사가 경쟁기업에 넘어가는 사례도 있었다. 장남 김명환 부회장과 가족 간의 오랜 불화로 휘청거리던 오양수산은 2007년 어머니 최옥전 씨 등 유가족이 창업주의 지분을 사조산업에 전격 매각해 충격을 던졌다. 당시 오양수산 임직원들이 창업주 김성수 회장의 장례식을 연기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감정싸움을 넘어 법적 분쟁도 불사한다. 1996년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 122만m2(37만평)의 소유권을 놓고 창업주 신격호 회장과 동생 신준호 부회장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신 회장이 신 부회장에게 명의 신탁한 땅에 대해 신 부회장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 당시 신 회장은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신 부회장의 그룹 내 지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들의 집안다툼은 해외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2006년 미국 CBS방송과 미디어회사 비아콤을 소유한 미디어 황제 섬너 레드스톤은 아들과 경영권을 놓고 송사를 벌였다. 레드스톤 회장이 경영권을 딸에게 물려주려 하자 아들이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것.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도 가족 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머독 회장의 둘째 아내와 셋째 아내가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장남 라클란이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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