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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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무원 묻지마 살해 ‘관가 충격’

  • 천광암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입력2008-12-01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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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전·현직 고위공무원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고이즈미 다케시(小泉毅·46)란 사내가 전직 후생노동성 차관과 가족들을 연이어 습격해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힌 사건 때문이다.

    첫 사건이 일어난 것은 11월17일 저녁. 범인은 사이타마(埼玉) 현 사이타마 시에 있는 야마구치 다케히코(山口剛彦) 전 후생성 사무차관 자택을 찾아가 야마구치 부부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이어 다음 날 저녁에는 도쿄 나카노(中野) 구에 있는 요시하라 겐지(吉原健二) 전 후생성 사무차관의 자택을 찾아가 그의 아내를 흉기로 마구 찔러 중상을 입혔다. 요시하라 전 차관은 다행히 이날 집을 비워 화를 면했다.

    이 사건은 전직 고위공직자만을 노렸다는 점과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담하다는 점 때문에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충격은 11월22일 범인이 경찰에 자수한 뒤 더욱 커졌다. 그의 자백을 통해 드러난 범행 동기와 당초 계획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어처구니없기 때문이다. 먼저 범행 동기를 보자. 고이즈미 용의자가 자수 전 일본 언론 등에 보낸 e메일에 따르면, 그는 34년 전 집에서 키우던 애견이 보건소에서 살(殺)처분 당한 보복으로 이번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범행 대상자도 무려 10명. 그러나 사건 후 경찰의 경비가 강화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가 경찰에 자수할 때 몰고 간 경승용차 안에서는 범행 대상 10명의 집 주변 지도가 발견됐다.

    34년 전 애견 살처분에 앙심 품고 치밀한 범행계획

    고이즈미 용의자가 10명을 범행 대상으로 고른 데는 아무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경찰에서 “관료는 쓰레기다. 가족도 잡어(雜魚)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관료라는 불특정 다수 집단을 향해 34년 전 애견을 잃은 데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던 것이다.



    이번 사건이 일본 사회에 던진 충격의 강도나 범행의 본질은 6월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당시 범인은 7명을 숨지게 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혔지만, 피해자들은 범인과 아무 관련도 없는 무고한 일반인이었다. 범인은 그저 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해 도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아키하바라를 선택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범인 모두 사회적 소외계층이라는 점이다. 고이즈미 용의자는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아키하바라 사건의 범인 또한 한 자동차공장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근로자였다.

    끔찍한 두 사건을 모두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두 용의자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사회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고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이 ‘극장형’ 흉악범죄에 빠져드는 잠재적 범죄자를 줄이는 길일 것이다. 이는 물론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천광암 특파원이 임기를 마치고 12월 귀국합니다. 그동안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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