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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笑笑한 일상’④

한 모금에 시름 훌훌 흡연자를 위한 변명

한 모금에 시름 훌훌 흡연자를 위한 변명

한 모금에 시름 훌훌 흡연자를 위한 변명
며칠 전 혼자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가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영화상영 시간이 10분 정도 남아서 담배나 한 대 피울까 하는 마음에 옥상을 찾았다가 그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옥상 벤치에 앉아 연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데 문 쪽에서 덜컹 하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터 바로 앞까지 알뜰하게 다 태우고, 기지개도 한 번 늘어지게 켜고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제야 조금 전 덜컹 했던 소리가 문 잠그는 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엔 뭐 별일 있겠어 하는 생각에 퉁퉁, 문을 두들겼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이번엔 탕탕탕, 좀 불안한 마음까지 주먹에 실어 우당탕탕탕 계속 소리를 높여갔다. 철문에서 나는 소리는 노래방 에코처럼 꽤 길게 밤하늘 가득 울려퍼졌지만, 그러나 문 저편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때맞춰 휴대전화 배터리도 나갔으니 이게 뭔가, 영화 감상은커녕 자칫하다간 옥상에서 1박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슴 한쪽을 베고 지나갔다. 그래서 담배를 연거푸 피웠고, 그러는 와중에도 주먹으로, 발로 계속 철문을 두들겼다.

다행스럽게도 30분 정도 지난 후, 순찰을 돌던 옆 건물 관리인의 신고로 무사히 풀려나게 되었다. 손전등을 들고 철문을 연 초로의 관리인에게 나는 대뜸 짜증부터 냈다. 그러나 솔직히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아이, 아저씨,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 하고 문을 잠그시면 어떡해요?

관리인은 손전등을 내 얼굴 위로 비추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마지막 상영시간도 다 됐고 해서 당연히 없는 줄 알았지. 아니, 그새를 못 참아서 옥상까지 담배를 피우러 왔어? 쯧쯧.



나는 터덜터덜 관리인의 뒤를 쫓아 계단을 내려오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두 시간 동안 담배를 못 피우니까 미리 한 대 피워둘까 한 거죠.

사실 그동안 담배 때문에 맺힌 한이 좀 많았다. 담배인삼공사를 다녔던 아버지 덕택에 조금 이른 나이부터 흡연자의 길로 접어든(집에 담배가 많았으니까. 우리 집 거실 장식장엔 수석이나 조각품 대신 신상 담배들이 진열돼 있었다) 처지였으니, 고등학교 시절 종종 학생과 선생님들 앞으로 끌려가 반성문을 쓰고 오리걸음을 걷고 엎드려뻗쳐를 당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항상 이런 질문을 했다.

영화관 옥상에서 담배 피우다 30분간 갇혀

-어린 눔의 자식이 벌써부터 담배나 피우고 말이야! 네 아버지 뭐 하셔?

그때마다 나는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담배인삼공사 다니시는데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한동안 가만히 나를 노려보다가 더 화난 표정으로 엉덩이를 때리며 말했다.

-효자 났다, 이 자식아, 효자 났어!

아버지가 흡연 환경을 조성한 것은 맞지만, 사실 담배를 피우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내 의사였다. 그러니까 그 시절 나는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어떤 사고를 칠 것만 같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불덩이를 지니고 살았다. 단순한 학업 스트레스는 아니고, 형체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과 자괴 같은 거였다. 내면에선 끊임없이 어떤 말들이 쏟아져나오는데, 그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 나는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조금 평화롭고 아늑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효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애연가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니까 나는 내심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다. 그동안 흡연이 방지해낸 가정불화가 몇 건이고, 강절도가 몇 건이고, 자살이 몇 건이고, 살인이 몇 건이고, 성희롱이 몇 건이고, 탈영이 몇 건인지 그런 것도 좀 생각해달라는 말이다. 담배란 때론 요즘 시행되고 있는 ‘이혼숙려기간제’를 닮아, 사태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게 하고, 심장박동 소리를 정상으로 돌려놓아 이성적 시선을 복원해준다. 극단으로 치닫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다.

극단으로 가는 게 두려워서 담뱃불을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뜻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왜 군대에서 가장 많이 담배를 배우는지 아는가? 왜 군대가 사병들에게 연초비 명목으로 담배를 나눠주는지 생각해보았는가? 그곳이 바로 두려움을 가르치는 합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담배로써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이완시키라고 만든 제도. 국방부도 나름 다 생각이 있었던 거다.

흡연율이 행복지수와 연관, 왜 모를까?

흡연을 개개인의 건강문제로 보고 그것에 맞춰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아무 쓸모 없는 짓거리처럼 보인다. 한 나라의 흡연율이 그 나라의 행복지수와 연관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할까? 초등학생들까지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교육현실과 흡연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 사이에는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외환위기 때 왜 우리나라의 흡연율이 갑작스럽게 늘어났는지, 이런 질문들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면 답은 뻔하게 나온다. 한 나라의 금연정책은 보건복지가족부가 아니라 지식경제부나 교육과학기술부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게 해달라는 소리다.

한 모금에 시름 훌훌 흡연자를 위한 변명
나는 요새 당연하게도, 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아내 등쌀에 베란다로 쫓겨났다가, 다시 현관문 밖 계단 창가로 내몰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렇게 센서등에 의지해 담배를 피우다 보면 저 멀리 앞 동에서도 센서등이 작동하는 것을 본다. 17층에서도 깜빡, 7층에서도 깜빡. 그 불빛들이 어떤 의지가 된다.

나만 두려운 것은 아니니까. 우린 다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 이 삭막한 도심에서 유일하게 풀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그래도 우리가 잘 버텨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



주간동아 2008.11.04 659호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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