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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16)|번동2단지 종합사회복지관 ‘녹색아버지봉사단’

“남 돕는 행복 진짜 끝내줍니다”

무뚝뚝한 아버지들 받는 기쁨에서 이젠 주는 기쁨으로 인생 보람

  • 김은지 자유기고가 eunji8104@naver.com

“남 돕는 행복 진짜 끝내줍니다”

“남 돕는 행복 진짜 끝내줍니다”
금요일 오후 2시, 박○○(59) 씨는 번동2단지 종합사회복지관으로 향한다. 녹색아버지봉사단의 ‘영양죽 배달 봉사’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흰 강아지 복돌이와 함께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회원들이 모두 모이면 푸드뱅크라고 하는 창고로 간다. 큰 냉장고가 있는 이 창고에는 하루 전 후원업체에서 보내준 냉동 영양죽과 국이 보관돼 있다. 박씨는 오늘 음식을 제공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받아 수를 확인하고 파란 가방에 죽과 국을 담는다.

“여덟 집이 맞나?” “어디 보자~.” 오늘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두 사람의 배달 몫을 셋이 나누느라 회원들은 죽과 국의 개수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점검해본다. 냉동 팩을 꺼냈다 담는 손길에 애정이 담겨 있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모두 각자 맡은 구역으로 출발한다.

음식 배달에 말벗 봉사까지 제공

“아유, 더운데 수고가 많으세요. 정말 감사하게 잘 먹고 있어요.”(이○○ 할머니)



박씨는 늘 밝고 쾌활한 이○○ 할머니와 요새 건강은 어떤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영양죽 배달 봉사는 6월까지 대학생들이 맡아 했다. 학점을 따기 위해 온 탓에 30분 안에 끝내버렸던 대학생들과 달리, 녹색아버지봉사단이 맡은 뒤론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동네 이웃을 찾아가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기 때문이다. 영양죽 배달에서 나아가 외로운 노인들에게 말벗 봉사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집에서도 음식만 드리고 나오지 않고 잠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이가 없어 음식을 씹기 힘든 김○○ 할머니는 죽이 입맛에도 맞고 소화가 잘되신다고. 그리고 이내 아드님 사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며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그래도 약에 의존하면 좋지 않아요. 될 수 있으면 진통제는 자제하시고요, 독서나 뜨개질 같은 활동을 하시면 좋을 텐데요. 아프다는 생각이 좀 덜 들도록.” 박씨는 8년 전 간경화를 앓았으나 자연요법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그런 자신의 경험을 많은 이웃에게 나눠주고 싶다. 한동안 담소를 나눈 뒤 박씨는 일어난다. 문 밖에서 점잖게 앉아 박씨를 기다리는 복돌이를 보고 할머니가 웃는다. 박씨는 할머니에게 잠깐 복돌이의 실력을 보여준다. “앉아” “악수” “이리 와”. 주인의 말을 잘 알아듣는 복돌이를 보고 할머니는 잠시나마 아픔을 잊고 웃음을 찾는다.

“복지관에서 왔습니다~.”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나오는 사람이 없다. 여름이라 현관문이 조금 열려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거동을 못하는 한 노인이 박씨를 향해 작은 소리로 “거기 두고 가세요” 한다. 영양죽 배달을 하다 보면 이렇게 아프고 어려운 이웃들의 모습을 자주 살피게 된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구임대아파트 지역으로 생활고와 그로 인한 가정문제를 가진 집이 많다.

특히 사회적, 가정적으로 역할을 잃은 장년남성이 술이나 도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가정폭력, 범죄증가 등의 2차적 문제로 발전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매 음주 시 소주 한 병 이상, 주 3일 음주를 할 때 남성이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22.4%에 이른다. 이중 7.3%는 심한 폭력을 행사(여성가족부, 2005)하고 있다. 또 강력범죄와 교통사고 특례범을 합친 총인원의 43.5%(박영일, 2002)가 음주 상태였다.

번동2단지 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2005년, 장년남성의 권태감을 해소하기 위해 ‘영구임대아파트단지 실직 장년층의 엠파워먼트(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은행장을 초청한 교양강좌와 제주도에서 있었던 경제교육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대상자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녹색아버지봉사단’은 2년간 엠파워먼트 프로그램을 통해 힘을 얻은 장년층이 결성한 것이다. 도움을 받던 수혜자에서 이제 도움을 베푸는 봉사의 참여자가 됐다.

“다른 사람을 도와본 사람들은 알죠. 봉사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기분이 더 좋다는 걸요.(웃음)”

박씨의 말처럼 녹색아버지봉사단은 즐겁고 신명나게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웃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복지관에 대상자를 추천하기도 하고, 당뇨가 있어 불편한 몸으로도 “다른 봉사 없나요?”라고 묻는 회원도 있다.

“봉사하는 사람 따로 있고, 받는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니겠지요. 최근의 사회복지는 지역사회의 조직이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직접 활동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이성근 복지사) 2007년 복지관에서 실시한 번동2단지 지역주민 욕구조사에 따르면 성인남성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이 1위가 경제활동, 2위가 봉사활동(44%)이었다.

복지관에서는 더 많은 회원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영양죽 배달 봉사를 시작으로 단지 내 환경미화, 한천로 정화활동, 초등학교의 학생보호 일을 담당하는 ‘스쿨 폴리스’ 활동 등. 그리고 올 여름엔 충남 당진으로 농촌 봉사활동 캠프를 떠난다.

처음 참여가 어려워 … 다양한 활동 기획

“남 돕는 행복 진짜 끝내줍니다”

녹색아버지봉사단은 영양죽 배달과 환경미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다.

이렇게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녹색아버지봉사단의 신규회원은 잘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소외돼온, 받는 것에 더 익숙해진 이들로서는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봉사란 특별히 착한 사람들이 남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혹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하는 것이라고. ‘나 하나도 거두지 못하는데 누굴 돕는가?’라는 생각 때문에 막상 자원봉사를 시작하지 못한다. 나 자신만 생각하는 개인주의와 바쁜 현대인의 삶에 ‘봉사’는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필수’ 활동이 돼가고 있다.

이제 막 결성된 녹색아버지봉사단 회원은 모두 5명. 더 많은 아버지들이 술 한잔, 내기장기 한판 대신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보람을 얻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봉사활동을 마친 뒤 보람을 안고 돌아가는 박씨와 복돌이의 뒷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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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8.08.05 647호 (p56~57)

김은지 자유기고가 eunji81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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