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9

2008.06.10

억새풀 같은 생명력 거리의 여인들을 추억하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입력2008-06-02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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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새풀 같은 생명력 거리의 여인들을 추억하다

    뮤지컬 ‘더 라이프’는 뉴욕 거리의 여인들을 통해 예술적 도전과 실험정신이 충만했던 1970~80년대 뉴욕을 추억한다.

    1997년 가을이었다. 당시 3년간 잘 다니던 회사에서 더 이상의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직서를 쓴 뒤 새 출발을 꿈꾸며 무작정 뉴욕을 찾았던 어느 날, 립스틱보다 강렬한 빨간색 구두를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 포스터를 보았다. 그렇게 사전지식 없이 관람한 뮤지컬 ‘더 라이프(The Life)’는 바로 극장에서 지척인 42번가의 포트 오소리티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몸을 파는 ‘거리의 여인’들을 다룬 작품이었다.

    9·11 테러 사건으로 유명해진 전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의 재임 기간(1994~2001) 중 가장 큰 업적으로 꼽는 것은 도심 42번가의 대대적인 재개발사업이었다. 그중에서도 상징적인 사건은 무려 75년 동안이나 폐쇄된 채 흉물로 방치돼오던 뉴암스테르담 극장이 디즈니사에 매각돼 3년간의 리노베이션 공사를 끝내고 1997년 11월13일 초대형 가족뮤지컬 ‘라이언 킹’을 개막한 일이었다. 같은 기간 지하철과 거리의 벽면을 뒤덮었던 낙서(그래피티)도 말끔히 지워졌고, 경찰 수는 3배로 늘었다. 또 헬스키친(Hell’s Kitchen)이라 불리던 버스터미널 부근 낡은 건물들이 헐린 자리에는 최고급 콘도미니엄이 들어섰으며, 스트립쇼 클럽과 포르노숍들이 폐업한 거리는 아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해졌다.

    요즘처럼 뮤지컬이 활성화돼 있지 않았던 1998년 ‘더 라이프’는 현지와의 시차 없이 우리나라에서 초연을 가졌고, 2000년 재공연까지 허준호 남경주 전수경 등 유명한 뮤지컬 1세대 배우들이 출연해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피부에 와닿는 느낌은 적잖이 다르다. 원작이 내포했던 역사적인 맥락도 흐릿해졌을 뿐 아니라, ‘거리의 여인’이라는 소재도 불법화된 성매매 온상지인 집창촌과 오버랩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에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객석에 앉았다.

    2008년 다시 찾아온 공연 또 다른 느낌

    이야기의 축은 사바나 출신의 두 남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플릿우드와 그의 여인 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성공을 위해 뉴욕에 왔지만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는 플릿우드는 마약중독자가 되고, 퀸 역시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다 전과자가 된다. 거리의 여인들 중에서 왕언니뻘인 소냐는 퀸의 둘도 없는 조력자로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 속에서도 위로를 보내는 존재다.



    한편 파렴치한 매춘업자 조조는 친구인 플릿우드에게 뉴욕에 갓 올라온 시골처녀 메리를 유혹하게 한 다음, 그녀를 스트립 댄서로 키워 큰돈을 벌게 한다. 매춘업계의 큰손인 멤피스 역시 거리를 떠나려는 퀸에게 노예계약을 맺게 하고 계속 매춘을 강요한다. 이 작품의 남자 캐릭터들은 대부분 탐욕스럽거나 소심한 기회주의자들이며,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당찬 모습이다. 순진한 줄 알았던 메리마저 종국에는 성인영화 배우가 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결말에서 남자들 사이에 불거진 갈등을 해소하는 것도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해소되는 갈등은 매춘이라는 또 다른 극단적인 상업행위를 통해서만 영위되는 삶과 대칭된다. 퀸이 멤피스를 살인하고 도피하는 모습을 지켜본 소냐가 매춘보다 감옥이 낫겠다며 죄를 뒤집어쓰고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런 면에서 여성의 감동적인 승리다.

    묵직한 주제, 배우들 노력으로 관객 만족

    묵직한 주제에도 관객들을 즐겁게 해준 것은 바로 배우들이었다. 조조 역의 유준상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을 돌면서 환호하는 관객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눈을 맞추었다. 공연에서 조역에 머무는 그를 보러 온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뮤지컬 배우 소냐는 퀸을, 김영주는 소냐를 맡았다. 노래 잘하는 두 여배우의 이중창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나 다소 미약한 앙상블 구성으로 춤과 합창의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벅찼다.

    번역은 그 자체만으로 보면 원작의 대사와 상황을 거의 그대로 옮긴 점이 돋보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직역 대사들과 투박한 가사들은 아쉽다. 1막의 일부 장면에서 무대를 비어 보이게 하는 조명 운용, 뻗어나가지 못하고 답답하게 극장 구석에서 머무는 음향 등도 아쉬움을 주었다.

    공연을 보기 전과 후의 브로드웨이 외관이 달라져 있을 정도로 재개발 속도가 빨랐던 시기에 관객을 모았던 ‘더 라이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소 위험했지만 예술적인 도전과 실험정신이 충만했던 1970~80년대 뉴욕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는 재개발로 깨끗이 쓸려나갔지만 억새풀 같은 생명력을 유지했던 뒷골목 인간 군상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시선이 깔려 있다. 비록 한국 공연에서 원작의 향내를 온전히 추억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대극장 뮤지컬에서 듣는 재즈의 선율은 신선했으며 ‘스윗 채러티’의 작곡가로 유명한 사이 콜먼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공연은 6월15일까지 양재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다.(문의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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