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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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즐기는 ‘낭만과 스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5-08-31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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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바퀴로  즐기는 ‘낭만과 스릴’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소유자 그룹(H.O.G)의 랠리 모습.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그들의 대답은 똑같다. “타보라”는 것.

    꽉 막힌 도로 위에 멍청하게 서 있는 자동차에서 탈출하고 싶거나, 주차할 곳을 찾아 빙빙 돌아본 적이 있습니까. 혹은 차 밖으로 몸을 내밀어 바람의 속도를 느끼고 싶은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 라면 당신은 이미 모터사이클의 강렬한 유혹에 반쯤 걸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보다 더 ‘쿨’하게 탈것을 원한다거나 비행기와 속도를 겨뤄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모터사이클의 열풍에 합류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네 바퀴 자동차에서 2% 부족한 것을 느끼고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SBS TV 인기드라마 ‘루루공주’에서 재벌 딸인 김정은이 외제차 대신 앤티크한 고글에 혼다의 스쿠터를 타고 나오면서 여성 모터사이클 구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모터사이클 판매업체에 여성들이 가장 큰 ‘장애’가 돼왔기 때문이다.

    국산 모터사이클-‘오토바이’는 영어 ‘auto bicycle’의 일본식 표현이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효성과 대림은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50% 이상 늘었다. 특히 지난해 적자였던 효성은 올해 흑자 경영으로 돌아서는 데에 스쿠터가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분석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외국 모터사이클 브랜드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형·고가 모터사이클 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블루 오션’은 대형·고급 모터사이클 머신 시장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업무·배달용 저가 모터사이클 시장은 여전히 축소돼 있지만, 주5일 시대를 맞아 ‘즐기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루루공주’ 영향 … 여성과 젊은층에 폭발적 인기

    럭셔리 모터사이클의 대명사이며 미국적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인 할리데이비슨은 2004년에 비해 20% 이상 판매가 늘어 올해 상반기에만 200대 넘게 판매됐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 강태우 과장은 “7월부터 확실히 문의와 판매가 늘었다”고 말한다. 이계웅 대표이사는 “60년엔 우리나라에서도 모터사이클은 꽤 멋진 사람들이 타는 것이란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모터사이클은 배달용으로 생산되었고, 국내 업체들은 고부가가치 시장을 포기했다. 모터사이클에 대한 인식이 운반용에서 레저용으로 바뀐 건 극히 최근”이라고 말했다.

    ‘루루공주’에 PPL(간접광고)을 한 세계 최대의 모터사이클 제조 회사인 혼다의 스쿠터 자이로X와 ‘패션바이크’란 이름을 단 100cc 배기량의 X시리즈가 각각 여성과 젊은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다.

    바퀴가 3개여서 뒤집힐 위험이 없는 자이로X는 혼다가 82년 여성과 노약자용으로 개발했다. 혼다 모터사이클 사업부 신범준 대리는 “자이로X는 우리나라에 ‘루루공주’를 통해 처음 런칭됐는데, 다른 스쿠터에 비해 3배 이상 비싼 315만원인데도 스타 프리미엄이 있다”고 말한다. 300만원대 ‘패션바이크’ X시리즈는 2004년 판매 첫해에 400대, 올해 1000대로 판매(예상)가 늘었다. 요즘 압구정과 청담동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모터사이클 다음 동호회 회원 수가 6000명을 넘어섰고, 혼다의 스폰서로 ‘X라이더스’ 행사를 여는 등 가장 대중적이고 활발한 모터사이클 동호회 중 하나다.

    두 바퀴로  즐기는 ‘낭만과 스릴’

    ① 서울 한남동에 있는 트라이엄프 매장. ② 화창상사의 네 바퀴 모터사이클 ATV. ③ 서울 한남동에 있는 할리데이비슨코리아. ④ 서울 혜화동에 있는 ‘베스파가라지’.

    1999년 시험적으로 모터사이클 사업을 시작한 BMW코리아는 올해 런칭한 최초의 스포츠 모델 K1200S가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를 얻고 있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1901년 설립,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업체인 영국산 트라이엄프도 2003년 서울 한남동에 상륙했다. ‘올드바이크’의 매력을 가진 본네빌과 ‘미션임파서블2’에서 톰 크루즈가 탄 스피드 트리플이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다. 트라이엄프 모터사이클 코리아의 서민호 씨는 “아직은 상류층에서 소장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붐이 조성되면서 전문직 종사자들이 출퇴근용이나 레저용 등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최근 서울 한남동 할리데이비슨 사옥 옆에 4륜 모터사이클(ATV)과 스쿠터를 수입 판매하는 화창상사가 옮겨와 동호회 모임의 중심이 되고 있다. 화창상사는 주로 해변에서 이용하는 ATV뿐 아니라 설원에서 타는 스노모빌도 수입할 예정이어서 모터사이클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할리데이비슨과 혼다, BMW 등 큰 덩치의 모터사이클 브랜드 사이에서 결코 기죽지 않는 브랜드가 베스파(VESPA)다. 베스파는 ‘겨우’ 50cc(또는 125cc) 배기량의 스쿠터지만 현재 가장 독특한 모터사이클 마니아 문화를 만들고 있다. 원래 1946년 이탈리아 피아지오사가 개발한 베스파는 60년대 영국 ‘모즈족’에 의해 애용되고, 영화 ‘로마의 휴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알피’의 주드 로가 바로 모즈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알피’처럼 도색한 베스파들이 생겨났다.

    고가의 할리데이비슨 오너는 1000명 정도

    베스파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걸작으로 꼽히고, 패셔너블한 젊은이들의 탈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미국과 유럽에서 모델과 배우들이 베스파를 타는 모습이 자주 카메라에 담기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정재·코요테 등 연예인들이 베스파를 탄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베스파는 앤티크에 가까운 중고 빈티지 베스파로 150만원에서 550만원에 거래된다.

    모터사이클의 역사가 시작된 지난 100년 동안 각 브랜드들은 매우 다른 개성을 지켜왔기 때문에 기술적 차이가 크지 않은 현대에 이르러 모터사이클 머신들의 차이란 결국 ‘이미지’와 ‘브랜드’를 의미하게 됐다. 최근의 새로운 모터사이클 붐은 정확히 브랜드에 대한 마니아적 취향과 일치한다.



    두 바퀴로  즐기는 ‘낭만과 스릴’

    ① 출퇴근용과 여성용으로 인기 높은 혼다의 스쿠터. ② BMW 오너의 랠리 모습. ③ ‘루루공주’에서 김정은이 타는 혼다 자이로X. ④ 광고와 영화에 등장한 클래식 베스파들.

    브랜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사람들은 할리데이비슨 오너(H.O.G)들이다. 할리데이비슨이 워낙 비싸고(울트라 클래식은 머신 가격만 3500만원에 튜닝을 더하면 5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으며 대륙횡단용으로 개발되어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기업 오너들과 IT(정보기술) 업계 CEO 오너들이 많이 애용한다. 최근의 변화는 적금을 들어 할리에 ‘올인’하는 직장인들도 하나 둘 생기고 있다는 것. H.O.G인 서울대 김대원 교수는 “연주 후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혼자 조용히 푸는 데 모터사이클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얼굴이 알려진 S, H 등의 재벌 2, 3세들이나 유명인사들이 모터사이클 마니아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할리데이비슨은 한때 ‘반체제’를 상징했지만, H.O.G인 장원기(58) 씨는 “우리나라에 1000명의 H.O.G가 있다. 모터사이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친환경’ ‘질서’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BMW 머신은 첨단 테크놀러지로 속도감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BMW코리아 모터사이클 강규진 씨는 “좌석과 핸들 히팅(heating)·ABS·충격흡수 장치에, 100km 가속에 2.8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퍼스트클래스에서 비행기와 속도를 경쟁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 할리와 BMW 오너는 “할리는 잘 받들고 보살펴야 할 20대 애인 같고, BMW는 착한 40대 아내 같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한때 BMW 오너 모임은 ‘폐쇄적’이란 말을 듣기도 했으나 최근엔 활발하게 공개 행사를 열고 있다.

    베스파는 판매업체 후원 없이 순수한 마니아들의 열정으로 운행되고 있다. 베스파 마니아였다가 올해 8월 정비소와 매장을 겸해 ‘베스파가라지’를 낸 홍승택 씨와 박광진 씨는 “모터사이클과는 달리 한번 베스파를 타기 시작하면 다른 모터사이클은 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보험·운전교육·도로 사정 등 주행 여건은 ‘열악’

    우리나라에 새롭게 등장한 라이더들의 모터사이클은 전 세계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편에 속한다. 한 딜러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고가품을 살 땐 최고 옵션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달리는 길은 전혀 ‘이지’하지 않은 편이다. 현재 모터사이클은 자동차 전용도로 및 고가도로 등의 운행이 금지돼 있고, 시속 200km가 넘는 머신을 운전하지만 운전 교육을 시키는 기관도 없고 보험 강제 가입도 느슨해 ‘위험하다’는 우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터사이클 오너들이 크게 늘고 모터사이클이 교통난과 유류 소비, 주차난과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라는 주장이 부각되면서 곧 모터사이클에 대한 ‘법적 지위’가 부여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60~70년대 반항과 자유로운 예술정신으로 미학적 지위를 획득한 모터사이클은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유목의 삶, 복고와 합법적 탈주의 상징으로 새로운 젊은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 이들은 ‘배달맨’들의 생계형 모터사이클보다 덜 진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모터사이클 마니아는 말한다.

    “오토바이에 혼이 있다고 하죠. 이거 팔아야지, 하고 말하면 오토바이가 틀림없이 사고를 내요.”

    이들은 진심이다. 새로운 모터사이클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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