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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도 두손든 ‘아요디아의 비극’

인도 힌두-이슬람 뿌리 깊은 갈등 현장 … 7월 이슬람교 테러 공격 다시 유혈 참극

神도 두손든 ‘아요디아의 비극’

神도 두손든 ‘아요디아의 비극’

바브리 마스지드 파괴 관련자들에 대한 허수아비 화형식을 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

종교 분쟁, 특히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은 인도 현대사의 획을 긋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돼왔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한 일부터 각 지역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대규모 폭력사태, 카슈미르 영유권 문제, 이슬람교도를 타자화해 힌두교도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결집하려는 힌두 원리주의 정당의 부흥에 이르기까지 두 종교 간 갈등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은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힌두교도가 다수이긴 하지만 국교가 없는 ‘세속국가(secular state)’를 표방하는 인도 정부는 이슬람교도에게 관습법을 적용한 별도의 민법 체계를 갖춰줄 정도로 이슬람교도의 권익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중세에 인도 대륙에 들어와 수백년간 인도를 다스려온 이슬람교 세력을 ‘침략자’로 치부해버리는 일반 힌두교도들의 관념을 불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힌두 원리주의 정치세력은 이런 대중심리를 교묘하게 부추기면서 주정부는 물론 중앙정부에서 정권을 창출하는 데 성공해왔다.

1992년 12시간 동안 ‘광란의 폭동’

15년 넘게 계속돼온 인도의 ‘람 탄생지 재건운동’은 이런 힌두-이슬람 갈등의 역사적·정치적 의미를 그대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람(Ram)은 힌두교의 세 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성인으로, 아요디아는 그가 태어났다는 성지다. 아요디아에는 람의 탄생을 기리는 거대한 람 사원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16세기 무굴제국을 세운 바부르가 인도를 정복하면서 신상 숭배를 죄악시하는 이슬람 신앙에 따라 람 사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1529년에 건축된 이 사원은 당시 바부르 황제에게 헌정됐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 바브리 마스지드라 불렸으며, 1992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1992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0년대 들어 인도인민당이 유행시킨 힌두 원리주의가 힌두교도 사이에 파고들면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때 힌두 원리주의가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람 탄생지 재건운동이다. 인도인민당의 자매단체인 세계힌두교도연맹(VHP)과 민족봉사단은 아요디아는 물론 전국 각지를 돌며 람 사원을 재건하자는 대중집회를 주도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성지 확보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 바브리 마스지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원리주의 지도자들은 집회 때마다 자극적인 연설과 함께 ‘바브리 마스지드를 무너뜨리자’는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과열로 이끌었다. 마침내 1992년 12월6일 힌두 행동대원들이 아요디아를 봉쇄한 가운데, 격앙된 군중이 몰려들어 약 5시간 만에 바브리 마스지드를 철저히 파괴했고 인근에 살던 이슬람교도들의 집과 상점은 모조리 약탈당하고 불태워졌다. 12시간에 걸친 광란의 폭동이었다.

神도 두손든 ‘아요디아의 비극’

폭도로 변한 힌두 원리주의자들. 인도 현대사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대규모 폭력사태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후 두 종교 간 갈등 악화와 폭력사태를 우려한 인도 중앙정부에 의해 바브리 마스지드 자리는 ‘분쟁지역’으로 선포되어 민간의 출입을 막고 있다. 아니, 1949년 어느 날 밤 람의 신상이 나타나는 ‘기적’(이 신상은 현재 바브리 마스지드가 있던 자리 인근에 세워진 임시 람 사원에 보관돼 있다)이 일어난 이래 사실상 이슬람교도들은 바브리 마스지드에 출입할 수 없게 됐다. 반면 힌두교도들은 정부의 허가로 임시 람 사원을 건립한 뒤 종교활동을 계속 해왔다. 이 역시 당시 정부가 힌두교도의 표를 의식해 힌두 편향적인 종교행정을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집단 간 폭력과 증오 확대 재생산

람 탄생지 재건운동의 정점인 바브리 마스지드 파괴를 계기로 인도인민당은 더욱 대중적 인기를 얻어 1998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지난해까지 중앙정부의 정권을 장악했다. 인도인들의 신앙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 선거전략상 주효한 셈이다. 그러나 2004년 다시 정권을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국민회의당에 빼앗기며 실각함으로써 힌두 원리주의의 열풍도 가라앉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그러나 아요디아 문제는 폭력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도 끊임없이 이슈가 되고 있으며, 이 사건과 연루된 인도인민당 주요 인사들은 재판에 계류돼 있다. ‘힌두 사원이냐, 이슬람 사원이냐’의 문제는 고고학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힐 예정이었으나,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이렇다 할 해결책은 없다. 아요디아의 구원(舊怨)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쌓인 것이 아니라 그릇된 종교적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진실을 말한다 해도 각 종교가 갖고 있는 신념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神도 두손든 ‘아요디아의 비극’
이와 같이 두 종교 간 갈등이 얽혀 있는 아요디아가 7월5일 발생한 임시 람 사원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테러 공격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오전 8시30분경 바브리 마스지드 근처에 세워진 임시 람 사원에 일련의 젊은이들이 침입했던 것. 그들은 아요디아 시내에서 참배객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지프를 대절했다. 아요디아의 람 사원과 바브리 마스지드 자리는 최고 수준의 경비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수백명의 경비원과 인도 의회 경비대가 주둔해 있으며, 경비초소로 쓰이는 탑만 13개다. 출입이 제한되어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다. 이런 철통 경비도 종교적 신념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던지, 이들은 람 사원을 둘러치고 있는 울타리를 폭탄으로 파괴한 뒤 진입했다. 이때 폭발로 행인 한 명이 희생됐다. 일단 사원 경내에 진입한 이들은 목표물인 람 사원에 로켓포를 쏘고 경비원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사원의 성소(聖所)로부터 불과 50m 떨어진 전방까지 진출했으나 1시간30분이 넘는 총격전 끝에 4명은 사살됐고 1명은 자폭했다.

인도 경찰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카슈미르의 이슬람 원리주의 투쟁 단체인 라시카레 토이바의 소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공격에 나선 젊은이들은 카슈미르와 델리에서 테러리스트로 훈련을 받았으며 5명 중 3명은 공격조, 2명은 사원으로 곧장 돌진할 ‘인간폭탄’이었다. 이들 중 2명은 파키스탄인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이번 테러가 1992년 바브리 마스지드 파괴에 따른 이슬람 원리주의 측의 보복성 공격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한 보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힌두 사원 공격으로 다시 한번 힌두교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이슬람교도에 대한 집단폭력을 유도하고, 이슬람 사회 내 위기의식을 조장하여 두 종교 집단 간의 갈등과 사회불안을 증폭시키려 했다는 테러 집단의 의도는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힌두교 원리주의 측은 또다시 항의 집회를 조직하고 이 사건을 정치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집단 간 폭력과 증오의 확대 재생산이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현장을 아요디아는 보여주고 있다.



주간동아 2005.08.23 499호 (p84~85)

  •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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