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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축구 천재 박주영

박주영은 ‘스포츠 카’ 닮았다

질풍같은 드리블 급제동과 순간방향 전환 … 물흐르듯 툭툭 ‘벼락 슛’ 이미 빅리거 플레이

박주영은 ‘스포츠 카’ 닮았다

축구는 ‘공간 만들기 게임’이다.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팀은 이기고, 그렇지 못한 팀은 지게 돼 있다.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않는 팀은 지지 않는다. 오렌지군단 네덜란드 대표팀은 이른바 ‘토털 축구’를 지향한다. 도무지 빈틈이 없다. 순식간에 공격수가 7명이 되었다가 금세 수비수가 8~9명이 된다. 허리와 수비가 그물코처럼 촘촘해 뚫고 들어가기가 바늘구멍이다. 도대체 공을 잡아도 공 줄 곳이 없다. 허리를 장악하고 엄청난 힘으로 압박해온다. 숨이 턱턱 막힌다.

발 앞 부리에 무게 중심 ‘전진형’

‘스피드’와 ‘압박’은 현대 축구의 화두다. 압박을 잘하는 팀은 그 게임을 지배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압박을 가해도 스피드가 빠른 팀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스피드가 없는 팀은 상대의 압박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뒤로 공을 돌리거나 옆 동료에게 ‘수건돌리기 패스’를 한다. 물론 브라질 선수들처럼 개인기가 뛰어나다면 일대일 돌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과 같이 그렇지 못한 팀은 오로지 스피드로 뚫는 수밖에 없다.

이회택 대한축구협회기술위원장은 6월3일 박주영이 우즈베키스탄과의 A매치 데뷔 경기에서 데뷔 골을 넣자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다.

“박지성과 박주영이 뛰어난 것은 앞으로 공을 리드해간다는 점이다. 누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옛날 우리 대표팀에는 게처럼 옆으로만 공을 몰거나 패스하는 선수가 많았다. 심지어는 우리 골대를 향해 뒤로 움직이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성이와 주영이는 앞으로 움직인다. 지성이는 유럽에서 뛰면서 완전히 한 단계 올라섰고, 주영이는 하반기가 되면 선배들을 제치고 대표팀의 원 톱으로 성장할 것이다. 누구나 첫 번째 A매치 경기에선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주영이는 데뷔 경기에서 첫 번째 골을 넣어 팀에 보탬이 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 A매치 경기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공을 찰 수 있게 됐다.”



그렇다. 박주영은 전진형이다. 그의 무게 중심은 늘 발 앞부리에 있다. 게다가 무게중심이 낮다. 몸이 부드러워 잘 넘어지지도 않는다. 어깨 팔 무릎 가슴 등 온몸을 이용해 속임 동작을 하며 질풍처럼 드리블해간다. 그것도 골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대각선 방향으로. 그러다 수비수들의 어지러운 발들 사이로 틈이 보이면 ‘벼락 슛’을 날린다. 수비수들은 박주영 같은 공격수가 가장 무섭다. 가속도가 붙은 드리블 상황에서 한번 제쳐지면 곧바로 골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주영은 드리블까지 현란하다. 최근 KBS가 명지대스포츠센터에 의뢰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박주영은 1.4초 동안의 드리블에서 다섯 번이나 발로 볼을 터치하며 상대 수비수를 현혹할 정도로 기술이 좋다. 이종훈 분석관은 “몸싸움 때 중심이 낮고, 순간적으로 파워를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최근 은퇴한 K리그 최고의 용병 골키퍼 신의손(45·본명 에브게니 사리체프) 전 FC 서울 골키퍼 플레잉 코치의 말도 비슷하다.

“박주영은 한마디로 ‘라데 스타일’이다. 라데는 세르비아 출신 용병으로 94년 K리그 득점왕과 MVP를 차지한 역대 최고의 용병이다. 그는 스피드를 살린 간결한 드리블로 골문 앞을 향해 대시하기 때문에 수비수들뿐만 아니라 골키퍼도 막기 힘든 타입이다. 박주영도 똑같은 스타일이다. 박주영이 드리블하면서 골문으로 대시하는 것을 보면 꼭 라데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 물론 난 다행히 박주영과 같이 경기할 기회는 없었지만 어느 골키퍼든 그렇게 느낄 것이다. 박주영은 드리블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고 힘의 낭비가 없다. 스피드를 실어서 전후좌우 사방으로 꺾으면서 들어오기 때문에 수비수들은 그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감 잡기가 힘들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벼락 슛을 때린다. 더구나 슛 마지막 순간에 복싱 선수의 끊어 치는 숏펀치와 같이 힘을 싣기 때문에 볼이 마지막까지 꿈틀꿈틀 살아 들어온다. ‘한국의 마라도나’로 불리는 최성국의 드리블은 겉으론 화려하지만 ‘골 넣는 것’과는 별로 상관없는 경우가 많아 실속이 없는 것과 비교된다.”

골 넣는데 필요한 최소한 움직임

호나우두나 잉글랜드의 마이클 오언은 무한질주와 급제동 등 순간정지 동작이 환상적이다. 꼭 스포츠카 페라리 같다. 수비수들은 알면서도 속고, 알면서도 자꾸 당한다. 발목, 무릎, 허리로 이어지는 관절이 마치 기름 친 자동차 유니버설 조인트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레알 마드리도 지단의 드리블은 현란하다 못해 황홀하다. 열어둔 듯하면서 감추고, 감추는 듯하면서 열어 보인다. 호나우두의 폭발적 드리블도 숨이 넘어간다. 호나우두는 골을 넣을 수 있는 가장 짧은 길로 질주한다. 좌우 몸의 쏠림과 디딤 발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볼을 감추며 드리블한다. 그뿐인가. 호나우두는 총알처럼 빠르며 파워도 넘친다. 오죽하면 잉글랜드의 명감독 보비 롭슨이 “호나우두는 볼을 가지고 달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빠르다”고 했을까.

박주영은 이들에 비해 결코 화려하지 않다. 언뜻 보면 평범하다. 체격도 본프레레 감독이 말한 것처럼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 그럼에도 자세히 보면 급제동과 순간 방향 전환이 그들 못지않다.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 동작도 꼭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만 취한다. 오직 골 넣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그만큼 박주영은 공을 쉽게 찬다. 물 흐르듯이 툭툭, 편하게 찬다. 최성국처럼 볼을 질질 끌지 않는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 앞에 툭 볼을 떨어뜨려 준다. 경기 흐름을 꿰뚫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결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는 볼을 죽이지 않는다. 흐르는 볼을 그대로 놔둔 채 방향만 살짝살짝 바꿔준다. 안정환도 드리블이 화려하지만, 그의 드리블엔 속도감이 붙어 있지 않다. 동료의 패스를 받아 좌우 쪽으로 드리블해가는 경우가 많다. 찰 듯 안 찰 듯, 슛을 할 듯 안 할 듯하다가 한두 수비수를 제친 뒤 갑자기 짧게 끊어서 슛을 때린다. 골키퍼로선 안정환의 예측 불허 슛도 막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습성을 익히 알고 있는 골키퍼라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골키퍼 쪽으로 대시해오는 박주영보다는 횡 쪽으로 가다가 때리는 슛이 훨씬 막기 수월하다는 얘기다. 그뿐인가. 박주영은 영리하기까지 하다.

조광래 FC 서울 감독은 “현대 축구에서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지능적인 움직임이다. 한국 축구 선수 가운데서 이 부문에 관한 한 박지성과 박주영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이들이 호흡을 맞출 경우 ‘환상의 콤비’가 될 것이다. 박지성은 그라운드의 어디로 움직여야 공간이 창조되고, 어떤 패스를 해야 동료가 받기 쉬우며 찬스로 연결되는지를 아는 선수이고, 박주영은 어디로 움직이며 패스를 받아야 골로 연결되는지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아는 선수다”고 말한다.

박주영에 대해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본프레레 감독의 생각도 최근 180도로 달라졌다. 본프레레 감독은 “박주영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경기를 하면서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경기를 하면서도 오래 생각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자연스러운 플레이가 흘러나온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주영은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골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골잡이다. 골을 주워 먹지 않는다. 그래서 팬들은 열광한다. 넣어야 할 공은 반드시 넣는다. 6월3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막판 동점골은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쉽게 넣을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만약 다른 선수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골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완벽 찬스에서 하늘 높이 똥볼을 날리는 골잡이들을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봐왔던가. 동료의 패스를 받아 10개 중 하나나 넣을까 말까 한 ‘짝퉁 골잡이’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을 쳤던가.

한국 축구는 박주영 이전과 박주영 이후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박주영 이전의 축구가 ‘군대스리가 축구’였다면 박주영 이후의 축구는 ‘분데스리가 축구’가 될 것이다. ‘깡과 힘의 축구’가 비로소 ‘생각하는 축구’로 변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5.06.28 491호 (p74~76)

  •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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