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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북극에 젊음을 바치다

조류학자 디보키 30년간 매년 3개월 거주 … “지구온난화로 여름 점점 길어져 걱정”

  • < 정리=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북극에 젊음을 바치다

북극에 젊음을 바치다
6월4일 새벽 2시, 조지 디보키가 머물고 있는 쿠퍼섬의 기온은 영하 20℃ 정도였다. 냉장고의 냉동칸과 비슷한 온도다.

바깥 하늘은 희부옇게 물들어 있다. 북극권의 백야다. 디보키는 오직 눈만 내놓은 채 온몸을 감싼 차림새로 텐트 밖에 나섰다. 그는 우선 쌍안경으로 가까운 곳에 북극곰이 있나 살펴본다. 북극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 나무를 보려면 남쪽으로 300km 이상 내려가야 하는 이곳은 태양이 지지 않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위를 빙글빙글 돌 뿐.

“일단….” 그 다음 말은 바람에 묻혀버린다.

“뭐라고요?”

“일단 북극곰을 막기 위한 방어벽을 쌓아야 할 것 같아요. 더 피곤해지기 전에!”



극지방에서는 피로감이 유난히 빨리 찾아온다.

흰 눈 때문에 지평선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만약 800파운드의 북극곰이 멀리 나타난다면 북극곰의 몸뚱아리는 마치 거대한 비행선이 떠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쿠퍼섬은 알래스카 최북단에 있는 여섯 개 섬 중 하나다. 눈과 모래 그리고 얼음만이 섬을 뒤덮고 있다. 인공 구조물이라고는 미 해군이 한국전쟁을 끝낸 후 이 섬에 폐기한 탄약 상자들뿐이다.

조지 디보키는 햇병아리 조류학자 시절인 1972년 이 섬에 처음 왔다.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지원으로 북극의 조류를 관찰하던 참이었다. 쿠퍼섬에서 그는 희귀조인 검은 바다비둘기가 군수 폐기물에 잔뜩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년 여름이면 북극에 날아와 절벽에 둥지를 트는 이 희귀조가 군수 폐기물을 새로운 서식지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30년간 디보키는 여름마다 검은 바다비둘기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가 자신의 생애를 이 섬에 바쳤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바다비둘기는 눈이 녹는 6월에 쿠퍼섬에 도착한다. 낮이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밤이 되면 군수 폐기물 위의 둥지로 돌아온다. 디보키는 이들을 관찰하기 위해 매일 밤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일한다. 발목에 표지를 달아준 한 바다비둘기는 20년이 넘도록 같은 둥지로 되돌아왔다. 현재 쿠퍼섬에는 600마리가 넘는 바다비둘기가 서식하고 있다.

물론 쿠퍼섬에 서식하는 생물이 바다비둘기뿐만은 아니다. 어느 날 밤 텐트에서 디보키는 바스락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텐트 바깥으로 기어나온 그의 코 앞으로 커다란 암곰과 새끼곰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잠든 동안 이 두 마리 북극곰이 텐트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 후 디보키는 텐트 주위에 나무 말뚝으로 울타리를 둘렀다. 이 울타리에는 닿으면 소리를 내는 자동차 도난 방지기 같은 기구도 설치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울타리는 북극곰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해요. 다만 북극곰에게 먹힐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죠. 별 소용 없는 위안이랄까요.”

디보키는 매년 6월이면 식량과 텐트, 난로, 냄비, 권총, 라디오, 침낭 등을 싣고 경비행기 편으로 쿠퍼섬에 날아온다. 1972년 처음 북극에 왔을 때, 디보키는 다른 세 명의 극지학자와 함께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왔다. 세 명의 학자는 훗날 모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경비행기로 북극에 오는 길은 그만큼 위험하다. 너무 두꺼운 구름 때문에 착륙 지점을 찾지 못해 상공에서 헤맨 적도 있다. 북극해의 수온은 0℃ 밑이다.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한다면 요행 살아남는다 해도 바로 동사해 버릴 것이다.

쿠퍼섬에 도착해 텐트를 칠 때도 조심해야 할 일이 많다. 어느 해는 땅이 아니라 빙산의 한 부분에 텐트를 친 적도 있었다. 닷새가 지나서야 디보키는 자신이 머무른 곳이 섬이 아니라 조금씩 움직이는 빙하 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디보키는 쿠퍼섬에 집을 짓지 않는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집을 짓지 않고 텐트에서 사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집 같은 구조물은 바다비둘기에게 경계심을 심어줄 뿐이에요. 새와 친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 역시 새처럼 비바람을 맞고 있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별다른 재정 지원이 없는 디보키는 작은 돔 텐트에 웅크린 채 석 달간 잠자고 프로판 버너에 불을 지펴 손을 데운다. 그리고 쌍안경으로 바다비둘기를 관찰한다. 물이 떨어지면 빗물을 받아 먹는다. 라디오가 고장나 반짝이는 거울로 구조신호를 보낸 적도 있다.

“이곳에서 살다 보면 ‘불편하다’는 말 자체를 잊어버리게 돼요.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얼어버리기 때문에 바깥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항상 두꺼운 장갑을 낀 채 일해야 하고, 인스턴트 수프에 시리얼을 부어 먹습니다. 그런데 입술이 다 얼어 있어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어요.”

종종 극지 연구학자들의 학회에 참가할 때마다 디보키는 화가 난다. 많은 극지학자들이 현장에 와보지도 않은 채 컴퓨터 데이터에만 의존해 북극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해에 대해 연구한다는 학자가 북극의 바닷물에 손 한번 집어넣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요즈음 디보키는 당장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극곰보다도 북극 얼음이 녹고 있다는 사실에 더 신경 쓰고 있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로 지구는 온실 효과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앓고 있다. 그 결과가 지구의 머리 꼭대기인 북극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는 것이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는 홍수의 원인이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기후 변화가 맨 처음 일어나는 곳이 바로 북극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현재 과학자들은 북극 기후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탐사의 발길이 닿았지만 얼음에 뒤덮인 북극은 여전히 미지의 장소다.

디보키는 바다비둘기의 생태를 연구하다 북극 기후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바다비둘기는 눈이 녹은 후 알을 낳는다. 그런데 1975년부터 1995년까지 20년 동안 북극의 눈이 녹는 시간은 평균 5일 빨라졌다. 매년 북극의 여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후가 변하면 바다비둘기의 생태도 그에 따라 변화한다. 디보키의 관측에 따르면, 바다비둘기가 쿠퍼섬에 오는 날짜는 10년 동안 평균 5일 정도씩 빨라지고 있다. 2001년에는 6월6일에 바다비둘기 떼가 섬에 도착했다. 지난해보다 사흘 빨리 온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 같은 기후 변화가 바다비둘기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해는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바다비둘기들이 날아왔다. 흰 눈 위에 내려앉은 검은 깃털의 바다비둘기들은 극지에 사는 부엉이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또 어떤 해는 너무 늦게 와 짝짓기할 시간마저 충분치 않았다.

바다비둘기는 해마다 같은 짝과 짝짓기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디보키가 ‘흑설이’라고 이름지은 바다비둘기의 짝은 ‘흰둥이’였다. 그런데 어느 해는 흑설이가 너무 늦게 쿠퍼섬에 도착했다. 하루만 더 늦게 왔더라도 흰둥이는 다른 짝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이런 해는 자신의 짝을 되찾으려는 수컷들 사이에 필사적인 싸움이 벌어진다. “심할 때는 바다비둘기의 둥지가 피에 젖을 정도”라고 디보키는 설명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10년 전부터 쿠퍼섬을 찾아오는 바다비둘기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수컷의 수가 심각하게 줄었다. 심지어 매년 같은 짝과 짝짓기하는 바다비둘기 수컷이 두 마리의 암컷과 짝짓기하는 광경도 발견됐다. 예전 같으면 어미가 보살폈을 어린 새끼들이 스스로 둥지 밖에 나와 먹이를 찾고 있었다. 채 깃털도 나지 않은 새끼들은 디보키가 발견했을 때 이미 빈사 상태였다. “내가 한 마리를 들어올리자 기진맥진해 있던 새끼는 손안에서 바로 죽어버렸습니다.”

1999년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퍼졌다. 디보키는 물론 조류학자이지 기후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30여년간 조사해 온 북극의 기온에 대한 데이터는 북극 기후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는 북극의 눈이 언제 녹고, 해안선이 언제 드러나는지, 첫눈은 언제 오는지 등을 꾸준히 조사해 온 것이다.

처음 북극을 찾을 당시 26세였던 디보키는 이제 55세가 되었다. 혼자 극지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디보키는 매년 여름 북극에 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류 가이드로 일한다. 자금이 부족했던 80년대에는 비스킷과 물만으로 북극 생활 석 달을 버티기도 했다.

“이제는 더더욱 이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북극에 갈 수 있었나?’를 묻습니다. 그러나 만약 한 해를 거른다면 그동안 지속해 온 내 기록의 연속성은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사실 나 자신이 재정적 문제 같은 데는 무관심했기 때문에 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북극의 얼음과 눈들 그리고 여름의 희미한 햇살, 그것이 나에게 매년 텐트를 지고 이곳으로 찾아오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지요.”



주간동아 320호 (p70~72)

< 정리=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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