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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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불통 정부, 교육독재

‘불통의 아이콘’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편찬기준도 공개 않는 ‘깜깜이’ 국정화…청와대로 향하는 비판

  • 김기중 서울신문 기자 gjkim@seoul.co.kr

    입력2016-06-10 17: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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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이 ‘전화를!’이라고 말하면 교육부 분들은 ‘받자!’라고 외쳐주세요.”

    지난해 12월 7일 세종시 한 음식점에서 열린 교육부 기자단 송년회 모임. 한 기자가 이색 건배 구호를 제안했다. 그는 “교육부가 기자들과 소통을 너무 안 한다”면서 “소통의 기본은 기자들 전화를 받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교육부 내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 지원 조직인 역사교육지원팀을 향해 “국정화 추진도 좋지만 어지간하면 우리 전화를 좀 받으라”고도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이후 기자들의 전화가 몰리자 역사교육지원팀이 종종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석한 기자들은 “적절한 건배 구호”라며 박장대소했고, 황우여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머쓱해했다.



    ‘최몽룡 사태’ 이후 시작된 비공개 퍼레이드

    교육부는 2015년 11월 3일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했다. 학생들은 이에 따라 내년부터 중고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로 배운다. 1974년 박정희 정부 이후 42년 만의 일이다. 황 당시 부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헌법 가치에 합당한 나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부여하는 데 현재 교과서로는 미흡하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 발표 직후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대표 집필을 맡기로 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악재를 만나 중도 하차했기 때문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선사시대 부분을 담당하기로 했던 최 명예교수는 지난해 11월 2일 대표 집필자로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1년 안에 역사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기자회견 뒤 자택으로 찾아온 여기자들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6일 보도되면서 결국 사퇴했다.



    시작부터 뜻밖의 암초를 만난 꼴이었지만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국사편찬위)는 이를 역이용했다. 최 명예교수의 갑작스러운 사퇴를 구실로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과정을 모두 비공개화한 것이다.

    애초 국사편찬위는 집필진이 구성되면 명단을 바로 공개하기로 했다. 교과서를 제작하면 집필진 이름이 어차피 공개돼 이를 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정배 국사편찬위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행정 예고하며 “집필에 들어가면 그땐 (집필진이) 아마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당시 부총리도 “집필에서 발행까지 교과서 제작 전 과정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10여 일 뒤인 10월 23일 “집필진의 의견을 들어 심사숙고해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에 참석해 “개인적으론 공개하고 싶지만, 집필진이 ‘안 되겠다’고 하면 나도 따라야 한다”고 한 발 더 물러섰다. 황 당시 부총리도 27일 전체 집필진 명단 공개 방침을 거두고 “대표 집필진만 공개하겠다”고 했다. 현재는 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제작 일정이 지나치게 짧은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검정 한국사교과서 집필진이던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집필기간만 적어도 1년 6개월에서 2년 이상 걸린다. 이 기간을 터무니없이 단축하면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짧은 제작기간을 의식한 듯 국사편찬위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이 현행 검정교과서의 2배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집필진이 많은 것과 집필진의 자질은 별개 문제다. 특히 역사를 가르친 지 9개월밖에 안 된 고교 교사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으로 선정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해당 교사는 교사 경력 10년 가운데 9년 동안 상업을 가르쳤고 2015년 3월부터 9개월 동안 한국사와 상업을 함께 가르친 인물이다. 그가 동료 교사들에게 “(2016년) 1월부터 13개월간 다른 집필진과 함께 국정교과서를 쓰게 됐다”면서 “국사편찬위가 얼마나 비밀을 강조하는지 질릴 정도”라고 하는 바람에 그의 집필진 참여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국사편찬위는 김 교사가 교육대학원에서 역사교육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고대사로 박사과정을 수료해 전문성이 충분하다고 밝혔지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국사편찬위는 지난해 12월 11일 “집필진 공모로 선정된 해당 교사가 국정교과서 편찬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자진 사퇴의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비공개 상태인 나머지 집필진이 제대로 구성됐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역사교과서의 민낯

    베일에 가린 집필진 자질 논란, 제작 일정 등과 함께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안 공개도 문제로 거론된다. 편찬기준안은 일종의 교과서 서술 가이드라인으로, 새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다. 이 또한 집필진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공개’ 방침이었지만, 후에 ‘비공개’로 바뀌었다.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했던 지난해 11월 3일 김정배 위원장은 “이달 말 편찬기준안을 직접 브리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발표를 두 번이나 미루더니 12월 14일 “이달 안으로 발표할 예정이나 날짜를 못 박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해를 넘긴 올해 1월 27일 이영 교육부 차관은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확정했고, 집필진이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던 약속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번에도 최 명예교수가 방패막이로 활용됐다. 이 차관이 “편찬기준을 빨리 공개하라는 요청이 있지만, 최몽룡 교수 사태도 있지 않았느냐”고 한 것이다.

    황 전 부총리에 이어 등판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아예 편찬기준 비공개를 확정했다. 그는 5월 30일 한 방송에 출연해 “역사교과서 편찬 작업은 계획대로 진행돼 11월 정도에 최종 원고가 나올 예정”이라면서 “이때 집필진과 편찬기준도 같이 공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했다. “원고본이 나오는 7월쯤 편찬기준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곧 “11월에 같이하는 편이 낫겠다는 의견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불통의 아이콘’이 돼버린 역사교과서의 민낯이 11월 공개되면 진보진영의 큰 반대가 예상된다. 교육부 한 국장급 관료는 이에 대해 “이왕 매를 맞을 거면 한꺼번에 맞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다. 집필진과 편찬기준을 중간에 공개해 비판받기보다, 역사교과서가 공개되는 시점에 한꺼번에 공개해 이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그가 말한 ‘매’가 얼마나 아플지는 11월이 돼야 알 수 있지만, 그 비판의 손가락이 국정 역사교과서의 출발점인 청와대를 향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통일도 중요한 앞으로의 국가 목표인데, 통일이 됐을 때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올바른 통일이 돼야지,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11월 예상되는 비판에 박 대통령이 ‘불통’으로 맞설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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