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 박승춘 중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급 및 합참 정보본부장 보직 신고를 했다. 그러나 임명 두 달 만에 전역하는 불운을 겪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언론에 정보를 유출한 것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정보 보고와 북한 측의 전화 통지문으로 사건 당일 8차례 교신(송신)이 있었던 것이 알려져 한동안 ‘군이 참여정부 정책에 항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될 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남북 함정 간에 오고 간 송신 내용과 시각을 자세히 밝혀 북한 측의 기만전술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상황은 반전되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0년 넘게 국방부를 출입한 국방전문기자를 국방부에 보내고 있다. 통상 한두 언론이 특종을 내면 다른 언론은 이에 자극받아 더욱 적극적으로 취재에 나서 과열 양상이 벌어지곤 한다. 이때 해당 부처에서는 정보 출처에 대해 조사를 벌이게 되는데 군사기밀을 많이 다루는 국방부는 다른 정부 부처보다 보안에 더욱 엄격하기 때문에 박중장을 정보 소스로 밝혀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국정원의 보고로 인해 모든 화살이 해군과 합참으로 쏟아지자, 정보 병과의 수장(首長)인 그는 자기 병과를 보호하기 위해 합참 정보본부가 입수한 당일 상황을 두 언론에 공개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 남북 함정이 주고받은 송신은 ‘공개된’ 국제상선통신망 주파수로 오고 간 것이라 기밀문서가 될 수 없다. 박중장이 알려준 것은 송신 내용과 다른 루트로 입수한 정보를 보태 추후에 만든 기밀문서 ‘블랙북’에도 올라가지 않아 군사기밀 유출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국방부 수뇌부는 유독 박중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별렀을까. 이유는 박중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보 병과만이 갖고 있는 고질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합참 정보본부장은 국방부의 국방정보본부장을 겸하는데, 국방정보본부(DIA)는 국방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종합하는 ‘국방부 내의 국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방정보본부 산하의 핵심 부대는 육군 소장이 지휘하는 국군정보사령부와 감청부대다.
정보기관 폐쇄성 때문 타기관과 유기적 협조 서툴러
정보기관은 비밀리에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폐쇄성이 강한 게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타 기관과 유기적인 협조를 하는 데도 서투르다. 2002년 서해교전 직후 사건 발생 경위를 조사한 조사단은 서해교전이 일어나기 한 달 전쯤 정보사령부와 감청부대 사이가 극도로 나빠져 정보사가 감청부대에 영상정보를 제공해주는 한국영상전송체계(KCITS·Korea Compressed Imagery Transmission System)를 40일간 차단한 사실을 밝혀냈다.
박중장 처벌을 강조하는 국방부 소식통은 이와 비슷한 일이 박중장 조사에서 드러났다고 말했다. 때문에 국방 정보의 최고 수장으로서 지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처벌 이유다.
두 번째로는 언론에 정보를 제공한 판단력에 대한 문제 제기다. 언론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었고 정보 병과 역시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정보 수장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국방부 수뇌부는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박중장에 대한 국방부의 처벌 의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이들은 정보 병과의 폐쇄성이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7월15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함정 간의 ‘송신’을 ‘교신’으로 보고함으로써 혼란을 일으킨 국정원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 정보 체계에 대한 총체적인 개선을 전제하지 않는 한 박중장 처벌은 희생양이라는 시비를 피해나가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