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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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5일 근무제가 미워요”

백화점•할인점 등 서비스업 근로자들 “오히려 더 바빠” … 일부선 임금까지 줄어 노사갈등 심화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7-30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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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주5일 근무제가 미워요”

    서비스노조연맹 노조원들이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시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7월1일부터 1000명이 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금융•보험업종을 중심으로 주40시간 근무제가 실시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장은 이를 사실상 주5일 근무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쉽게 말해 토요일 일요일은 쉰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가 유통업, 오락산업, 외식업 등 민간서비스 부문이다. 사실상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이 시작되는 만큼 매출이 늘 수밖에 없다는 것. 불황 탈출의 호재를 맞은 업계는 연중무휴, 금요일 밤 연장영업, 2박3일 패키지 상품 출시 등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매장에서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속내는 오히려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잔치’지요. 업주만 살찌우고 근로자는 죽어나는 거예요. 연중무휴에 주5일제라니, 정말 기막힌 일 아닙니까.”

    까르푸 15차례 협상에도 해결 기미 없어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조연맹(이하 서비스노조연맹) 이상규 정책국장의 말이다. “주말이면 더 바빠지는 서비스업 근로자들에게 주5일제 실시는 노동 강도 강화, 불안정한 휴식,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임금 삭감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파견사원, 주부사원, 아르바이트 청소년,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유난히 많은 것도 한 요인이다. 도소매음식숙박업, 즉 민간서비스산업은 평균 임금이 가장 낮은 산업군이기도 하다. 민간서비스 업종 근로 조건의 특징은 주말 휴무가 없고, 교대 근무를 하며, 임금에서 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소비자 편익을 명분으로 다양한 행사•변형 근로 등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백화점, 대형 할인매장 등 유통업체의 상황이 가장 열악하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사실상 연중무휴 영업을 하고 있다. 손님도 주말에 더 많이 몰린다. 때문에 주5일제 실시 전, 직원들은 일요일 대신 평일 중 하루를 대체 휴무하고 토요일은 전원이 4시간을 ‘추가’ 근무하는 형태로 일해왔다. 이 추가 근무는 사실상의 ‘정규 근무 시간’인 만큼 그에 대한 수당은 ‘고정급’으로 인식돼왔다. 그런데 주5일제가 실시되면서 이 수당의 지급 여부가 문제가 됐다.

    회사 측은 “토요 연장근무가 없어졌으니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나, 근로자 측은 “사실상 급여 개념인 만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서비스노조연맹 김형근 위원장은 “말이 수당이지 그 돈은 월급 개념에 가깝다. 상여금, 퇴직금 정산 때도 모두 포함되는 돈이다. 주5일제 실시의 핵심 요건은 ‘노동조건 저하 없는 근무시간 단축’ 아닌가. 그런데 주5일제가 됐으니 수당을 못 주겠다고 하면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느냐”고 반문했다. 이렇다 보니 각 백화점, 할인점은 요즘 수당과 연장근무 시간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현대백화점은 그중 협상이 가장 ‘잘된’ 경우로 꼽힌다. 근무시간은 주5일제, 즉 주당 40시간으로 줄이면서 이전 토요 연장근무 수당을 기본급화하는 데 노사가 합의했다.

    “우리는 주5일 근무제가 미워요”

    대형 할인매장의 계산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화장실 갈 시간조차 내기 힘들다.롯데미도파노조원들이 정기휴점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뉴코아백화점은 노사가 각각 한 발씩 양보한 경우다. 회사 측은 기존 수당을 그대로 지급하는 대신, 근로자들은 날마다 30분씩 연장근무를 하기로 했다. 즉 2시간 30분 연장근무에 기존 4시간 기준 수당을 그대로 지급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업장에서는 원만한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까르푸만 해도 벌써 15차례나 노사협상에 나섰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한국까르푸는 주5일제 실시 전, 주말마다 4시간이 아닌 6시간 연장근무를 했다. 그러니 기존의 수당을 다 받으려면 5일간 매일 1시간12분의 연장근무를 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하루 11시간을 종일 서서 근무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다른 회사들처럼 수당을 기본급화해 달라거나 하는 요구는 하지도 않는다. 연장근무를 많이 줄여달라는 것도 아니다. ‘매일 12분씩, 일주일 1시간의 근무시간만 줄여달라. 그리고 중간에 물마시고 화장실 갈 수 있는 휴식시간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우리 요구다.” 한국까르푸 김경욱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우리는 주5일 근무제가 미워요”

    6월 주5일제 근무를 이슈로 쟁의를 한 현대백화점노조원들.

    까르푸의 경우 전체의 60%에 이르는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만 해도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못할 경우 월수입 90만원(평직원 기준)이 75만원으로 줄어든다. 연장근무와 수당을 마다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김위원장은 또한 “주5일제 실시로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근로자들의 근무 여건이 오히려 더 악화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5일제 실시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그런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직원들은 오히려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사측이 ‘법대로 한다’며 월차휴가, 생리휴가를 모두 없앤 탓이다. 공휴일과 토요일이 겹치는 엿새(2004년 기준)마저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이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주5일제 실시 후 입사 1년차 여직원은 연간 32시간, 19년차는 64시간을 더 일하게 된다.” 이 때문에 까르푸노조는 사라진 생리휴가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협상 타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건 외식업체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직영점만 204개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피자헛의 직원 수는 6300여명에 이른다. 이중 1300여명만이 정규직이다. 한국피자헛 이유한 노조위원장은 “한 매장에 정규직원 수는 4~8명에 불과하다. 아르바이트생들의 근태가 불규칙하고 정규직 수가 적다 보니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휴일에도 언제 호출이 있을지 몰라 늘 휴대전화를 켜놓아야 하고, 쉬는 요일도 들쭉날쭉하다. 한마디로 휴식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쉬는 날도 불러내기 일쑤 ‘무늬만 주5일’

    “우리는 주5일 근무제가 미워요”

    6월 주5일제 근무를 이슈로 쟁의를 한 현대백화점노조원들.

    이러한 사정은 백화점, 할인점, 호텔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롯데백화점 본점 의류매장에 근무하는 김모씨(37)는 “집에서 쉴 때도 걸핏하면 ‘물건 어디 있냐’ ‘오후에 좀 나와줘야겠다’는 전화가 온다. 또 행사는 뭐 그리 많은지. 주말에 쉬지 못하니 주5일제라 해도 가족과 여행 한번 가기 힘들고, 친구와 친척들 사이에선 ‘내 놓은 사람’이 된 지 오래”라며 씁쓸해했다. 호텔업계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롯데호텔 신승철 노조위원장은 “주5일제 실시 후 노동 강도가 말할 수 없이 세졌다. 일은 그대로인데 출근자 숫자는 줄어드니, 근무하는 5일 동안은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된다. 쉬는 이틀 동안도 잠자다 볼일 다 보기 일쑤”라고 항변했다. 신위원장은 “그나마 우리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노조가 약한 곳은 아직도 뭐든 ‘주인 맘대로’다.

    예를 들어 주5일 근무라 해놓고 어떤 때는 두 주 내리 일하게 스케줄을 짠 뒤 제멋대로 나흘을 몰아서 쉬게 하면 누가 견뎌내겠나. 게다가 우리는 하루 종일 몸 놀려 일하는 육체노동자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서비스노조연맹은 ‘영업시간 제한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형근 위원장은 “대형 유통서비스업의 영업시간을 제한해 노동자에게는 쉴 시간을, 고객에겐 서비스의 질 보장을, 재래시장에는 활성화의 기회를, 자본에는 공정한 경쟁조건을 보장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4시간 영업, 연중무휴, 사계절 행사’가 일상이 된 우리 민간서비스업계에도 ‘휴식의 날’은 올 것인가. “주 1회 정기 휴점이 있던 시절이 그립다”는 한 백화점 베테랑 판매사원의 넋두리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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