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사람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 한국 인터넷에 짧은 만화 하나가 나돌았다. 일본 만화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아톰이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면서 독도를 향해 돌진하다가 한국 만화의 대표 캐릭터 ‘주먹대장’에게 크게 한 방 얻어맞는 만화였다. 이 웹 만화는 아마추어 누리꾼(네티즌)이 만들었지만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컸다. 1990년 이후 일본 만화의 침공이 거센 상황에서 뜻있는 누리꾼들이 한국 만화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정의의 사나이 ‘주먹대장’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먹대장은 1958년 처음 등장한 캐릭터로 다른 사람보다 오른쪽 주먹이 몇십 배나 큰 ‘주먹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약자를 도와주고 악한을 물리친다는 권선징악이 주 내용이다. 이 주먹대장을 만든 이가 김원빈(71) 선생이다. 김 선생의 필명과 호는 ‘소박한 바위’라는 뜻의 소암(素岩)인데, 가장 존경하는 만화가 김의환 선생의 호 소동(素童)에서 소(素) 자를 따오고, 먼저 작고한 동생 김원암의 이름에서 바위 암(岩) 자를 따온 것이다. ‘어깨동무’ 편집부에 근무하면서 삽화를 그릴 때 선생은 ‘김소암’이란 필명을 사용했고, 만화를 그릴 때는 본명인 ‘김원빈’을 사용했다.
김 선생은 우리나라 어린이만화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원로 중 한 분이다. 그는 소탈한 성격과 어린이처럼 맑은 심성으로 50년 가까이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 50년 동안 주먹대장은 몇 번의 리메이크 과정을 거쳤다. 주먹대장은 민간설화인 ‘아기 장수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처음에 주인공의 이름을 정할 때 ‘주먹대장’과 ‘주먹장군’을 놓고 고민하다가 동료들의 의견을 종합해 ‘주먹대장’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1958년 등장 권선징악이 주 내용 … 50년 가까이 창작 활동
주먹대장 이름 결정에 의견을 낸 동료는 ‘용가리’와 ‘의사 까불이’의 김경언, ‘홍길동’의 신동우, 탤런트 박원숙의 부친인 박광현 씨, 만화가 이병주 김정파 박현석 씨, 당시는 만화가였지만 지금은 동양화가로 유명한 송영방 씨 등이다. 이들은 젊은 시절 김 선생과 동고동락한 동료로, 1960년 김 선생이 군 입대할 때는 돈을 걷어 송별회를 해주었다고 한다. 김 선생은 이들 가운데 작고한 친구가 많아 가슴이 아련하다고 말한다. 근래엔 서울계성초등학교 3년 후배이면서도 절친한 친구였던 고우영 씨마저 세상을 떠나 상심이 더욱 컸다.
1958년 첫선을 보인 ‘주먹대장’은 70년대 들어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에 8년간 연재됐고, 90년대에 어린이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에 연재됐는데 그로 인해 지금도 40, 50대 올드팬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선생의 주 장르는 시대물로 ‘초록동’‘아기 포졸’‘척척동자 아기’ ‘번개동자’ 등의 캐릭터가 있었는데, 전체 구상만 하고 아직까지 작업 못한 ‘불동자’도 언젠가는 발표하고 싶단다. 어린이들의 순수한 심성을 다루는 ‘동자 시리즈’를 연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평소 꾸준히 건강을 다진다니 존경할 만하다.
김 선생은 그림 그릴 때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탓에 대충 그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손이 늦어 원고 마감 시간을 못 지키는 작가로도 유명했다. 한번은 어깨동무에서 ‘손오공’을 연재할 때, 선생의 원고만 들어오지 않아 마감을 못하고 있던 편집부 직원들이 모두 화실로 쳐들어온 적이 있었다. “김 선생님 계세요?”라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적산가옥 2층 화실에서 뛰어내려 도망갔던 일은 재미있는 일화로 남아 있다.
선생은 지금도 동심에 젖어 산다. 흥얼거리는 노래도 ‘꽃밭에서’와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 같은 동요가 대부분이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지만 선생에게서는 어린아이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선생은 그런 동심이 삶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가 한국 만화계에서 늙지 않는 피터팬으로 불리는 이유도 한결같은 그의 동심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한 선생도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영락없이 인간미가 풀풀 풍기는 휴머니스트로 변한다.
필자가 ‘조선일보’에서 4컷 시사만화를 그릴 때인 1998년, 국정원에 부탁해 만화가 45명과 함께 군부대 위문과 안보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백령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만화가들이 백령도 해병부대에서 분단 현실에 대한 교육과 체험을 한 뒤, 저녁에 해병들로부터 푸짐한 회 대접을 받았다. 그날 밤, 좋은 분위기에 취한 김 선생은 연병장에서 밤새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꼿꼿이 앉은 채 아침을 맞았다. 그 지독한 백령도 모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밤을 꼬박 새운 체력에 만화가 모두가 놀랐다.
선생은 취미가 등산인지라 산 타기의 명수다. 지금도 평일에 가끔 인왕산과 관악산을 찾지만, 예전엔 설악산 골짝골짝을 자신의 손바닥 보듯 훤히 알아 만화계의 산신령이라 불리기도 했다.
변치 않는 동심이 삶의 원천 … 주먹대장 캐릭터 부활 기대
어깨동무에 ‘주먹대장’을 연재할 때의 일이다. 어깨동무 편집부원과 연재 작가들이 함께 설악산으로 가을 야유회를 갔다가 설악산 중턱에서 편집부 간부 한 사람이 발을 삐어 일행에서 낙오했다. 선생은 그 부상자를 부축해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가 지고, 달빛조차 없는 춥고 캄캄한 밤을 맞았다. 그러나 선생은 담뱃불과 별빛에 의존해 부상자를 데리고 무사히 하산했다. 선생이 설악산 지리를 꿰뚫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은 지금도 지하철을 탈 때면 에스컬레이트보다 계단을 이용하는데 거의 뛰는 듯이 걷는다.
몇 년 전, 한국어린이만화연구회에서 해마다 여름만화캠프를 진행했는데 그 프로그램 중 만화가들이 어린이들에게 만화 사인을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다른 만화가들이 사인회를 끝내고 방 안에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때, 손이 느린 선생은 사인 받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몇 시간 동안 사인을 해주었다. 어떤 때는 사인 받으려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밤을 새우기도 해서 동료 만화가들이 감탄하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은 “동심은 천심”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동안 우리의 만화 캐릭터들은 원소스 멀티유즈로 활용도가 큰데도 관련자들이 그것을 간과해 캐릭터 재가공에 소홀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주먹대장도 캐릭터를 재가공하고 마케팅을 접목시켰다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로 성장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캐릭터 재가공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주먹대장이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로 추진되다, 진행하던 회사 사정으로 인해 답보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요즘은 문화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시대다. 만화의 문화적·경제적 가치가 높아지고, 연극·영화·드라마·게임·캐릭터 시장에서까지 만화가 근간이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캐릭터 주먹대장이 영화, 게임 등 다른 장르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부활하기를 기대해본다.
주먹대장은 1958년 처음 등장한 캐릭터로 다른 사람보다 오른쪽 주먹이 몇십 배나 큰 ‘주먹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약자를 도와주고 악한을 물리친다는 권선징악이 주 내용이다. 이 주먹대장을 만든 이가 김원빈(71) 선생이다. 김 선생의 필명과 호는 ‘소박한 바위’라는 뜻의 소암(素岩)인데, 가장 존경하는 만화가 김의환 선생의 호 소동(素童)에서 소(素) 자를 따오고, 먼저 작고한 동생 김원암의 이름에서 바위 암(岩) 자를 따온 것이다. ‘어깨동무’ 편집부에 근무하면서 삽화를 그릴 때 선생은 ‘김소암’이란 필명을 사용했고, 만화를 그릴 때는 본명인 ‘김원빈’을 사용했다.
김 선생은 우리나라 어린이만화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원로 중 한 분이다. 그는 소탈한 성격과 어린이처럼 맑은 심성으로 50년 가까이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 50년 동안 주먹대장은 몇 번의 리메이크 과정을 거쳤다. 주먹대장은 민간설화인 ‘아기 장수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처음에 주인공의 이름을 정할 때 ‘주먹대장’과 ‘주먹장군’을 놓고 고민하다가 동료들의 의견을 종합해 ‘주먹대장’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1958년 등장 권선징악이 주 내용 … 50년 가까이 창작 활동
주먹대장 이름 결정에 의견을 낸 동료는 ‘용가리’와 ‘의사 까불이’의 김경언, ‘홍길동’의 신동우, 탤런트 박원숙의 부친인 박광현 씨, 만화가 이병주 김정파 박현석 씨, 당시는 만화가였지만 지금은 동양화가로 유명한 송영방 씨 등이다. 이들은 젊은 시절 김 선생과 동고동락한 동료로, 1960년 김 선생이 군 입대할 때는 돈을 걷어 송별회를 해주었다고 한다. 김 선생은 이들 가운데 작고한 친구가 많아 가슴이 아련하다고 말한다. 근래엔 서울계성초등학교 3년 후배이면서도 절친한 친구였던 고우영 씨마저 세상을 떠나 상심이 더욱 컸다.
1958년 첫선을 보인 ‘주먹대장’은 70년대 들어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에 8년간 연재됐고, 90년대에 어린이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에 연재됐는데 그로 인해 지금도 40, 50대 올드팬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선생의 주 장르는 시대물로 ‘초록동’‘아기 포졸’‘척척동자 아기’ ‘번개동자’ 등의 캐릭터가 있었는데, 전체 구상만 하고 아직까지 작업 못한 ‘불동자’도 언젠가는 발표하고 싶단다. 어린이들의 순수한 심성을 다루는 ‘동자 시리즈’를 연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평소 꾸준히 건강을 다진다니 존경할 만하다.
김 선생은 그림 그릴 때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탓에 대충 그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손이 늦어 원고 마감 시간을 못 지키는 작가로도 유명했다. 한번은 어깨동무에서 ‘손오공’을 연재할 때, 선생의 원고만 들어오지 않아 마감을 못하고 있던 편집부 직원들이 모두 화실로 쳐들어온 적이 있었다. “김 선생님 계세요?”라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적산가옥 2층 화실에서 뛰어내려 도망갔던 일은 재미있는 일화로 남아 있다.
선생은 지금도 동심에 젖어 산다. 흥얼거리는 노래도 ‘꽃밭에서’와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 같은 동요가 대부분이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지만 선생에게서는 어린아이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선생은 그런 동심이 삶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가 한국 만화계에서 늙지 않는 피터팬으로 불리는 이유도 한결같은 그의 동심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한 선생도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영락없이 인간미가 풀풀 풍기는 휴머니스트로 변한다.
김원빈 선생 작품 가운데 하나인 ‘척척동자 아기’의 표지와 주먹대장 등 만화 캐릭터로 꾸며진 지하철 내부(오른쪽).
선생은 취미가 등산인지라 산 타기의 명수다. 지금도 평일에 가끔 인왕산과 관악산을 찾지만, 예전엔 설악산 골짝골짝을 자신의 손바닥 보듯 훤히 알아 만화계의 산신령이라 불리기도 했다.
변치 않는 동심이 삶의 원천 … 주먹대장 캐릭터 부활 기대
어깨동무에 ‘주먹대장’을 연재할 때의 일이다. 어깨동무 편집부원과 연재 작가들이 함께 설악산으로 가을 야유회를 갔다가 설악산 중턱에서 편집부 간부 한 사람이 발을 삐어 일행에서 낙오했다. 선생은 그 부상자를 부축해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가 지고, 달빛조차 없는 춥고 캄캄한 밤을 맞았다. 그러나 선생은 담뱃불과 별빛에 의존해 부상자를 데리고 무사히 하산했다. 선생이 설악산 지리를 꿰뚫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은 지금도 지하철을 탈 때면 에스컬레이트보다 계단을 이용하는데 거의 뛰는 듯이 걷는다.
몇 년 전, 한국어린이만화연구회에서 해마다 여름만화캠프를 진행했는데 그 프로그램 중 만화가들이 어린이들에게 만화 사인을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다른 만화가들이 사인회를 끝내고 방 안에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때, 손이 느린 선생은 사인 받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몇 시간 동안 사인을 해주었다. 어떤 때는 사인 받으려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밤을 새우기도 해서 동료 만화가들이 감탄하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은 “동심은 천심”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동안 우리의 만화 캐릭터들은 원소스 멀티유즈로 활용도가 큰데도 관련자들이 그것을 간과해 캐릭터 재가공에 소홀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주먹대장도 캐릭터를 재가공하고 마케팅을 접목시켰다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로 성장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캐릭터 재가공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주먹대장이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로 추진되다, 진행하던 회사 사정으로 인해 답보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요즘은 문화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시대다. 만화의 문화적·경제적 가치가 높아지고, 연극·영화·드라마·게임·캐릭터 시장에서까지 만화가 근간이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캐릭터 주먹대장이 영화, 게임 등 다른 장르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부활하기를 기대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