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

영국 사립학교 살려낸 ‘해리 포터’

내리막길 입학생 수 지난해 처음 증가… 영화 배경 학교들 학생 유치 마케팅도 한몫

  • < 안병억/ 런던 통신원 > anpye@hanmail.net

    입력2004-09-30 15: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영국 사립학교 살려낸 ‘해리 포터’
    전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해리 포터’ 시리즈를 책이나 영화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그워츠 마법학교를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인 해리 포터가 마법을 배우고 퀴디치라는 마법사들의 운동을 즐기며 친구들과 우정을 키우는 곳이다. 이 호그워츠 마법학교는 작가 J. K. 롤링의 상상 속 산물이 아니라 영국의 전통적인 사립학교를 모델로 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식사하는 대형 홀과 미로처럼 이어진 계단, 그리고 중세풍의 고색창연한 건물, 식사 후 휴식을 취하는 휴게실(common room)과 넓은 운동장 등은 모두 영국의 전통적인 사립학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해리 포터가 사양세였던 영국 사립학교를 살렸다는 자료가 등장했다. 전년도와 비교해 해마다 감소 추세를 보이던 사립학교 입학생 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호그워츠 마법학교’ 관광상품

    영국 사립학교평의회에 가입한 1271개(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모두 포함된 숫자)의 사립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은 올해 1월 말 현재 50만966명이다. 지난해 신입생은 졸업생보다 8463명 늘어났다.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1.7% 늘어난 수치다. 1987년의 0.2% 증가세를 제외하면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사립학교 입학생 수는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영국 사립학교의 명성이 한물 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영국 사립학교평의회의 보고서는 사립학교의 입학생 수가 증가한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거론한다. 첫째는 9·11 테러 이후 경기가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영국의 경제상황이 호전되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여유가 생긴 가정이 많아졌다는 점, 둘째는 사립학교의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 마지막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향을 든다.



    지금까지 49개 언어로 번역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1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영화로 개봉되면서 각종 흥행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호그워츠 마법학교가 사립학교의 마케팅 전략과 연관된 것은 당연한 순서. 영국 관광청과 사립학교들은 각각 해리 포터 시리즈를 관광상품이나 학교 알리기에 적극 활용해 더 많은 관광객과 신입생 유치작전에 나섰다.

    영국 관광청은 해리 포터를 주제로 한 여행상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 런던의 번화한 킹스크로스 기차역에 ‘9와 3/4플랫폼’이라는 팻말을 세웠다. 킹스크로스역은 소설에서 해리 포터가 호그워츠 마법학교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곳이다. 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 페테스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출신학교라는 종전의 선전 전략을 바꾸어 호그워츠가 자기 학교를 모델로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실제 호그워츠 마법학교 장면들을 촬영한 장소는 영국 남부의 글로세스터 성당과 더램 성당, 중부 노섬벌랜드주의 앨런위크 성. 옥스퍼드대학의 보들레이언 도서관 등이지만 ‘우리가 호그워츠의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사립학교들은 이런 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최근 영국 사립학교들은 특히 외국인 신입생을 늘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립학교들은 지난해 8000명 정도의 외국 신입생을 유치했다. 사립학교의 외국인 재학생 수는 1만6600명 정도로 전체 사립학교 재학생의 3.3%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자릿수에 불과한 외국인 학생이 1년간 학교에 지불하는 돈은 2억7100만 파운드(약 5150억원)에 이른다. 영국 정부로서도 외국인 학생을 불러들이는 것만으로 이만한 돈을 벌어들이는 셈이니 사립학교의 외국인 학생 유치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외국인 학생들 중에는 중국으로 귀속된 홍콩 출신이 가장 많다. 지난해에도 2000명 이상의 홍콩 학생이 영국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또 중국 대륙에서 영국으로 오는 신입생 수도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독일 러시아 스페인 출신 학생들이 영국 사립학교를 많이 찾는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신입생 수가 늘어났다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왜 알부자인 사립학교에 혈세를 지원해 주어야 하느냐는 따가운 눈총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찰스 왕세자의 두 아들이 다녀 더욱 유명해진 사립학교 이튼은 1999년에 2820만 파운드(53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같은 부자 학교 이튼은 엉뚱하게도 자선단체로 등록되어 각종 세제혜택과 정부보조를 받고 있다. 사립학교 학생 한 명이 1년에 지원받는 국고는 2000파운드(380만원)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사립학교가 보유한 테니스장이나 크리켓 코트 등 각종 시설을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 국민과 아무 관계 없는 이들 학교에 왜 혈세를 보조해 줘야 하느냐는 불만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야당 시절에 이처럼 모순된 자선단체법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집권 후 5년이 지난 올해까지 별다른 개혁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