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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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용직 근로자’ 멋대로 대우하나

근로기준법 적용 일부에선 안 지켜 … 권리 알아도 신분 불이익 우려 항의 어려워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09-30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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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일용직 근로자’ 멋대로 대우하나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 말까지 국회 부속기관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서모씨(28)는 이달 들어 새로 받은 월급명세서에 지급되기 시작한 시간외수당을 보고 놀랐다. 그동안 일용직인 자신은 월차나 시간외수당을 못 받는 줄 알았던 것. 그래서 아무리 야근을 많이 한 달이라도 똑같은 월급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국회 서무담당자 역시 잘못 알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국회측은 뒤늦게 규정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

    그동안 받지 못한 수당을 소급해 받기로 마음먹은 서씨는 근로기준법을 뒤져가며 자신이 받아야 할 임금을 계산했다. 월차수당과 주휴수당 등 미수령액을 모두 합한 금액은 120만원 가량. 서씨가 이를 요구하자 국회측은 “월차수당은 줄 수 없고 그동안 준 식권값도 제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서씨가 이 사실을 관련 단체에 의뢰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질 조짐을 보이자 국회측은 밀린 수당 전부를 제대로 지급하기로 했다.

    행자부 추정 대략 1만여명

    2평 남짓 될까 말까 한 작은 안내부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관광안내소에서 하루 12시간씩 꼬박 통역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수당 등 근로조건을 묻는 질문에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여러 번 문제 제기를 했고 감사까지 나와 지적했지만 바뀔 생각도 안 해요. 그나마 우리는 임금이 높은 편이라나요.” 일당 3만5000원을 받고 있는 이들은 하루 12시간씩 격일로 근무한다. 영어 담당 한 명, 일어 담당 한 명이 한 조가 되어 근무하는 이들에게는 공휴일이나 명절도 따로 없다.

    문제는 한 달 동안 만근하면 발생하게 되는 월차휴가가 아예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일이 생기면 미리 교대를 바꿔 사흘씩 내리 근무하죠.” 월차수당은 모두 일당에 포함하는 것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이는 엄연한 근로기준법 위반. 식비도 교통비도 모두 본인 부담이다. “관광안내소에 근무하려면 관광통역 안내원 자격증이 있어야 해요. 이 자격증 따려고 1년 이상 외국어에 역사공부에 열심히 했죠. 남들은 통역일 하면 돈을 많이 버는 줄 아는데, 사실을 알고 나면 아무도 시험 보려고 안 할걸요.”



    ‘정부 일용직 근로자’ 멋대로 대우하나
    문서 심부름을 담당하는 여직원부터 각급 사무실의 업무용 차량 운전사에 이르기까지 정부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그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규모는 상당하다. 변동이 심해 정확한 숫자를 집계할 수는 없지만 대략 1만명 내외일 것이라는 게 행정자치부의 추정.

    이들은 공무원법에 따라 처우를 규정하는 공무원들과 달리 5인 이상 고용 사업장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다. 이에 따라 이들은 한 달 개근하면 1일의 월차휴가를, 1년 개근하면 10일의 연차휴가를 쓸 수 있고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못 쓰는 경우에는 대신 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여성 근로자의 경우에는 생리휴가와 출산휴가도 쓸 수 있다. 연장 근무에 대해서는 1일 2시간의 수당과 50%의 가산 임금을 추가로 지급받는다.

    물론 정부가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모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 근로기준과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사기업에 비해 타당한 법적 대우를 받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근로자들은 법적 미비를 이유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저희가 무슨 악덕 기업주라고 임금을 안 주겠습니까? 잘 모르니까 못 준 것일 뿐이죠.” 한 국책 연구기관의 인사 담당자는 고의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법정임금을 계산해 예산을 신청하면 그대로 나올 텐데 공연히 불법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것. 단순히 ‘일당× 일한 날짜’로만 계산하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해 업무를 처리한 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불법’이더라는 주장이다.

    정부 고용 일용직 근로자들의 노무 상담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는 노무법인 광장의 홍수경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공무원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다 보니 인사나 서무 담당자들이 근로기준법상의 수당명세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근로조건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위법 사례들이 생기는 거죠.”

    그러나 경기도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일용직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24)는 예산 운영의 경직성도 수당 지급에 차질이 생기는 원인의 하나라고 말한다. 지난해부터 일을 시작한 김씨가 한 달에 받는 돈은 대략 80만원.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정식 영양사 채용이 중단된 상태여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격주로 토요휴무를 하는 것. “지난해에는 격주로 쉬라고 공문이 내려왔어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딱부러진 규정이 없어졌더라고요.”

    평일에는 눈앞에 떨어진 급식일을 처리하느라 밀린 급식 관련 서류 정리며 잔무를 해결하기 위해 김씨는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출근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추가근무 수당은 따로 받지 못했다. 애초에 예산이 한 달에 두 번 토요일만큼만 배정된 까닭에 추가수당을 줄 재원이 없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 “꼬박꼬박 챙겨주는 학교도 있어요. 교장 선생님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수당을 챙겨 받는 친구가 부러워 학교측에 문제를 제기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매년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이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김씨는 말한다.

    감사 과정이나 이의 제기에 의해 문제가 불거져도 그때뿐인 경우도 있다. 총리실 산하 정책연구기관에서 연구생으로 일하고 있는 남모씨(26)는 지난해에는 꼬박꼬박 월차휴가를 사용했다. “작년에 한 번 문제가 커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지침이 각 부서에 내려왔었어요.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쉬게 했었죠. 그러다가 프로젝트 막바지에 접어들어 일이 바빠지니까 다시 유야무야됐지요.”

    정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이 몰리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다는 게 남씨의 말. 이때는 매일 야근해야 하지만 연장근무 수당은 없었다. 월차수당 역시 지급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시다바리라고 보면 대충 맞아요. 처음에는 꼭 돈 때문이라기보다 논문 작성을 옆에서 도우면 배우는 게 있겠다 싶어 지원했죠. 그렇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한 시민단체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김경란씨는 “결국 공공기관의 인사담당 공무원들이 근로기준법을 숙지할 수 있도록 우선 정부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소한 ‘법을 몰라 못 지켰다’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 또한 재계약 문제 등이 걸려 있어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신분을 감안해 관련 기관이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급선무라고 김씨는 말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장근무, 야간이나 휴일 근로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월차나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 법 11조에는 국가와 각급 지자체도 예외 없이 적용 범위에 속한다고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관공서의 기관장들 중 상당수는 교도소에 가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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