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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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치명적 위험물질 ‘PCBs’ 알면서 불법 유통

환경부 국무회의 보고 문건 통해 확인 … 근절 합의서 쓰고도 PCBs에 오염된 폐변압기·절연유 등 시중에 내보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6-23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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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전, 치명적 위험물질    ‘PCBs’ 알면서 불법 유통

    한전은 주상 변압기의 PCBs 오염 상황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PCBs(폴리염화비페닐)는 태곳적부터 존재한 물질은 아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진보해온 인류가 만들어낸, ‘죽음을 부르는’ 화합물이다. PCBs는 미국 몬산토사가 1929년 상업적으로 최초 생산했으며, 현재는 전 지구적으로 퍼져 있다.

    일본·대만 등서 괴질 주범으로 인식

    PCBs는 20세기 초반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일본 등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됐다. 또 70년대까지는 변압기, 콘덴서, 축전기, 케이블 등에 절연유(전기 또는 열을 통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름)로 애용됐다.

    전 지구적으로 퍼진 PCBs는 도처에서 ‘죽음을 불러왔다’. 대만, 일본, 미국, 벨기에 등에서 인간의 ‘진보’가 뜻하지 않은 ‘재앙’을 일으킨 것이다.

    68년 일본에서 괴질이 발생했다. 1800여명의 사람들이 피부, 손톱, 치주가 검게 변하는 병에 걸린다. 환자들은 온몸에 발진이 일어났으며, 눈곱이 떼어내기 힘들 만큼 엉겨 붙었다. 손발이 쉴 새 없이 저린 이들도 있었다. 괴질의 ‘주범’은 식품 회사에서 유출된 PCBs.



    78년, 79년 대만은 더욱 심각했다. 식용유 제조 회사에서 절연유로 쓰던 PCBs가 녹아내려 ‘식용유’에 들어갔다. 이 식용유를 먹은 이들의 상당수가 괴질에 걸렸는데, PCBs에 노출된 부모가 낳은 아이들의 일부는 면역 체계에 이상을 나타냈고 머리가 나빴으며(지능지수의 저하) 성장이 눈에 띄게 더뎠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60~70년대 산업화에 나서면서 한국은 PCBs를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대만에서 괴질이 발생한 후(79년)부터 PCBs의 사용을 규제하기는 했으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전력(이하 한전)과 군(軍), 철도, 지하철, 학교, 병원 등에서 사용하는 변압기에 PCBs가 잔존할 수 있다는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잠자던 ‘PCBs 공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이다. 단 의원은 ‘자원순환사회연대’와 함께 한전이 전봇대에 설치했다가 철거한 폐변압기의 PCBs 오염 실태를 조사했는데, 조사 실험에 사용된 10대의 폐변압기 중 8대에서 PCBs가 검출됐다(기준치 2ppm, 8개 변압기에서는 최고 37.48ppm이 검출됐음).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환경부의 국무회의 보고 문건에 따르면 ‘PCBs의 공포’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환경부는 문건에서 한전과 한전의 발전자회사가 보유한 약 166만대의 변압기 중 20%(약 33만대)가 규제 농도인 2ppm 넘게 PCBs에 오염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학교, 병원 등 민간 부분의 변압기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섰다며 범정부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전, 치명적 위험물질    ‘PCBs’ 알면서 불법 유통

    2004년 10월17일 한전은 PCBs 근절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해놓고도 폐변압기를 시중에 유통시켰다.

    2004년 환경부가 시행한 표본조사 결과, 한전 변압기 샘플 1234개 중 22%가 규제 농도 넘게 오염돼 있었다. 한전이 보유한 발전기뿐이 아니다. 환경부는 군부대, 철도, 지하철, 학교,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력 장비에 대해서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관련 부처와 협의해 실태조사에 나선 뒤 오염된 장비를 단계적으로 폐기 및 교체하고, PCBs가 함유된 폐기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PCBs는 이미 79년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사용이 금지됐고,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PCBs가 50ppm 이상인 제품을 제조하거나, 수입 및 사용하는 걸 막고 있다. 그런데 79년부터 규제된 PCBs가 변압기 등에서 발견된 이유는 명확치 않다. 환경부는 △규제 이전에 제조된 절연유가 남아 있거나 △PCBs가 변압기에 눌러 붙어 남았거나 △과거에 만들어진 절연유가 재활용되어 다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79년부터 규제된 PCBs가 환경 문제로 떠오른 데엔 한전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80년대 중반까지만 PCBs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79년 이후에도 PCBs를 사용했다는 얘기다. 폐기물관리법은 PCBs가 2ppm 넘게 스며든 폐기물은 ‘지정폐기물’로 표기해 처리하게 돼 있다. 그러나 한전은 ‘PCBs에 오염된’(환경부에 따르면 변압기의 20%가 규제 농도 넘게 PCBs에 오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폐변압기를 법을 어기고 시중에 유통시켰다.



    한전이 처리하는 폐변압기(연간 5만대) 중 90%가량이 적법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PCBs 오염이 우려되는 장비는 인식표를 부착한 뒤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한전은 탈법을 일삼으면서 ‘오염도 검사’는커녕 관리대장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한전은 ‘PCBs에 오염된’ 폐변압기의 절연유를 시중에 유통시키기까지 했다. 오염된 절연유가 전국 각지의 산업시설로 흘러간 꼴이다. 대만의 ‘PCBs 오염 식용유’ 사건이 오버랩된다.

    시중 유통으로 공장 근로자들 PCBs에 노출

    한준호 한전 사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자회사 사장단은 2004년 10월7일 ‘PCBs 근절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PCBs가 변압기를 비롯한 각종 제품 및 폐기물에 잔류하고 있다면서 “제품 및 폐기물의 안전한 관리 및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결의한 것. 그러나 합의서에 서명한 이후에도 한전은 ‘PCBs에 오염된’ 폐변압기를 재활용품으로 시중에 계속 유통시켜왔다. PCBs가 치명적 위험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면서도 불법 행위를 이어온 셈이다.

    한전 폐변압기의 절연유는 재활용회사에 넘겨져 절연유로 재활용되거나, 산업시설에서 절삭유로 이용되고 있다. 한전을 ‘고리’로 PCBs의 악순환 구조가 꾸려진 것이다. PCBs에 오염된 절연유는 공장의 연료로도 재활용된다. PCBs는 태우면 사라지지만 또 다른 위험물질이 나온다. 불법으로 재활용된 절연유나 절삭유를 쓰는 공장 노동자들이 PCBs에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한전 관계자는 “PCBs가 환경 문제로 떠오른 게 근래의 일인 데다, 폐변압기를 적법하게 처리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연 5000대가량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전은 주상 변압기의 오염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 PCBs 규제가 시작된 것은 최근이 아니라 79년이고, 한전 역시 PCBs가 가져올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최대 공기업’은 관련 법을 어기면서 자사 직원을 포함해 국민 건강을 위협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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