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다른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한 두 사람이 한국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기자에겐 상당히 의외였는데,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지나치게 엄격해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속으로 막연히 ‘그런가’ 했는데, 최근 농구 관계자 A씨에게서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합숙훈련할 때 숙소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듣고는 한국의 ‘선후배 위계’가 얼마나 심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숙소에선 보통 2인 1실로 방을 쓴다. 선배와 후배가 한방을 쓰게 될 경우 두 사람의 생활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하루 동안 휴식이 주어지면 선배는 그날 종일 푹 쉴 수 있다. 하지만 후배는 혼자 방청소하고 선배 빨래까지 하느라 고단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
또 후배는 아무리 피곤해도 선배보다 먼저 자서는 안 된다. 선배가 자려고 할 때 방의 전등을 꺼줘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배가 피곤해서 먼저 잔다고 하면 후배는 책을 읽거나 TV를 보고 싶어도 전등을 꺼야 한다.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집단에서 이런 엄격한 선후배 간 상하관계는 초중고 운동부부터 국가대표까지 아우르는 뿌리 깊은 문화인 듯하다.
그렇다면 중국이나 홍콩은 어떨까. 탁구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현재 대한항공 스포츠단에 있는 김분식(33) 씨는 “중국 선수들은 대회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코치나 감독 앞에서도 개의치 않고 감정을 드러낸다. 심지어 라켓을 집어던지기도 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감독이나 코치 앞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는데 선후배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을 리 없다.
군대를 연상케 하는 스포츠계의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어떻게 유래됐는지 논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학연 및 지연 문화, 대부분 스포츠 단체가 갖고 있는 파벌 문화와 연속선상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