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설적 풍자와 해학 … 가짜 다큐 코미디들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그러나 미국의 모든 것이 온통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그는 화장실 변기 속 물을 샘물로 착각하고 벌컥벌컥 마시고, 파멜라 앤더슨이 숫처녀인 줄 알고 그녀를 신부로 삼기 위해 전 미국을 기꺼이 횡단한다. 뿐만 아니라 호텔에서는 같이 간 동료와 싸우다 벌거벗고 사람들 앞에서 레슬링을 벌이기도 한다. ‘사우스 파크’나 ‘아메리칸 파이’의 주인공이 울고 갈 만큼 욕지기 나는 성적 풍자와 막나가는 웃음의 연발탄으로 무장한 보랏은 심지어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줄 몰라 점잖은 정찬 자리에 변을 들고 나타난다!
감쪽같이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만든 이 영화 ‘보랏…’은 그러니까 현실을 그대로 담은 다큐가 아니라, 대사와 연기가 어우러져 능청스럽게 현실을 주장하는 가짜 다큐라는 흥미로운 전통 위에 세워져 있다. 심지어 ‘반지의 제왕’ 감독인 피터 잭슨도 뉴질랜드에서 잊혀졌던 무성영화가 발굴돼 전 세계 영화의 시작이 뉴질랜드에서 발원했다는 ‘포가튼 실버’라는 엉뚱한 가짜 다큐를 만들었을 정도로 이 장르는 뿌리가 깊다. 영화적으로 보면 사실 가짜 다큐는 코미디와 밀착돼 있는데, ‘보랏’도 다큐가 아니라 다큐를 빙자한 코미디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이자 감독인 영국의 코미디언 사샤 배런 코헨은 직접 편집과 연출, 각본까지 겸한 팔방미인의 활동으로 인디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미국 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8명의 스태프를 이끌고 1800만 달러 저예산을 들인 영화는 미국 개봉 첫 주에만 26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사샤 배런 코헨은 그 여세를 몰아 골든글로브 코미디 부문에서 상까지 받았다(물론 상을 받으러 나온 그는 콧수염을 민 말끔한 미남이었다).
이 가짜 다큐에서 지구상 최고 벽촌인 쿠섹 출신의 보랏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국 문화에 무지하다. 그는 호텔 엘리베이터를 자신의 방으로 착각하고, 페미니스트 앞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작은 뇌를 가졌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카자흐스탄식 우정과 게이 커뮤니티의 환대를 혼동한다. 특히 파멜라 앤더슨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며 미국을 횡단하면서 수많은 미국인들과 만난다. 히피 대학생, 흑인 창녀, 광신적 종교집단, 백인 중산층과 방송국 사람들 등 미국의 사회계층을 대변하는 모두가 보랏을 피할 수 없다.
8명의 스태프, 제작비 1800만 달러에도 흥행에 성공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보랏 씨 미국에 가다’라고 불릴 만한 이 영화에서 사샤 배런 코헨은 이렇게 미국 문화를 무지막지하고도 살벌하게 비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보랏이 비판하는 또 다른 미국의 그림자 속에는 미국인의 프라이버시를 빙자한 대인관계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도 포함돼 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백인 중산층(WASP)에게 보랏은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그들은 보랏의 오버에 당황해 욕을 하거나 몸을 피하거나 분노를 표현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내쫓아버린다. 보랏은 자기 나라의 인사법처럼 사람들을 껴안아주고 싶어하지만 미국 남자들은 그를 게이로 오인하고, 오직 히피 대학생과 창녀 같은 주변부 사람들만이 사심 없이 그를 포옹해준다.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우리들 왜곡” 러시아 문화권에선 상영 금지
네이버 검색에 이 영화를 부모와 함께 보러 가도 되느냐는 질문이 있는데, 부모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면 부디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당신이 이 영화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모든 화장실 유머가 그러하듯, 당신이 철저히 보랏의 행각을 ‘웃자고 하는 일’로 즐길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기는 하다. 수백년이 지난 후 이 영화도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처럼 미국 문명을 조롱한 획기적인 코미디로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때쯤 되면 이 카자흐스탄 킹카는 미국을 빨아들인 문화 흡혈귀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관객들에게 남는 것은 거대한 웃음의 배설물뿐이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 싸구려 방식으로 영화는 웃기면서 돈도 벌고 싶다는 상업적인 야심을 숨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