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중 1명만 고소득 직업 구하나
인공지능(AI) 달리2(DALL-E2)에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를 반 고흐 스타일로 그려달라”고 주문하자 생성된 이미지. [김재준 제공]
과거에는 공학계열 졸업생의 90%, 문과계열 졸업생의 70%가 취업에 성공했다. 반면 예술계열을 졸업한 이들 중 생계를 유지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최근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50%를 넘나든다. 향후 공학이나 경영학 졸업자 중에서도 일부만 취업에 성공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은행 지점 감소 등을 통해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앞으로 20년 이내 공학을 전공한 100명 중 1명 또는 2명만이 고소득 직업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당장 10년 내에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상황을 필자는 ‘모든 직업의 예술화’라고 부르고 싶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컨대 생명공학 분야 연구자들은 새로운 약물을 발견하고 복잡한 생물학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AI의 도움을 받는다. 이 분야 연구는 개인의 전문지식과 창의적 사고가 결합돼 이뤄지는데, 개인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AI가 기여하는 것이다.
반대로 육체노동이 인간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고, 창의적인 일이야말로 AI가 가장 잘하는 일은 아닐까라는 의문도 든다. 결국 창업이나 기본소득에 의존해 생존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을 수 있다. 창업 역시 AI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전공 관련 전망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영학 시대가 갔다지만 프로그래머 세상도 곧 종말을 맞이할 전망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전공무용론(專攻無用論)’을 주장해왔다. 빅데이터 시대 AI는 전문가와 예술가의 역할까지 대체하고 있다. 앞으로 성공은 소수의 자본가나 이른바 ‘슈퍼 탤런트(super talent)’에게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재능이 미래 성공에 미치는 역할은 중대한 문제이나, 또 다른 문제가 우리를 기다린다. ‘재능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다. 뛰어난 머리, 개인의 창의성이 재능일까. 그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에 대해 과거에는 대다수 사람이 인정하는 대략의 기준이 있었으나, 요즘에는 그저 유명인이 한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으로 여겨진다. 재능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영향력, 소위 인플루언서의 세상이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은 곧 권력이 되고, 이 권력은 경제적 성공으로 연결된다. 과거에는 어른들이 “실력과 매력을 가진 사람이 돼라”고 조언했지만 지금은 매력이 곧 실력인 시대다.
사르트르가 알려준 창작의 비밀
비슷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필자는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떠오른다. 그조차도 자기 재능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사르트르는 자서전 ‘말(Les Mots)’에서 “글쓰기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국어로 이야기하고 외국어로 글을 쓴다”고 통찰했다.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것조차 사실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 같은 이질감과 거리감이 있다는 얘기다. 글쓰기에 대한 사르트르의 고민은 책에서 이어진다. 그는 이른바 ‘성령’과의 밀담을 써내려갔다(상자 내용 참조).작명을 하거나 브랜드 이름을 지을 때 말의 근원으로 돌아가보면 좋을 때가 많다. 외국어를 잘 못하더라도 어원을 따지는 습관은 철학적 훈련이 된다. 가령 믿음의 어원은 ‘강렬하게 사랑한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belief’의 동사는 ‘believe’인데, 이를 나누면 ‘be+lieve’가 된다. 여기서 ‘be’는 강세 접두어이며 ‘lieve’는 독일어 사랑(liebe)과 어원이 같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강렬하게 사랑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