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땅’ 이탈리아에서 또 경질된 무리뉴
이탈리아 세리에A AS 로마 감독 시절 조제 무리뉴. [뉴시스]
무리뉴 감독의 경질이 촉발된 계기는 1월 10일 코파 이탈리아(이탈리아 FA컵) 8강 경기 결과였다. 상대는 지역 라이벌이자 철천지원수로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인 SS 라치오였다. 하지만 AS 로마는 SS 라치오에 0-1로 패했다. 게다가 2022~2023시즌부터 4경기 연속 SS 라치오를 상대로 득점에 실패하는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었다. 구단 수뇌부는 의심스러운 성적과 함께 더비에서 심각한 부진을 보인 선수단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테다. SS 라치오에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이 부임하고 바로 다음 시즌 팀이 리그 2위에 오른 것도 비교가 됐을 것이다.
무리뉴 감독은 2021년 4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에서 경질됐고 같은 해 7월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날아갔다. 이탈리아는 그에게 성공의 땅이다. 스스로 ‘스페셜 원’이라 부를 정도로 자신감에 넘치던 무리뉴가 2007년 첼시 감독에서 경질되고 다시 성공 가도를 이어간 곳이 바로 이탈리아였다.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지휘봉을 잡은 두 시즌 동안 리그 2회, 코파 이탈리아 1회, 수페르코파 1회,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유럽 대항전 우승은 1965년 이후 명맥이 끊긴, 구단의 오랜 염원이었다.
무리뉴 감독 부임 당시 AS 로마는 중상위권을 횡보하고 있었다. 2018~2019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 무대를 밟은 후 리그 성적이 6위, 5위, 7위를 맴돌았다.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재정도 덩달아 풍족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무리뉴 감독과 함께라면 반등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 AS 로마의 급선무는 2000년대 9차례나 준우승을 차지하며 우승팀을 위협하던 강호 면모를 되찾는 것이었다. 무리뉴 감독 자신도 커리어 관리 측면에서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무리뉴 감독은 포르투갈 리그 FC 포르투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첼시,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트로피를 25개나 들어 올렸다. 하지만 첼시 감독 2기(2004년 부임~2007년 경질, 2013년 재부임~2015년 경질) 이후 리더십이 자주 흔들리고 전술적 역량도 우승팀을 이끌기에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AS 로마 선수들과 팬들 신뢰 받았지만…
1월 10일(현지 시간) 코파 이탈리아(이탈리아 FA컵) 8강 경기에서 마티오 자카니가 득점에 성공하며 SS 라치오가 AS 로마에 1-0으로 승리했다. 숙적 SS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패한 것이 조제 무리뉴 AS 로마 감독이 경질되는 계기가 됐다. [뉴시스]
다만 주위 걱정과 달리 AS 로마에서 무리뉴 감독의 리더십은 큰 문제가 없었다. 연이은 경질로 무리뉴 감독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고, 무엇보다 AS 로마에는 승리에 굶주린 선수가 많았다. 쉽게 말하면 ‘당근과 채찍’ 수위가 낮아진 동시에 팀 전체가 감독에 충성심을 보이며 매서운 지적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임 후 시간이 좀 지나면 선수와 마찰을 빚던 무리뉴 감독도 AS 로마에선 그러지 않았다. 팬들의 열정적 지지도 선수단 장악에 큰 도움이 됐다. 축구팀 성적이 조금만 부진하면 언론과 팬이 합심해 작은 흔들림을 태풍으로 만드는 시대다. 그럼에도 AS 로마 서포터들은 무리뉴 감독 부임 초기부터 강한 신뢰를 보이며 늘 팀을 지지했다. 부임 첫 시즌 기대했던 리그 4위 진입은 실패로 끝났지만, 무리뉴호(號) AS 로마는 창단 후 처음으로 유럽 대항전인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팬들의 믿음을 충족했다. 2022~2023시즌에는 기세를 몰아 리그 순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그런데 2022~2023시즌 AS 로마는 4위 진입에 실패했다.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이 걸린 유로파 리그 결승전으로 위안을 삼아보려 했으나 세비야에 패하면서 아무런 소득 없이 시즌을 마쳤다. 구단 재정을 고려하면 상금 잔치라 할 수 있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절실한 터였다. 부임 3년 차를 맞은 무리뉴 감독의 리더십 위기였다. 중요한 경기를 놓치고, 강팀과 맞대결에서 형편없는 결과를 낳고, 원수지간인 지역 라이벌 SS 라치오에도 속절없이 패한 것이다. 수동적·수비적인 팀 경기력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이번 시즌에는 부상자가 너무 많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왕년의 ‘스페셜 원’ 무리뉴 감독은 이렇게 다시 퇴장하고 말았다. 2015년부터 4번 연속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 경질됐다. 심지어 AS 로마 재임 시절은 50경기 이상 지휘한 감독 중 경기당 최저 승점 획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무리됐다. 무리뉴 감독의 스타성은 여전할지 몰라도 빅리그에서 경쟁력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