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평가팀이 있는 서울 여의도동 중소기업정보기술진흥원 전경(오른쪽)과 윤도근 원장.
“옷이 너덜해질 정도로 당했다”
직원들의 만류로 드잡이는 진정됐지만 화가 난 윤 원장이 조씨의 배를 찼고, 조씨도 오른 주먹을 윤 원장 얼굴을 향해 날리면서 또 한 번 몸싸움이 시작됐다는 게 조씨와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경찰에 신고하라”는 윤 원장의 말에 조씨가 직접 112로 신고했다. 부속실 직원은 경찰에 신고하려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대전둔산경찰서 도룡지구대 경찰관의 설명.
“신고자는 윤 원장 등을 상대로 부정 입찰 관련 고소를 한다고 최후통첩을 하러 원장실로 갔다고 했다. 자신(조씨)이 먼저 멱살을 잡았고, 이후 쌍방폭행으로 이어졌다고 진술했다. 윤 원장은 ‘회의 후 지구대로 가겠다’면서도 자신의 폭행 사실은 부인했다. (조씨는) 고소장을 보여주면서 폭행 사실도 함께 고소하겠다고 말해 사건처리를 하지 않았다. 일단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놓으라고 했다.”
윤 원장은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회의 후 경찰에 고소하려고 직원이 갔는데 이미 조씨는 도망간 상태였다”며 “옷이 너덜해질 정도로 당하다 보니 화가 나 발로 (조씨 배를) 밀었다. 고소하려고 했지만 참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조씨는 2011년 말까지 IT 업체 대표를 지낸 인물. 조씨와 윤 원장의 말을 종합해보면 ‘멱살 소동’ 사건의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1월 발족한 기정원은 연구개발(R·D) 전문기관으로 연간 예산 집행액이 4000억 원이 넘는 준(準)정부기관. 당시 기정원은 단위사업별로 따로 운영하는 개별사업 시스템 수십 개를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2012년 1월 기정원 창립 10주년에 맞춰 ‘중소기업 지원사업 통합사업관리 시스템 구축’을 추진했다. 이 시스템 구축에 앞서 2011년 4월 시스템 통합을 위한 정보화전략계획(ISP) 사업을 조씨 회사가 맡았다. 조씨의 설명이다.
“윤 원장이 통합사업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ISP 사업부터 참여해달라고 했다. 31개 업무 꼭지를 통합하려면 분석 설계에만 6개월이 걸린다. 윤 원장이 ‘반드시 10주년에 맞춰 시스템 구축을 해달라’고 해 주말, 휴일 없이 직원들에게 수당을 줘가며 독려했다. ISP를 마치고 본 계약(통합사업관리 시스템 구축)을 따내면 자금 사정이 나아지리라 믿었다. 그래서 윤 원장에게 본 계약을 낙찰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 했고, 그도 확약을 했다. 그런데 2011년 10월 통합사업관리 시스템 입찰에서 탈락했다. 채무보증으로 신용불량자가 됐고 회사도 문을 닫았다. 이후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고소한다고 말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수신거절 설정을 해놓아 홧김에 달려갔다.”
문제의 통합사업관리 시스템 구축은 예산 8억8000여만 원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사업자 선정은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진행됐다. 이는 입찰 대상 사업에 높은 전문성이 요구될 때 여러 입찰자의 제안서를 받아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심사위원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당시 낙찰 확약을 원하는 조씨에게 윤 원장은 ‘심사위원 6명 중 3명을 추천하라’고 했고, 조씨는 평소 자신이 아는 A 교수 등을 심사위원으로 밀었다. 기관장이 특정 업체에 입찰 전 심사위원을 선정하라고 한 것은 명백한 부정 입찰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게 법조인들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기정원 입찰 부서 관계자는 “입찰 처리규정에도 ‘심사위원이 업체와 이해관계가 있으면 안 된다’고 돼 있다. 응찰 업체가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윤 원장은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ISP 사업 등을 보면서 조씨가 본 사업을 맡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입찰과 관계없이 (낙찰받게) 해달라고 해 ‘심사위원을 당신이 넣으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좋지 않아 탈락했는데, 내가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고 믿는 것 같다.”
직원 연찬회 등 여러 차례 구설수
윤도근 원장 아들이 출연한 뮤지컬 관람 계획을 알리는 e메일.
“심사위원 명단도 나만 아는 줄 알았는데 다른 업체도 알고 있었다. 내가 추천한 심사위원들이 심사 전 ‘다른 업체들의 전화를 받았다’고 알려와 윤 원장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윤 원장이 나를 밀어줄 것처럼 말해놓고 뒤에선 다른 업체를 밀었다. 당시 위스키 로열설루트와 이마트 상품권도 건넸다.”
이 때문에 둘 사이는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이번 폭행사건의 발단이 됐다. 조씨는 ‘멱살 사건’ 이후인 10월 15일 부정 입찰과 폭행 등을 이유로 윤 원장을 상대로 대전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냈다.
기정원은 지난해 9월 윤 원장 아들 윤모 씨가 출연한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를 관람하려고 직원 문화연찬회 명목으로 500여만 원을 써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기정원 관계자는 이렇게 털어놨다.
“직원 대부분인 90여 명이 뮤지컬을 관람했는데, 상당수 직원은 눈도장을 찍으러 갔다. 공식적으로는 ‘독거노인을 초청했다’고 했지만 독거노인은 10여 명도 안 됐다. ‘아무리 아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이라지만 기관장이 이렇게 해도 되나’ 하고 뒷말이 많았다.”
윤 원장은 기정원 통계분석팀에 박사 학위(호서대 벤처대학원) 논문에 필요한 통계자료 제작을 의뢰해 구설에 올랐고, 기관 예산으로 100만 원 상당의 고가 여행용 캐리어 2개를 구매해 중소기업청 감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나는 아들 공연 관람을 원하지 않았지만 간부들이 나서서 일을 진행했고, 성격은 독거노인 초청 문화연찬회였다”면서 “3월 서울 여의도에서 대전으로 기관 이전을 하고 혁신을 시도하다 보니 엄청난 저항이 있었고 음해성 발언이 많았다. 금품과 향응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기정원은 2012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기관장 평가에선 낙제점인 D등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