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 ‘기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야당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 요소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10월 14일 시작한 국정감사(국감), 17일부터 진행하는 10·30 재·보궐선거(재보선) 운동, 여기에 신(新)야권연대 및 국민연대까지 거론된다. 야당이 기를 펼 기회가 온 것이다. 국감으로 정부 실정을 부각하고, 선거로 야권 지지층을 자극하며, 연대로 힘을 모으는 것은 야당이 여권과 ‘맞짱’을 뜨는 데 필요한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은 깊다. 기회 요소는 많지만, 바닥 민심과 연대에 대한 여론이 미지근해서다.

지지율 10% 이하 속절없이 하락

최근 민심은 민주당에 싸늘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민주당 지지율은 10% 이하. 박근혜 정부 초기 잇따른 인사 파동,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출신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진 사퇴, 기초연금안에 대한 반발 여론 등을 고려할 때 제1야당의 한 자릿수 지지율은 충격적 수치다.

내일신문, 서강대정치연구소, 한국리서치 여론조사(10월 1~3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유무선 혼합 임의번호걸기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9.6%였다. 새누리당 33.3%의 3분의 1 수준이다. 좀 더 주목할 점은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응답한 층의 19.3%만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고정 지지기반이 허약한 데다 진보층에서도 제1야당을 외면하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띄우려는 새로운 야권연대에 대한 반응도 시큰둥하다. 천호선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 등으로 구성된 정의당은 민주당 등과의 연대를 환영했지만, 무소속 안철수 의원 측은 말을 아낀다.

“제안을 받은 바 없다. 제안을 해오면 내용을 보고 사안별로 말씀드리겠다.”

안 의원 측 발언은 민주당과 그리 쉽게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또 연대부터 말하느냐”고 비판한다. 만약 이런 식으로 민주당에 대한 무관심 기류와 냉담한 민심이 장기화할 경우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대통령선거(대선) 때만 해도 새누리당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민주당이 이렇게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의 민주당을 비교하면, 민주당에게는 현재 세 가지가 없다.

첫째, 반(反)대통령 정서다. 이명박 정권에서 민주당은 반MB 정서에 기대 여러 측면에서 효과를 봤다. △주요 재보선에서 무명에 가까운 후보가 여당 후보를 꺾었고(2009년 10·28 재보선, 수원 장안에서 민주당 이찬열 후보 역전극 등) △2010년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야4당 연대에 성공했으며 △2011년 4대강 사업 반대 등을 고리로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 환경단체, 정치적 성향의 시민사회를 묶어냈다.

반면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복잡하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10월 현재 약 60%대로 높다. 국정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매우 높은 성적이다. 게다가 민주당 이전 지지층과 현 지지층에서도 반박근혜 기류가 약하다.

내일신문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47.1%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이는 ‘잘하고 있다’(20.4%), ‘잘 모르겠다’(32.6%)를 합친 것보다 낮은 비율이다.

민주당에 없는 두 번째 요소는 ‘매력’이다. 야당의 매력은 야성과 신선함, 미래주자 등이다. 하지만 요즘 민주당에서는 이를 찾기 어렵다. 김한길 대표가 풍찬노숙을 통해 야성을 보여주려 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된 45일간의 장외투쟁은 오히려 야권 지지층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새 인물의 부재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정권에서 민주당이 송영길, 안희정, 이광재 등 ‘차세대 주자’를 내세워 관심을 끌고 약세 지역인 인천, 충청, 강원에서 역전한 반면, 현재 민주당에는 이런 미래주자들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낡은 정당 외면 3가지 이유

민주당 한 관계자는 “신선한 인물이 없고, 야권연대 전략을 반복하며, 차기 대선주자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으니 당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드 보이 집합체’가 상대적으로 보수를 강조하는 새누리당에게는 그리 큰 흠이 아닐 수 있지만, 젊은 층의 지지가 절실한 민주당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에 부족한 요소는 지도력이다.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체제는 기존 지도부와 달리 ‘비주류 집합체’다. 그래서인지 최고위원들의 경력만 보면 매력적이다. 앵커 출신 초선의원 신경민, 부산 3선 기록의 조경태, 충청 출신의 단식 투사 양승조, 민주화운동의 상징 고(故) 김근태 전 의원계인 서울의 우원식, 그리고 노동계의 이용득과 여성 박혜자 등은 기존 최고위원과 결이 다르다. 이들의 ‘탈계파 선언’도 의미가 있다.

문제는 계파정치의 후광 효과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울 강력한 보완재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거 친노무현계의 정세균 지도부는 ‘쇄신연대’를 비롯한 당내 비주류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치른 각종 선거에서 친노 세력과 반MB층의 결집으로 대승을 거두곤 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선거 때마다 현장에 투입된 것도 ‘김대중(DJ)의 영원한 비서실장’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DJ와 노무현의 후예들은 전직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누린 반면, 비주류 집합체인 현재의 민주당 지도부는 이런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10월 국감이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국감 초반부터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선전한 점은 청신호로 꼽힌다. 국방부 직할부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 제기, 국민연금 탈퇴 움직임을 통계로 지적한 점 등이 관심을 모은다. ‘소리만 빽빽 지르고 비판만 잘하는 야당’이란 지적에서 조금씩 벗어날 가능성이 보인다.

만만치 않은 경제 여건도 박 대통령 지지율과 야당에 대한 민심의 변수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예산편성 기준으로 삼은 경제성장률 예측치 3.9%와 관련해 “상당히 중립적 전망”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감 현장에서 여야 의원들은 ‘정부의 장밋빛 전망’이라고 비판하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실제 정부 주장과 달리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p 하향 조정(3.9→3.7%)했고, 10월 10일 한국은행도 하향 전망(4.0→3.8%)을 내놨다.

서민층이 당장 피부로 느끼는 물가 상승 문제, 중산층도 피해가기 어려운 부동산 문제도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우윳값 인상’에 대한 소비자의 집단적 반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장바구니 물가가 민심에 미치는 파괴력은 크다. 또 박근혜 정부의 핵심 민생정책인 부동산 대책은 아직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내년 봄 ‘이사 대란’이 닥칠 경우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공산이 크다.

한편 과거처럼 민주당이 맏형 노릇을 하며 중심에 서는 ‘선거 야권연대’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야권이 어떤 식으로든 힘을 합치자는 물밑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정의당과 안철수 의원, 민주당이 국정원 개혁안을 공동 제출하기로 합의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