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길 SDSN 한국포럼 대표
일상생활에서 지구적 차원의 고민을 한다면? 전기를 아껴서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거나,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려고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 그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5차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현재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2100년이면 1986~2005년보다 평균기온이 3.7도 오르고 해수면은 63cm 상승하게 된다. 해안도시들이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전 세계 과학자 2500여 명이 참가해 내린 이 엄중한 경고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움쩍달싹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실생활로 내려오면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만다.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홍구 전 총리는 “우리가 발전이라는 단어에 너무 방점을 찍고 살아왔다”며 “이제는 ‘지속가능한’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 교수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률보다 종합적으로 조망해야
지구적 차원에서 고민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지속가능한 발전(SD) 개념을 중시한다. 1987년 유엔 브룬틀란 보고서는 SD를 “미래 세대가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에 맞추는 발전”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유엔이 제시하는 SD는 크게 경제개발과 빈곤 추방, 사회적 통합, 환경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 등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 맥락에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SDSN은 인류와 각국이 안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2년 8월 발족한 유엔 후원조직이다.
8월 한국에서도 SDSN 한국포럼을 조직했으며, 양수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상임대표를 맡았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이상은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장, 임현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손욱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지속가능경영솔류션센터소장이 공동대표로, 곽결호 전 환경부 장관이 감사로 참여한다. 대학, 연구소, 기술기반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 33개 기관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더 많은 조직과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10월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SDSN 한국포럼 창립 기념 국제회의가 열렸고, 12~13일엔 장기온실가스감축경로도출사업(DDPP)을 위한 전문가 토론도 있었다. 이들 모임을 주도한 양수길 대표를 15일 KDI 연구실에서 만났다.
“SDSN 한국포럼에 주요 인사들과 기관을 참여시키고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2050년까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잠재력을 계산하기 위한 DDPP와 관련해서는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연구기관을 동원해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주제에 대해 연구기관 등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이번 회의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12개 나라에서 전문가 20여 명이 모여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여서 다른 나라 사례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참 아쉬웠습니다.”
양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성장위원회 민간 위원장을 맡았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였던 녹색성장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 소속으로 위상이 낮아지고 조직도 크게 줄어든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양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SDSN 한국포럼의 취지를 받아들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를 기대했다.
“우리는 아직도 경제운용에서 오로지 성장률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지난 50년간 경제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환경, 양극화, 중산층 파괴, 삶의 질 하락 등 수많은 문제를 양산해왔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환경 등 종합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한 궤도에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지속가능성 지표로 경제와 사회를 운용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바깥에서 뜨거운 불이 냄비를 데워도 느끼지 못하다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 것입니다.”
▼ SDSN이라는 이름에 등장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해법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
10월 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SDSN 한국포럼 창립기념 국제회의가 열렸다.
동반성장 등 기업 임무 더 커져야
유엔 차원의 SDSN은 현재 지중해 플라스틱 쓰레기 제거, 인도 벽지 아동을 위한 온라인교육 구축 사업,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지역 전기 보급, 석유가스의 방만한 채취로 훼손된 나이지리아 지역의 회생 사업, 아프리카 스마트폰 100만 개 보급을 통한 보건서비스 구축 등의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 SDSN이 만들고 있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어떤 것인지요.
“유엔은 2015년까지 전 세계 빈곤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큰 성과를 이뤘지만 빈곤은 여전히 난제입니다. 빈곤은 지속적으로 퇴치해야 하겠지만, 현재 인류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후변화와 해양생태계 문제입니다. 사회 양극화도 심각해지고 있고요. 그래서 전·현직 총리와 장관급으로 구성된 SDSN 자문 그룹이 지속가능발전목표 10가지를 내놓았습니다. 절대빈곤 퇴치, 양성평등, 사회통합,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 제어, 지속가능한 에너지 확보, 생태계 안정,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거버넌스 쇄신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라마다 그 양상이 다릅니다. 한국도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구체적인 해법을 개발해나가야 해요.”
SDSN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위한 해법을 찾는 전문가 그룹을 지구생태계, 저탄소에너지 등 12개 분야로 나눴다. 한국에서도 이 전문가 그룹이 구축되면 전 세계 전문가 그룹과 해법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그리드를 통한 전력산업 효율화, 일본과 독일의 자원순환 기술, 덴마크의 복지 테크놀로지, 교육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온라인교육 시스템 등이 전문가 그룹에서 논의하는 사항이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업 임무가 더 커져야 합니다. 기업들은 이제 사적 이윤만 추구할 경우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민들은 기업이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동반성장을 추구하며, 윤리적으로 활동하기를 기대합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이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을 이해하고 자기 회사에 내재화하면 좋겠습니다.”
SDSN 한국포럼 국제회의에 참가했던 제프리 색스 교수도 “이제 비즈니스는 문제의 원인이 되기보다 해결의 일부분이 돼야 한다”며 “아프리카에선 전력, 광섬유, 폐수처리 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수요가 많은데 한국 기업들이 이를 도와주면 앞으로 중요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