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둔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하지만 강둑이나 잔디밭 등에 함부로 앉거나 눕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젠 한강 둔치 잔디밭엔 절대로 앉지 않죠. 평소엔 인식하지 못했는데 잘 살펴보니, 강둑 근처에 쥐가 정말 많더군요. 위생상으로 좋지 않은 쥐가 이렇게 늘어날 때까지 서울시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게 참 기가 막히죠. 최소 ‘잔디밭에 쥐가 많으니 앉지 말라’는 표지판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한강 둔치에 서식하는 쥐가 급증해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건 물론, 위생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우선 한강 둔치에 왜 쥐가 많아졌는지부터 살펴보자. 전문가들은 “한강변은 쥐가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3주에 7~8마리 생산
아파트촌 등 도심과 달리 한강 둔치는 쥐가 몸을 피할 수 있는 제방 틈과 갈대 및 잡초, 은신굴을 팔 수 있는 흙, 그리고 생존에 중요한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서식 조건이 매우 좋다. 게다가 한강 둔치에 온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먹이도 풍부하고, 천적도 거의 없어 개체군 밀도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이상돈 교수(환경생태학)는 “도심 속 한강 둔치는 쥐처럼 생명력이 강한 동물 빼고는 다른 야생동물이 살기에 척박한 환경이다. 따라서 삵이나 부엉이, 올빼미, 야생고양이 등 쥐의 천적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쥐가 더욱 눈에 뛰는 이유에는 여름철 한강 둔치 유입 인구가 늘어난 것도 관계가 있다. 무더위를 식히려고 한강 둔치에 몰려든 시민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고 가면서, 가뜩이나 높은 쥐의 번식률이 더 높아졌다는 것. 이 교수는 “쥐는 3주마다 새끼 7~8마리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특히 도심 속 한강 둔치에 서식하는 생쥐나 시궁쥐는, 봄과 여름에만 번식하는 야생쥐인 등줄쥐와 달리 1년 내내 번식한다”고 했다.
반면 도심 속 아파트촌이나 주택가에는 쥐가 줄어들고 있어 이 쥐들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한강변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국립환경연구원 최태영 연구원은 “어느 동네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도심 아파트촌이나 주택가에 쥐가 줄어든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되고 분리수거가 철저히 이뤄지면서 도심에서 먹이가 줄자, 밀도 변화가 심한 쥐가 급감했다는 것. 한 연구에 따르면 쥐는 1만㎡에 최대 400~500마리가 서식하다가도, 환경이 나빠지면 10마리 이하로 개체수가 격감하는 아주 특이한 동물이다. 또 주택가에 쥐의 천적인 야생고양이가 많아진 것도 쥐가 줄어든 이유 중 하나다. 여하튼 세대 주기가 짧고, 밀도 변화가 심한 쥐의 특성상 쥐가 떼로 이동했다기 보단 척박한 환경인 도심 아파트촌이나 주택가에선 쥐의 개체 밀도가 줄고, 풍족한 환경인 한강 둔치에선 늘어나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문제는 쥐와 같은 설치류가 각종 전염병을 옮긴다는 것이다. 특히 쥐의 배설물은 치사율이 7%인 유행성 출혈열을 발생시키는 한탄 바이러스 등 각종 전염병균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시민의 휴식 공간인 한강 둔치가 급증한 쥐로 인해 오히려 시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셈이다(상자 기사 참고).
서울시에선 ‘나 몰라라’ 방치
그러나 한강변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시는 “한강변 쥐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는 반응이다. 기자가 서울시 푸른도시국 자연생태과와 한강사업본부 환경과, 녹지과, 생태과 등에 이 내용을 문의했으나, 모두 다른 부서로 책임을 돌리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자에게 “한강 둔치에 쥐가 많던가요?”라고 반문했다.
다만 서울시 산하 보건환경연구원이 올해 초부터 하천 근처의 쥐를 포획해, 이 쥐들이 어떤 전염병균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보건환경연구원 축산물부 인수공통전염병팀 손홍락 주무관은 “양재천 등 서울시내 하천에 덫을 설치, 쥐를 포획해 검사하고 있다”며 “만약 검사 결과 하천 근처 쥐의 전염병균 보유 정도가 심하고 전파력이 강해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 해당 부서가 거기에 맞는 해결책을 찾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강 둔치 쥐떼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강을 방문하는 시민 스스로 위생에 신경 쓰는 수밖에 없다. 낮 시간처럼 당장 쥐가 눈에 띄지 않는 때에도, 둔치 잔디밭에 함부로 앉거나 누우면 매우 위험하다. 쥐의 배설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와 애완동물이 뛰어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강변의 쥐떼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쥐 잡는 날’처럼 특정일을 정해 쥐를 다수 포획하거나, 천적인 야생고양이를 풀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생태계상으로 볼 때 적절한 조치는 아니다. 손홍락 주무관은 “쥐를 잡는다 해도 반짝 효과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쥐의 번식력을 감안할 때 한강 둔치처럼 ‘좋은’ 환경이 유지되면 6개월 내에 개체수가 다시 급증한다. 야생고양이를 푸는 것 또한 오히려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명력 강한 쥐를 한강 둔치에서 완벽히 없앤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쥐의 밀도를 낮출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버린 음식 한 조각이 쥐 한 마리를 탄생시킨다’는 생각으로 시민들 스스로 잔디밭이나 강둑, 강변 등에 음식물을 버리지 않는 게 필요하다.
한강을 관리하는 서울시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상돈 교수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음식물 쓰레기를 철저히 관리하고, 하천 주변에 썩은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는 등 깨끗한 강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한강 둔치의 생태조사를 철저히 해서 쥐 개체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생태계에 어떤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알아봐야 하다. 이런 부분이 매우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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