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에 이자를 합해 일정한 액수를 갚아나가는 ‘일수’는 ‘꺾기(재대출)’를 통해 이자가 순식간에 수백, 수천%로 불어난다.
“대출 좀 받으려고 하는데요.”
“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시고 한번 이쪽으로 찾아오세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박씨는 사채업자 A를 찾아 나섰다. 사람 좋아 보이는 A는 박씨의 사연을 듣고는 흔쾌히 대출을 허락했다.
“사모님의 경우 월 2.5%(연 30%)의 이자로 대출이 가능합니다. 이게 높은 것도 아니랍니다. 신용카드 연체하면 연체이자가 얼마인지 아세요? 자그마치 34%입니다.”
박씨는 빌린 돈으로 카드빚을 갚고 가압류를 푼 뒤, 집을 처분해 마련한 돈으로 사채를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A는 “자신들은 빚 독촉을 하지 않으며, 서울시에 등록된 모범업체”라며 박씨를 안심시켰다. 박씨가 1억 원을 빌리기로 하자 A는 아파트에 근저당을 설정한 뒤, 근저당 설정비 같은 수수료 명목으로 1500만 원을 제한 8500만 원을 지급했다. 박씨가 실제 손에 쥔 돈은 8500만 원. 만기 때 1억3000만 원을 갚게 됐으니 실제 이자율은 A의 설명과 달리 연 35.29%(3000/8500)였던 것이다.
박씨는 빌린 돈으로 일단 4000만 원의 카드빚을 갚았다. 마땅한 소득이 없는 상황이라 손에 쥔 돈은 나가기가 바빴다. 남은 돈으로 이자를 몇 번 갚다 보니 8500만 원은 불과 4개월 만에 사라졌다. 이후 한두 번 이자가 연체되자 박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A에게 전화를 걸었다. 화를 내며 빚을 독촉할 거라는 생각과 달리 A는 부드러운 말로 박씨를 달랬다.
“사모님 사정 다 압니다. 한두 달 기다리죠. 서로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드러운 말과 달리 연체이자율은 49.41%로 치솟았다. 매달 350만 원을 연체이자로 갚아야 하니 원금 상환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빚을 갚으려고 집을 내놓았지만 A가 설정한 근저당권이 화근이었다. 근저당을 해제하거나 말소하려고 해도 A가 동의하지 않았다. 집을 팔 수 없게 되자 박씨는 A로부터 추가대출을 받았다. A는 1년 동안 추가대출 이자와 연체이자로 짭짤한 수입을 거두면서도 끝끝내 근저당을 풀어주지 않았다. 박씨는 사채라도 털어내려고 다시 신용카드사로부터 돈을 빌려 ‘돌려 막기’를 했다. 그 와중에 박씨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경매 뒤 박씨가 손에 쥔 것은 70만9550원. 채무가 완전 청산됐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꺾기’로 연이율 수백, 수천% 넘어
박씨의 사례에서 보듯 불법 사채업자들이 합법을 가장한 영업으로 중산층까지 파고들고 있다. 높은 문턱의 제도권 금융을 사금융이 재빠르게 대체하면서 사채는 금융소비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금융위원회가 조사한 사채시장 규모는 16조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1998년 이자제한법이 폐지되기 이전 사채시장 규모는 4조 원 정도였지만, 불과 10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했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도 189만여 명(2008년 기준)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4%에 이른다.
2002년 제정된 대부업법은 대부업 등록제를 마련해 사채업자를 양성화하려 했다. 현재 등록된 대부업체는 2만 개가량이며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등 대형 대부업체는 등록 대부업체로 법의 테두리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음성화돼 있다. 미등록 대부업체 수가 등록 업체의 2~3배가 넘을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사채업자, 사금융업자, 고리대금업자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최고금리가 법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이를 비웃듯 부당하게 비싼 이자를 받으며 서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낸다.
현재 등록된 대부업체의 2~3배가 넘는 미등록 대부업체가 존재한다. 서울 명동 사채시장.
이 중 재래시장에서 시작된 일수(日收)는 고금리 사채의 대표적인 사례다. 원금에 이자를 합해 일정한 액수를 매일 갚아나가는 대출방식인데 100만 원을 빌려준 뒤 하루에 1만2000원씩 100일 동안 120만 원을 갚는 식이다. 원리금 상환방식으로 이자율을 계산하면 연 136.2%에 이른다. 갚는 날짜의 간격에 따라 3일수, 5일수가 있으며 매월 이자를 갚다가 원금을 일시에 상환하는 월변대출도 있다.
일수는 재대출이 반복될수록, 회수 기간이 단기일수록 누적수익률이 높아진다. 예컨대 100만 원을 빌려주고 하루에 2만 원씩 60일간 갚게 하면 연 이자율은 225.7%로 급증한다. 이는 회수된 이자가 원금으로 변해 또다시 이자를 낳으며, 단기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이자가 이자를 낳는 복리현상 때문이다.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은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는 부침이 심하고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리대 사채는 확실한 이득을, 그것도 지속적으로 보장하므로 어떤 투자보다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 사채 중 무엇보다 악질적인 것은 ‘급전대출’이다. 급전대출은 원금과 이자를 10일 안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급전대출에 가장 취약한 사람은 부동산 자산을 소유하지 않은 여성들. 송태경 사무처장은 “급전대출 문제로 상담하러 온 사람 중에는 미혼모, 생활비가 부족한 주부, 저소득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많다”고 했다. 교육비, 의료비 등 급하게 쓸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급전대출에 손을 대지만, 사채에 손대는 순간 고리대라는 족쇄를 차게 된다.
100만 원을 빌려 10일 뒤 110만 원을 갚기로 하고 급전대출을 받은 경우를 보자. 언뜻 이자율이 10%(10/100)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상환 기일을 고려해야 한다. 더군다나 100만 원을 빌려서 100만 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대출이 성사되면 대출금액의 5~10%를 수수료 명목으로 공제한다. 10만 원을 공제했다 가정하면 손에 쥔 돈은 90만 원. 실질적으로는 90만 원을 빌려 열흘 뒤에 110만 원을 갚는 셈이다. 열흘간의 이자율을 계산하면 11.1% (10/90). 연 이자율로 환산하면 405.5%다.
만약 열흘 뒤 110만 원을 다 갚지 못한다면 빚은 소위 ‘꺾기(재대출)’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예컨대 110만 원 중 30만 원만 갚았을 경우 남은 원리금은 80만 원. 사채업자는 이 금액을 다시 원금으로 해서 추가대출(예: 50만 원)을 받도록 한다. 거기에 추가대출 수수료(예: 70만 원)를 더하면 총 200만 원의 명목대출이 발생한다. 하지만 실수령액은 추가대출 50만 원이 전부다. 10일 뒤 220만 원을 갚아야 하는데 이때 열흘치 이자율을 계산하면 40%(20/50). 연 이자율로 환산하면 무려 1460%다.
이런 식으로 불법사채에 손을 대면 몇 번의 꺾기로 순식간에 연 이자율이 수백, 수천%로 불어난다. 이렇게 불어난 이자를 갚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채업자는 불법추심도 마다하지 않은 채 갖은 방법으로 채무자를 괴롭혀 돈을 뽑아낸다(상자기사 참조).
높은 금융문턱 고리대 내몰아
법정 최고금리를 무시한 대출이 이뤄지다 보니 채무자가 갚은 돈이 법적으로 정한 금액을 초과한 경우도 생긴다. 이때는 불법 사채업자를 형사고발한 뒤, 초과 지급된 이자에 대해 반환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불법 사채였음을 증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워낙 급한 상황에서 돈을 빌리다 보니 채무자는 사채업자가 원하는 대로 차용증을 쓰는 경우가 많다. 사채업자는 채무자로 하여금 백지에 인감도장을 찍게 하는가 하면, 채무자의 자필서명과 인감도장만 찍힌 서류를 수십 장 작성케 한다. 금액란과 대출날짜 및 채권자 등은 아예 공란으로 비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 뒤 대출관계 서류는 사채업자만 가지고 채무자에게 주지 않는다.
문제는 차용증은 채무자가 사실관계를 가지고 전면 부인할 수 없는 한 법적 효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100만 원을 빌렸는데 차용증에는 버젓이 1억 원으로 적혀 있거나, 심지어 원리금을 다 갚았음에도 또다시 돈을 갚으라며 사채업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사채는 대부분 현금거래로 이뤄지는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채무자가 거래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채권자의 살인적인 이자율이 문제가 돼 경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돼도 불법성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혹자는 말한다. 살인적인 고금리에 불공정한 계약관계 그리고 불법추심의 위험이 있는데 왜 굳이 사채를 쓰느냐고. 사채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단언하는 이도 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신용도에 감사해야 한다. 서민이 불법적인 사채를 이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빌릴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담보가 없거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돈을 빌리기 힘들어졌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 금융소외자가 830만여 명이니 성인 5명 가운데 1명은 제도권 금융기관의 문턱조차 밟을 수 없는 셈이다(26쪽 참조).
그렇다고 이들이 큰 금액을 빌리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당시 재정경제부가 전국 1만7539곳 등록대부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금융 이용자의 69.5%가 1000만 원 미만을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약간의 급전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만 마련된다면 불법 사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빈민에게 담보 없이 소액 대출을 제공해 빈곤퇴치의 기적을 일궈낸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 좋은 본보기다. 불법 사채를 쓰는 이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에 앞서 사채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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