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오전 9시 15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태운 승용차가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헌재) 정문을 통과했다. 삼청동 헌재소장 공관에서 오전 9시 무렵 떠난 셈이다. 헌재소장 공관은 한때 청와대가 안가로 사용했을 정도로 청와대와 가깝다. 따지고 보면 같은 동네 주민이다.
그를 헌법재판관으로 택한 이는 전임 대통령이지만 소장 지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자신을 임명한 최고지도자의 진퇴를 가늠해야 하는 일을 맡았다. 게다가 그의 임기(5기 소장)는 이번 달로 마무리된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현대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됐다.
차에서 내리자 유난히 큰 그의 눈동자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고개를 15도 정도 숙인 그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한 채 빠른 발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한다. 기자들도 예상했다는 듯 더는 묻지 않는다.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 재동 풍경
오전 10시에 열린 3차 변론의 초점은 국정농단 핵심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의 출석 여부. 카메라 기자들이 헌재 건물 오른편에 마련된 재판정 입구에 줄지어 섰다. 헌재를 상징하는 600년 된 천연기념물 백송이 내려다보는 자리다.하지만 최씨는 전날 예고한 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역시 형사재판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이날의 유일한 성과는 헌재가 보완을 요구한 박 대통령 측의 ‘세월호 7시간’ 소명자료가 전부. 하지만 이번의 해명은 ‘언론의 오보’를 탓하는 데 집중돼 이전과 차이는 없었다.
점잖기로 유명한 헌법재판관들의 발언에 가시가 돋기 시작했다. 박 소장이 포문을 열었다.
“앞으로는 변론 준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유로 입증이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주십시오.”
그는 이어 예정에 없던 ‘특별기일’까지 잡고 다음 주 3회 재판을 열겠다고 밝혔다. 필요하다면 강제구인에 나설 뜻도 내비쳤다. 일반적으로 형사재판은 주 1회 공판을 열면 “지나치게 빠르다”는 평을 받는다. 주 3회는 헌재에 전례가 없는 초고속 행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주 1, 2회 정도였다.
법조계는 5기 헌재의 임기가 사실상 ‘1월 31일’까지 라는 점을 고려한 초강수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날의 스포트라이트는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은 강일원 헌법재판관에게 쏟아졌다. 서울 출신인 그는 2012년 여야 합의로 추천된 중도성향의 인물.
“주심인 제가 석명을 요구한 부분에 아직까지 (청와대 측) 답변이 없다. 좀 답답하다.”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묻는 질문이었다. 이에 “다른 서면을 준비하느라 늦어졌다”고 답한 변호인. 심리가 본격화된 이후 헌재의 관심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해명 확보에 전력을 쏟는 기색이다. 정치권이 탄핵소추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를 방관한 책임 포함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인 것과는 정반대 상황인 것. 결국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1000만 시민의 함성 덕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없었다’는 이유를 헌법 위반 근거에 넣을 수 있었다.
태블릿PC로 촉발된 최순실 게이트는 현재 법원의 판단과 특검 수사가 맞물린 상황. 시간에 쫓기는 헌재가 형사재판 중인 사안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중대한 헌법 위배 행위’와 관련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수방관을 근거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탄핵소추 심판은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입증 책임이 피소추인, 즉 박 대통령에게 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해명이 부실한 것만으로도 탄핵소추안이 인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새해 첫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스스로를 변호한 반면, 헌재 출석은 외면해 빈축을 샀다.
탄핵을 최대한 늦춰야 하는 변호인 측은 이번 재판의 초점을 ‘최순실 실체 논란’으로 몰아가자는 전략이다. 변호인은 새해 초 헌재에 증인 37명과 태블릿PC 등 62건의 사실조회를 무더기로 신청했다.
하지만 강 헌법재판관은 이날 “이 재판은 범죄 혐의를 찾아내는 형사재판이 아니다”라면서 “태블릿PC가 쟁점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번 탄핵심판 최고 하이라이트로 손꼽을 만한 장면인 셈이다.
이 같은 발언이 오가던 무렵 헌재 정문에서는 여론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탄핵 찬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녹색당원으로 보이는 젊은이 4~5명에 불과했다. 정문 앞을 장악한 이들은 ‘박사모’ 회원으로 보이는 60대 이상 어르신 100여 명. 그들이 든 손팻말에 핵심 주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라!’ ‘김대중은 연평해전 때 축구 관람, 노무현은 태풍 올 때 연극 관람, 박근혜는 세월호 때 관저 근무!’
하지만 이들의 심각한 표정에 비해 출근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들이 “선동탄핵, 원천무효”라는 구호를 연신 제창하자 경찰이 나서 “법정에서 변론이 진행되고 있으니 구호 제창은 금지한다”고 경고한 뒤에야 잠잠해졌다. 2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한 어르신은 “다음 변론기일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건번호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우리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심리가 우리 헌정질서에서 갖는 중차대한 의미를 잘 알고 있으며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박한철 소장 신년사)
5·16 군사쿠데타로 사라졌던 헌재는 1987년 민주항쟁으로 이뤄진 9차 개헌으로 88년 부활했다. 올해 햇수로 서른 살 ‘이립(而立)’이 됐다. 최상위법인 헌법 관련 재판을 총괄하는 헌재의 위상은 출범 초기 독립 청사조차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서도 알 수 있듯, 대법원과 위상을 나란히 하는 최고재판소로 자리매김한 것.
법조계는 헌재의 존재감이 부각된 사건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과 ‘행정수도법 위헌심판’을 꼽는 데 이견이 없다. 이번 탄핵심판(2016헌나1)은 2004년 탄핵심판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게다가 당시 탄핵소추를 담당한 이가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이었던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로 불린다. 당시 그는 “대통령 탄핵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실 확인이 빨라지면서 헌재를 둘러싼 가장 큰 관심은 결정 내용보다 오히려 결정 시점에 쏠린다. 승부는 이미 갈렸지만 언제, 누가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04년 탄핵 당시 헌재 결정에 소요된 기간은 총 63일로 두 달 남짓이었다. 그사이 총선을 치러 세간에서는 “결국 여론 눈치를 본 것”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사상 최초의 탄핵심판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도 뒤따랐다. 이상경 전 헌법재판관은 “사상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에 재판 초기 많은 시간을 (해외) 자료를 찾는 데 써야 했다”고 회고했다.
헌재에 주어진 시간은 최대 180일.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6월 초까지 심판을 미룰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이 1월 31일과 3월 13일로 코앞에 다가온 데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새로이 재판관을 임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국정 공백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부담이다. 1월 11일에는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 5대 종단 종교인이 모여 “국정운영이 중단되고 경제위기와 안보위기가 동시에 우리를 덮쳐오고 있다”며 “헌재가 탄핵심판을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헌재가 빠른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법조계가 예상하는 이유는 대법원과 헌재 간 뿌리 깊은 경쟁의식 때문이다.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고, 2월 말 종료를 목표로 속도를 높이는 특검의 수사 내용도 언론보도를 통해 전달되는 상황. 법원과 특검, 헌재 모두 이번 사태의 키를 쥔 셈이다.
그동안 헌재는 최고재판소로서 위상을 높이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미 실체가 드러난 사건에서 헌법 위반의 ‘중대성’만 따지면 되는 헌재가 결정을 뒤로 미룰 이유가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헌재연구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법원의 1심 판결 뒤 나오는 헌재의 탄핵심판은 의미가 크게 퇴색될 것”이라며 “헌재 처지에선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30년간 헌재를 거친 수많은 선배 헌법재판관의 잇따른 발언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처럼 진보성향의 판사는 물론, 중도로 분류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까지 “이번 심판은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 애국과 비애국의 문제”라며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에 힘을 보탤 정도. 제1호 헌재연구관 출신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조속한 결론을 못 낸다면 오히려 헌재가 국민 저항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연 전술은 얼마나 통할까
하지만 신중론도 없지 않다. 먼저 박 대통령 측의 지연 전술이 만만치 않기 때문. 헌재에서 19년을 연구관으로 근무하다 이번에 탄핵소추 측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린 이명웅 변호사는 “헌재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피청구인 측이 신청한 증인과 증거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며 “하나하나 절차를 다 밟다 보면 국민 기대만큼 빨라지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청구인(박 대통령) 측이 노골적으로 지연작전을 쓰는 이유는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는 순간 박 대통령은 민간인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인용 시점이 특검 수사 도중이라면 구속 가능성이 높다. 헌재 결정이 늦어지면 광화문광장의 촛불이 줄고 친(親)박근혜 시위대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박 대통령 측의 지연작전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다.
그러나 1월 10일 3차 변론을 기점으로 헌재의 행보에 가속도가 붙었음이 확인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결정이 크게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3월 결정도 너무 늦고, 적어도 2월 초까지는 앞당길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럴 경우 4월 초 ‘벚꽃 대선’을 치를 수 있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 시사프로 ‘외부자들’에 출연한 정봉주 전 의원은 “헌재소장의 임기가 끝나기 전인 1월 안에 평의가 이뤄진다면 박 소장의 의견이 포함될 수 있다”면서 “판결문 작성에 필요한 2주 시간을 포함하면 2월 8일 전후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청와대 측의 부실한 답변이 계속되는 것 또한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헌재의 빠른 판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헌재 없앤 아버지, 헌재 심판받는 딸”
2004년 탄핵심판 당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주선회 주심 재판관과 노무현 대통령의 악연이었다. 공안검사 출신인 주 재판관은 1987년 옥포조선소 파업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3자 개입 혐의로 구속한 장본인이었다. 주로 보수적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에 ‘정치 판결’에 가까운 탄핵심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우려가 높았다.그러나 수년이 흐른 뒤 공개된 탄핵소추안 인용 소수 의견 3명 가운데 주 재판관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가 결정을 앞두고 수차례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공언한 대로 실천한 것이다.
사건 초기 야당이 탄핵 결정을 주저했던 이유는 보수적인 헌재 분위기가 한몫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헌재소장은 물론, 상당수가 보수정권에서 임명한 재판관이기 때문이다. 실제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심판에서 8 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가 나왔다. 그러나 박 소장을 잘 아는 검찰 주위에선 “누구보다 명예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인물이라 이념이나 정치적 견해와 무관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평이 주를 이뤘다.
특히 2004년과 가장 크게 달라진 환경은 모든 헌법재판관의 입장이 의무적으로 공개된다는 점이다. 즉 소수 의견이라도 근거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헌법재판관들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에 분노한 김기춘 당시 법사위원장의 제안으로 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탄핵심판이 헌재 기능의 완성이자 1987년 체제의 마침표일 것”이란 분석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쿠데타로 헌재를 없애고 그 딸은 헌재 심판대에 올라선 대목은 훗날 ‘역사의 아이러니’로 교과서에 실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