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집안 분쟁의 불씨 상속 문제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

  • 김경호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입력2019-12-1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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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사회의 변화를 법과 제도가 못 따라간다는 말들을 한다. 살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반대로 사람이 법과 제도의 변화를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개정된 지 30년 가까이 된 민법 상속 규정이 그런 예다. 1990년 1월 13일 장남(호주상속인)에게 상속분의 50%를 가산하고 결혼 후 출가(出家)한 딸에게는 상속분의 4분의 1, 즉 25%만 상속하게 한 민법 제1009조(법정상속분)의 규정이 바뀌었다.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자녀들의 상속분은 동일하며, 해당 규정은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가끔 출가외인(出家外人)인 딸이나 여자형제보다 아들이나 남자형제가 더 많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족이 있다. 하지만 장남이 그런다고 시집간 여동생이 “오빠 말이 맞다”며 수긍할까. 필자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에게 “민법이 자녀들에게 동일하게 상속하라고 개정된 지 이미 30년이 됐다”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상속세  ·  증여세 감안, 불화 원인 제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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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돌아가신 후 상속재산을 처리하려고 모여 협의하다 크게 싸워 형제 간 의까지 상한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가족끼리 법정으로 몰려가 소송전을 벌이기도 한다. 가족이 살아온 과정, 상속재산의 규모,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부양의 정도 등 개개 가족마다 구체적인 사정이 다른 만큼,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민법이 30년 가까이 규정하고 있는 상속분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상속재산에 관해 협의하려는 시도는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민법이 정한 상속 관련 규정에 따라 분쟁 없이 적절하게 상속재산을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을 상속 관련 제도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부모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15억 원가량 되는 아파트 1채와 약간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 아버지가 먼저 사망한 경우다. 민법이 정한 법정상속분은 배우자 1.5, 각 자녀 1이므로, 배우자가 9분의 3, 자녀들이 각각 9분의 2씩 상속받게 된다. 그런데 연로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다시 자녀들이 상속받게 돼 취·등록세, 상속세를 또 부담해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민법 제1013조에서 정한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 어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상속인인 자녀들이 아파트를 상속받기도 한다. 아파트 상속은 등기소에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제출하고 상속등기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15억 원 상당의 아파트가 돌아가신 아버지 단독 명의라면 상속세 공제한도 10억 원(배우자 공제 5억 원+일괄공제 5억 원)을 초과한 5억 원에 대해 상속세를 부담하게 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세금은 9000만 원에 이른다. 15억 원 상당의 아파트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연로한 어머니의 공동명의라면 2분의 1 지분만 상속되므로 상속재산 7억5000만 원에 대해선 상속세를 부담하지 않는다. 상속세 공제한도 10억 원 미만이 되기 때문이다.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 자녀들만 아파트를 상속받더라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머지 2분의 1 지분을 자녀들이 상속받아 상속세 공제한도(일괄공제 5억 원)를 초과한 2억5000만 원에 대해 상속세를 부담하면 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세금은 4000만 원이다. 

    15억 원 상당 아파트의 경우 단독 명의인지, 부부 공동명의인지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부담 여부가 달라지는데, 부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하는 것이 곤란할 수도 있다. 다만 은퇴 무렵에는 거주 주택을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하는 것이 세금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유 자금 없이 병원비 발생하면 담보 대출이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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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부모의 장기간 투병 생활로 병원비 부담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으로 직접적인 병원비 부담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간병비 등으로 나가는 현금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큰 부담이다. 자녀들이 병원비를 부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만일 부모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 부동산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받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녀들에게 남겨주려고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건드리지 않은 채 충분한 치료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부모가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금이다. 이는 부동산 같은 상속재산에서 공제되는 상속채무다. 상속세는 대출금을 공제한 나머지를 상속재산으로 산정하게 된다. 

    간혹 상당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예금 같은 현금성 자산이 없어 병원비 등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 30억 원 상당의 상가건물을 갖고 있지만 현금성 자산이 별로 없는 한 어르신은 아플 때면 병원비를 걱정한다. 그런데 자녀들이 30억 원 상당의 상가건물을 상속받으면 상속세 6억400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배우자가 있으면 상속세 공제한도는 10억 원이고, 이 10억 원을 공제한 후 10억 원을 초과한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율은 40%가 된다. 하지만 상가건물을 담보로 5억 원을 대출받아 병원비 등으로 쓴다면 대출금이 상속재산에서 공제돼 자녀들은 4억4000만 원의 상속세를 부담하면 된다. 즉 물려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5억 원을 자신의 병원비 등으로 쓰면 자녀들에게 3억 원을 덜 물려주는 셈이지만, 자녀들이 20억 원 이상의 부동산을 상속받을 경우 40~50%에 이르는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대출받은 돈으로 여유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민법은 자녀들의 상속분을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수십 년 동안 부모를 부양하거나 장기간 투병 중인 부모를 간호한 자녀에게 다른 자녀들과 똑같이 상속받으라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다. 이에 민법 제1008조의2는 상당 기간 동거·간호 등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상속인에 대해서는 그 기여분을 따로 상속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속인 간 협의되지 않으면 가정법원이 그 기여한 상속인, 즉 기여자의 청구에 의해 기여분을 정하게 된다. 물론 상속인들이 모여 민법이 인정하는 기여분 제도에 따라 피상속인을 부양하느라 고생한 형, 누나, 또는 동생의 몫을 더 인정하면서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복잡하면 전문가에 맡기는 게 상책

    한편 민법은 ‘제5편 상속’에 제1장으로 ‘상속’, 제2장으로 ‘유언’, 제3장으로 ‘유류분’을 규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은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특정인에게 유증할 수 있는데, 자녀 가운데 1인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유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자녀들은 전혀 상속받지 못하는가. 민법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의 유류분으로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배우자와 1남 2녀가 상속인이라면 배우자는 9분의 1.5, 자녀들은 각 각 9분의 1씩 유류분이 있으므로, 설령 피상속인이 유언을 통해 자녀 가운데 1인에게 전 재산을 유증했더라도 이와 같은 유류분만큼은 반환해야 한다.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 유언의 존재를 알게 된 상속인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치열한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민법이 정한 상속분, 유류분 등을 고려해 자신이 죽은 후 자녀 간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언 내용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 

    가족 간 분쟁이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면 일반 상거래의 분쟁에 비해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가 심하고 관계 회복도 매우 어렵다. 불가피하게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 초기에 이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민법이 정한 상속분, 유류분 등을 고려하고 상속세 등 세금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소송으로까지 이르지 않고 가족 간 감정도 상하지 않으면서 계속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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