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명화담다’의 5층 라운지. [지호영 기자]
9월 초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명화담다(名花談茶)’는 감성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해 눈길을 끈다. 특히 ‘명화담다’가 집중하는 건 ‘문화를 통한 공유’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처럼 지금은 ‘공유경제’가 활발한 시대다. 공유경제는 공간을 포함한 물적 자산과 더불어 재능과 경험 같은 인적 자산까지 필요한 사람과 공유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패러다임이다. 김선영 ‘명화담다’ 대표는 “이곳에 모인 작은 브랜드 여러 개와 소비자가 어우러져 문화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자신들의 자산과 경험을 공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 공유의 형태가 어떤지 알고 싶어 12월 10일 ‘명화담다’를 방문했다.
종로의 부흥 되살리려는 문화 코드
‘명화담다(名花談茶)’는 ‘이름, 꽃, 이야기, 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호영 기자]
‘명화담다’는 이름, 꽃, 이야기, 차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김춘수 시인의 ‘꽃’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 이곳에서는 단골 회원카드를 만들면 주문한 음식을 내줄 때 이름을 불러준다. 익명의 사회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손님들이 이름이 불리는 소중한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루프톱 경관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가을부터 종종 찾아 단골이 됐다는 30대 회사원 김모 씨(여)는 “단골에게 선물로 주는 수제연필이나, ‘이름을 불러준다’는 콘셉트가 독특해 좋았다. 내 이름과 취향을 기억해주는 따뜻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공유와 협업의 장
1 원목 소재를 많이 사용해 따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5층 라운지 모습. 2 생화는 물론, 생화를 특수 보존 처리한 가공화인 ‘프리저브드 플라워’도 판매한다. 3 플라워 클래스가 열리는 플라워&코칭 브랜드 ‘화화코칭’. 4 ‘화화코칭’과 ‘소월길밀영’이 협업한 플라워 케이크. [지호영 기자]
공간은 3층 워크룸, 5층 라운지, 옥상 루프톱으로 구성됐다. 3층은 작업실 개념의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로 1인 기업 10곳이 입주해 있다. 이 공간을 찾는 사람은 작가, 프리랜서 디자이너, 주얼리 디자이너 등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개인 작업과 더불어 필요할 때는 ‘명화담다’의 다른 공간이나 브랜드와 협업해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장한다. 10월부터 워크룸을 이용하고 있는 김무영 작가는 개업식을 5층 라운지에서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했다. 김 작가는 “1인 출판은 협업이 기본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이 공간을 협업의 접점으로 활용할 수 있어 편하다”며 “작품과 관련된 독자 모임이나 클래스도 이곳에서 종종 진행한다”고 전했다.
큐레이션한 서적을 소개하는 ‘작은책방 R’. [지호영 기자]
천연 수제비누 브랜드 ‘지야은솝솝’. [지호영 기자]
‘소월길밀영’의 케이크는 인기 메뉴다. [지호영 기자]
개성 넘치는 디자인 소품을 판매하는 ‘바이어셀러’. [지호영 기자]
플라워코치인 박혜은 씨가 운영하는 ‘화화코칭’은 주제를 넣어 깊이 있게 탐구하는 플라워 클래스로 유명하다. 매주 2회 정기 클래스가 열리고, 상시 클래스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사는 20대 직장인 고모 씨(여)는 얼마 전 플라워 클래스를 수강했다. 그는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나만의 스토리를 담은 꽃다발을 완성하며 속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만났다. 다음에는 천연 수제비누 클래스도 들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5층 라운지는 갤러리 역할도 겸한다. 1년 동안 7명의 상주 작가를 두고 전시 행사가 진행 중인데, 방문한 날에는 구승희 작가의 ‘행복찾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갤러리를 대관하기가 부담스러운 신진 작가들을 위해 전시공간을 내주기도 한다.
루프톱은 멋진 풍경으로 입소문난 공간이다. 멀리는 인왕산과 청와대, 가까이는 종로와 광화문 빌딩 숲, 좀 더 가까이는 인사동과 탑골공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각종 파티와 모임, 어쿠스틱 공연도 열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손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절정이라고 한다.
2030 여성들이 찾는 살롱과 같은 공간
1, 2 멋진 풍경으로 소문난 루프톱. 3, 4 작업실은 협업이 용이하도록 대화하기 편한 테이블과 개인 작업에 적합한 독립적인 책상으로 구성돼 있다. 5 3층은 작업실 개념의 코워킹스페이스다. [지호영 기자]
최근 밀레니얼 세대를 주축으로 취향에 따라 소통하는 살롱 문화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살롱은 프랑스어로 ‘응접실’ ‘사교집회’를 뜻한다. 18~19세기 프랑스 살롱은 성별이나 신분을 초월해 대화와 의견을 펼치며 지식을 나누는 토론장 역할을 했다. ‘명화담다’도 2030 여성들에게 주목하며 그들을 위한 공간, 살롱을 지향한다. 여권(女權)이 많이 신장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김 대표는 “취향을 공통분모로 해 모인 여성들이 뜻깊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아지트 같은 장소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공간은 인사동이나 익선동처럼 한국 고유 문화를 자랑하는 지역과 인접해 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주변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안내소 역할도 맡고 있는 셈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외국인 대상의 한국 와이너리 투어나 이천 도자기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별로 없다.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40년도 넘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을 걷고 걸어 3층으로, 5층으로, 옥상으로 올라가면 나를 기억하고 공유의 체험을 전하는 특별한 장소와 마주할 수 있다. 그런 개인의 기억이 쌓여 문화 콘텐츠가 되고, 손님 모두가 참여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곳으로 성장한다면 ‘명화담다’가 외치는 미래는 금방 현실이 될 것이다.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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