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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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비시장은 ‘구매’ 대신 ‘구독’

가전·청소 서비스까지 다양 … OTT 계정 공유하는 ‘구독료 품앗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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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5-03-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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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성인 10명 중 9명이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GettyImages]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성인 10명 중 9명이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GettyImages]

    “식기세척기를 굳이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을 줄여 부르는 신조어) 할 필요가 있나. 직접 장만하면 초기 비용 부담이 크고, 이사할 때 옮기는 것도 번거롭다. 필터나 소모품을 갈아 끼우기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 대신 식기세척기를 구독하면 설치와 이동을 전문기사가 다 해준다. 6개월마다 무상 점검을 받을 수 있어 관리도 훨씬 쉽다.”

    지난해부터 식기세척기를 구독하고 있는 30대 여성 정모 씨가 한 말이다. 그는 신혼집에 들일 가전을 구매하다가 식기세척기를 두고 고민했다. 필수 가전이 아니고 가격도 부담스럽지만, 일단 들여놓으면 맞벌이인 정씨 부부 삶의 질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매장 직원이 구독 서비스를 추천했다. 한 번 써보고 마음이 바뀌면 구독을 멈추거나 다른 제품으로 교체해도 되지 않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제휴 신용카드를 월 30만 원 이상 사용하면 월 4만 원인 구독료를 3만 원으로 할인해준다는 안내까지 받고서 정 씨는 구독을 결심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그는 “전세를 살다 보니 언제 이사할지 모른다. 또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구독하는 게 훨씬 실용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성인 95% “구독 서비스 써봤다”

    최근 소비시장 전반에 ‘구독경제’가 확산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월 시장조사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과 함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구독 서비스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 이상(94.8%)이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구독한 서비스(복수 응답)는 동영상 스트리밍(60.8%), 쇼핑 멤버십(52.4%) 순서였다. 구독 경험자가 많아지면서 수요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새롭게 이용해 보고 싶은 구독 서비스’를 묻는 질문에 20대는 생성형 AI(인공지능), 30대는 가사 서비스, 40~60대 이상은 건강·생활가전을 가장 많이 꼽았다(표 참조).

    2세 아이를 키우는 30대 이모 씨도 1월부터 청소 서비스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가사도우미는 돈 많은 사람이나 부르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산하고 보니 직장을 다니며 육아와 가사까지 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더라”고 말했다. “온 집 안을 기어 다니는 아이 생각에 자주 바닥을 닦고 싶어도 힘에 부쳤다. 하나 둘 늘어나는 장난감 정리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씨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까지 키우다 보면 서로 예민해지기 쉬운데 주 1회 청소 서비스를 구독하면서 부부싸움이 크게 줄었다”며 “아이가 좀 더 클 때까지는 매달 새 옷 한 벌씩을 덜 산다 생각하고 청소 서비스 구독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OTT·음악·배달까지 11개 구독

    구독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소비자 지출도 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4명(39.8%)은 현재 3~4개의 구독 서비스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매달 내는 구독료는 ‘3만 원 미만’(30.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10만 원 이상’ 지출하는 비율도 24.3%에 달했다.

    30대 직장인 문모 씨도 한 달에 11개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 음악 스트리밍, 유튜브 프리미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멤버십 등 종류도 다양하다. 구독 서비스를 줄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문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게 구독료는 전기료나 도시가스비 같은 필수 생활비”라며 “책을 살 때 돈이 아깝지 않은 것처럼 콘텐츠를 즐길 때도 제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출이 부담되는 젊은이는 구독 건수를 줄이기보다 ‘구독료 품앗이’에 나선다. 영화 콘텐츠가 많은 OTT ‘왓챠’ 사용자와 드라마가 풍부한 OTT ‘넷플릭스’ 사용자가 서로 계정을 공유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OTT 한 곳 구독료만 내고도 두 플랫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동생, 친구와 OTT 품앗이를 하는 20대 윤모 씨는 “혼자 구독하면 플랫폼 하나당 월 1만5000원 이상 내야 하는데, 품앗이 덕분에 5000원만 내고 쏠쏠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며 만족해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구독 시장 전반이 확대되는 상황이다. LG전자의 가전 구독 서비스 매출은 2022년 9629억 원, 2023년 1조1341억 원에 이어 지난해 2조 원으로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생활형 가전 구독 서비스는 할부 거래와 비슷해 초기 투자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또 중간에 더 나은 제품이 나올 경우 쉽게 바꿀 수 있어 소비자 선택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호응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영화·음악 콘텐츠 구독 서비스는 젊은이 사이에서 단순한 즐길 거리를 넘어 필수재나 다름없다”며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 보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비용 지불에 거리낌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만큼 관련 구독 수요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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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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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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