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일시적으로 불안 증세가 덜한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술기운이 떨어지면서 다시 느껴지는 불안감은 이전보다 더욱 심하다.
일반적으로 불안에 대한 치료는 약물치료를 포함한 생물학적 치료와 역동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을 포함한 정신사회적 치료로 크게 구분된다. 이 중에서도 불안증상을 완화하는 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법은 약물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불안하다고 해서 무조건 약물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불안은 사회생활과 직업기능 수행에 꼭 필요한 것일 수 있고, 불안이 심한 경우에도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정신사회적 치료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약물치료와 정신사회적 치료를 같이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불안해하거나, 정도 이상으로 불안이 심해 대인관계나 직업활동에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될 때가 그런 경우다.
가장 오래된 약물치료제, 술
항우울제인 ‘푸로작’은 우울증 외에 불안장애 치료에도 쓰인다.
1960년대 벤조디아제핀이 개발되면서부터 지금까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항(抗)불안제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 약물들은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향정신성 약물이다. 한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0%가 1년에 한 알 이상의 벤조디아제핀을 처방받는다고 한다. 벤조디아제핀 항불안제로는 리브리움, 바리움, 빅탄, 아티반 또는 로라반, 자낙스, 리제 등의 약물이 있다.
벤조디아제핀은 일반적으로 항불안제 혹은 진정-수면제로 분류되는데, 급성 불안과 흥분상태를 조절하기 위한 1차 선택 약물로 이용되고 있다. 경구 투여뿐 아니라 근육 또는 정맥 주사로 신속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졸림증상으로, 벤조디아제핀을 처방받은 환자의 약 10%에게서 나타난다. 다른 부작용으로는 피로감, 어지럼증, 운동장애 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노인의 경우 걸음을 잘 걷지 못해 쓰러져 골절을 입을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한 처음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 운전이나 위험한 신체활동, 기계조작 등은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 약물을 복용하는 동안 술을 마시면 졸림증상이나 호흡 억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부작용은 의사와 상의하면 얼마든지 조절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의 또 다른 문제는 장기간 복용한 후 갑작스럽게 끊었을 때 금단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벤조디아제핀을 장기간 투여한 사람의 50~90%에서 금단 증후군이 나타난다. 가벼운 경우 불안, 불면, 과민성, 피로감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우울, 두통, 안절부절못함, 떨림, 식은땀, 식욕부진, 시력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금단증상은 다량의 약물을 장기간 남용한 환자에게서 흔히 보인다.
벤조디아제핀계 대체약물 개발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외에도 가정의학과나 내과 등에서 벤조디아제핀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병·의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을 동시에 복용할 경우 환자의 뜻과 무관하게 벤조디아제핀을 과량복용할 가능성이 크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다른 약물에 비해 의존성이 생길 가능성은 비교적 낮지만 장기간 복용하면 심리적·신체적 의존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부작용들과 금단증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항불안제를 복용할 때는 정신과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복용해야 한다.
한편 벤조디아제핀의 남용과 내성, 금단증상 등의 문제점을 뛰어넘기 위해 새로운 항불안제들이 개발됐는데,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부스피론이다. 부스피론은 불안 억제 효과는 물론,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는 약제로 진정-수면 작용이 없어 낮 동안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항불안 효과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보다 약하고 효과가 나타나려면 2주일 이상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최근엔 불안치료에 항우울제가 각광받고 있다. 항우울제는 벤조디아제핀의 단점인 내성, 의존성, 금단증상 같은 부작용이 없으며, 여러 종류의 불안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현재 널리 쓰이고 있다. 불안에 효과적인 항우울제로는 삼환계 항우울제, MAO억제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기타 항우울제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푸로작, 졸로푸트, 세로자트, 시르람, 듀미록스 같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와 이펙사, 익셀, 레메론, 스타브론 같은 기타 항우울제가 주목받고 있다. 이 중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는 여러 불안장애, 특히 공황장애와 강박장애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점차 널리 사용되고 있다.
불안을 조절하고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약제들 사이에서 적절한 항불안제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적절한 약물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부작용에 대처하고 내성 및 금단증상을 예방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에 대한 정확하고 완전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약물치료가 정신사회적 치료와 잘 통합되어 시행돼야 한다.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 역시 자신의 불안이 생물학적 원인과 정신사회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불안치료에 쓰이는 항우울제는 습관성이 없으며, 어떤 경우엔 약물을 복용해도 만족스러운 효과를 보려면 일정기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불안은 단순히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관점이 아니라, 생물학적·정신사회적 측면에서 이해돼야 한다. 불안을 약물로 다스리는 행위는 마치 양날을 가진 검(劍)과 같다. 따라서 전문의의 적절한 처방 없이 함부로 복용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