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1, 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고 있다. 두 기업의 점유율 합계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약 50%, D램 시장의 약 70% 수준이며 HBM 시장에서는 90%가 넘는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전통적으로 인텔, AMD, 엔비디아, 퀄컴 등 글로벌 기업이 장악해왔다.
시스템 반도체는 기술 진입 장벽이 높고 제품 수명이 길어 가격 변동성이 적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크고 기술 교체 주기가 짧아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 기업 수익성이 메모리 반도체 기업보다 높다. 지난해 시스템 반도체 설계 1위 기업 엔비디아의 영업이익률은 62.4%,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는 45.7%를 기록했다. 반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35%,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3.6%에 그쳤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경쟁자
최근 국내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한 것도 문제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중신궈지(SMIC)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 확보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자국 기업 성장과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메모리 반도체 육성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양국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력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는 국내 기업에 큰 위협이 된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반도체 기업 육성을 위해 수십조 원을 지원했다. 현재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에 이어 3위인 SMIC의 경우 2023년부터 2억7000만 달러(약 4000억 원) 보조금을 받아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동시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엔지니어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는 최첨단 D램인 DDR5 상용화에 성공해 D램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이 성장을 지속하려면 기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시스템 반도체 분야 투자에도 나서야 한다. CPU, GPU, 인공지능(AI)용 NPU 등 시스템 반도체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2000년대에는 컴퓨터와 태블릿에 탑재되는 CPU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핵심이었다. 2010년대에는 GPU가 그래픽 처리, 암호화폐 채굴, AI 모델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됐다. 최근에는 AI 연산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NPU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T5123’ ‘엑시노스 오토 V7’ ‘파워 IC’(왼쪽부터).[삼성전자 제공]](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ca/b7/f7/67cab7f70428d2738252.jpg)
삼성전자의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T5123’ ‘엑시노스 오토 V7’ ‘파워 IC’(왼쪽부터).[삼성전자 제공]
정책 지원과 지속적 투자 필요
현재 여러 글로벌 기업이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퀄컴과 엔비디아는 스마트폰, TV, 컴퓨터, 자율주행차, 혼합현실(MR) 디바이스 등에 탑재되는 AI의 성능을 높이는 NPU를 개발 중이다. 이외에도 인텔, AMD,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이 자사 AI 서비스를 위한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대비하지 못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만 머무른다면 새로운 시장 창출 기회를 놓칠 위험이 크다.
현재 삼성전자는 TV와 스마트폰, 자동차에 탑재된 AI의 성능을 고도화할 시스템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같은 국내 스타트업도 자연어 처리, 객체 탐지 등 특정 영역에 최적화된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개별 기업의 노력에 더해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과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 확보에 나선 국내 기업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개발 동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