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 골프를 못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알려진 문 전 사장의 인맥은 아직도 상당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문의 사람들’로 불릴 만한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는 문 전 사장의 사람 사귀는 방식이 기존 정치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이른바 ‘자기 사람(측근이나 심복)’을 만드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과 ‘동지적 연대’를 맺는 수평적 관계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금까지도 ‘문의 사람’이라는 표현보다 ‘문의 친구’로 불리길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문 전 사장의 인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해준 기업과 경영학 분야, 둘째는 23년째 계속해온 환경운동 영역, 셋째는 시민사회 활동을 통해 만난 오피니언 리더들과 함께 결성한 각종 ‘포럼 인맥’이다.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들 인맥은 시간이 가면서 네트워크처럼 촘촘히 얽히며 문 전 사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으로 진화해갔다. 마치 문 전 사장이 가장 좋아한다는 나무인 메타세쿼이아 같은 모양새다. 이를 따라가보면 그가 어째서 ‘시민사회 후보’라 불리길 원하는지, 그리고 여야 구도를 뛰어넘는 제3 정치세력의 윤곽이 어떠한지를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다.
이계안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 이재희 인천공항공사 사장, 남승우 풀무원 대표이사, 최열 환경재단 대표, 전재경 생명회의 대표(왼쪽 위부터).
피터 드러커는 지금은 경영학의 아버지이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지만, 국내에는 199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문 전 사장은 유한킴벌리 경영기획실장으로 일하던 80년대 중반부터 드러커의 원서를 접하며 ‘목표관리 경영(MBO)’ ‘지식사회의 도래’를 경영 현장에 적용해왔다. 그가 주창한 ‘경영혁신’ ‘평생교육’ ‘사회책임’이라는 화두 역시 드러커에서 비롯됐다. 문 전 사장의 드러커에 대한 존경심은 2004년 실제 만남으로 이어졌고, 드러커의 미망인이 문 대표를 자식처럼 아낄 정도로 관계가 발전했다고 한다. 2005년 300명의 기업인, 경영학자를 발기인으로 시작된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는 대표적인 문 전 사장의 인맥이다. 이는 2003년 그가 중심이 돼 만들어진 ‘기업의 윤리적 문화를 연구하는 모임’(일명 윤경포럼)의 인맥과 상당부분 중복된다.
유한킴벌리가 벌였던 다수의 혁신 프로그램이 지금도 세계 유수 엠비에이(MBA)의 단골 사례로 거론된다는 점은 많은 경영학자들과의 인연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이재규(전 대구대 총장), 조동성(서울대) 장영철(경희대), 유필화(성균관대) 교수 등이 드러커로 인연을 맺은 학자들이다. 기업인 중에는 남승우 풀무원 대표이사, 이재희 인천공항공사 사장,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신현우 동양제철화학 부회장 등이 친밀한 인사로 꼽힌다.
뛰어난 영어실력을 갖춘 문 전 사장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개근하다시피 하는 국내 몇 안 되는 CEO 가운데 한 명이다. 그래서인지 해외 인맥도 폭넓은 편이다. 대표적인 드러커주의자로 꼽히는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은 문 전 사장을 두고 “한국은 그 같은 인물 1000명을 키우라”며 극찬한 바 있다. ‘가치사슬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대학 마이클 포터 교수와 ‘성공하기 위한 7가지 습관’ 경영철학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 박사와도 인연이 깊다.
[환경운동 그룹과 포럼 인맥] 유한킴벌리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홍보문구로 유명한 기업이다. 이 캠페인을 시작한 주인공이 바로 문 전 사장이다. 1984년 회사에서 나무심기 운동을 시작한 그는 우리나라에서 환경 관련 일을 하는 사람치고 ‘문국현’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활발하게 활동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을 주창해온 그가 숲 가꾸기 운동을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이 환경운동을 통해 묶인 풀뿌리 운동가들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문 전 사장의 정치적 동지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1997년 실업자 구제를 위해 ‘생명의 숲 국민운동’을 펼친 이후 줄곧 보조를 맞춰왔다. 덕분에 환경운동연합과의 인연도 깊은 편. 현재 문 전 사장을 지지하는 지역조직은 대부분 이 단체의 지역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다. (가칭)창조한국미래구상 1차 발기인으로 참여한 구자상 부산환경운동연합 대표와 임낙평 광주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장 등이 단체와 무관하게 개인적 지지의사를 밝혔다.
‘환경재단’ ‘생명숲운동본부’ ‘서울그린트러스트’ ‘136환경포럼’ 등도 문 전 사장의 후원군이다. 학계에서는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김재현 건국대 환경과학과 교수 등이 꼽힌다. 환경운동에서 비롯된 문 전 사장의 인맥은 종교계는 물론 문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도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든든한 버팀목으로는 학계와 재계의 중도적인 지식인도 있다. 문 전 사장은 대표 발제와 자유토론으로 진행되는 ‘포럼’ 형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모임을 이렇게 꾸려나갈 때 단순한 사교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학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희망포럼’ ‘CEO지속가능포럼’ ‘뉴패러다임포럼’ 등 그가 대표로 있는 포럼이 상당수에 이르는 이유다. 이 같은 활동은 자연스레 CEO 모임에서 환경계, 여성계, 노동계로 확장돼 나아갔다. 박영숙 여성재단 이사장과 남윤인숙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등이 그를 지지하는 여성계 인사이고, 변대규 휴맥스 대표와 양길승 녹색병원장 등은 대표적인 포럼 동지로 분류된다.
[학연과 지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 예비주자 그룹에서 탈락하자 중도그룹의 관심은 자연히 문 전 사장에게 모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시민사회 대표 자격으로 합류한 오충일 당대표다. 오 대표는 최근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절반 지분을 차지한 시민사회 진영은 문 후보를 대변자로 여긴다”고 말했을 정도로 문 전 사장에게 직설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다.
김영춘 유인태 의원, 한명숙 전 총리 등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눠온 정치인들이다. 이 같은 우호적 분위기는 최근 이계안 원혜영 의원의 지지선언이 있었고, 최재천 제종길 의원 등은 노골적으로 영입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나라당 인사 가운데는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은 원희룡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그리고 ‘이명박 사람’으로 분류되는 유인촌 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과 친분이 깊은 편이다.
‘문국현 캠프’는 아직은 단출하지만 학계 출신 인사가 많은 게 특징이다.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전재경 생명회의 대표, 김헌태 전 한국여론연구소장이 지근거리에서 문 전 사장을 보좌하고 윤원배(숙명여대), 윤여진(이화여대), 홍종탁(경원대), 조우현(숭실대) 교수가 정책 참모로 활약 중이다.
‘정치는 구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 전 사장은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인물이다. 친노(親盧) 그룹과 거리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같은 경제계 출신인 이명박 후보와는 ‘상극이다’ 싶을 만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 이는 그가 기업 CEO 출신이면서도 시민사회운동을 주도했고 무엇보다 지연과 학연,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활동해온 결과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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