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연휴는 다른 해보다 긴 편이다. 휴식의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각 전문지 기자들이 추천하는 공연, 영화, 전시, DVD를 소개한다.
● 공연
추석에는 부모님을 위한 효(孝) 공연이 많다. ‘MBC 쇼 뮤지컬-추석판타지’가 대표적인 예.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극장쇼를 표방한 이 공연은 가수 남진 현철 김수희와 뮤지컬 배우 박해미가 출연해 트로트와 뮤지컬을 모두 만날 수 있다(9월14~26일, 장충체육관. 1544-1555).
효 공연으로 마련된 뮤지컬은 아니지만 차례음식 장만하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한 공연을 찾는다면 뮤지컬 ‘메노포즈’를 추천한다. 폐경이란 의미의 ‘메노포즈’는 폐경기 이후 여성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네 명의 여자가 유쾌하게 풀어가는 뮤지컬로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뮤지컬 배우 전수경, 개그우먼 이영자, 가수 조갑경 등이 출연해 아줌마들의 은밀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를 춤과 노래에 맞춰 들려준다(10월14일까지, 백암아트홀. 1588-7890).
이 밖에도 주목할 공연으로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흥행작인 뮤지컬 ‘시카고’와 신명나는 우리 가락이 돋보이는 뮤지컬 ‘공길전’이 있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뮤지컬 ‘시카고’는 뮤지컬 스타 최정원 배해선 성기윤 옥주현 등의 호화 캐스팅이 돋보인다.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진 추악한 쇼 비즈니스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 블랙코미디로, 관능적인 밥 포시의 춤과 농염한 재즈 선율로 지난 30년간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다(9월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577-1987).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인 ‘이’의 뮤지컬 버전인 ‘공길전’은 연출가 이윤택 씨가 예술감독을 맡아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해에도 뮤지컬 ‘이’로 선보인 바 있지만 스태프와 배우들이 교체돼 전혀 다른 작품으로 태어났다. 신명나는 우리 가락의 맛을 살리고, 장생과 공길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9월15~30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02-2230-6600).
공연 마니아에게 추석은 명절이라기보다 축제의 판이 될지도 모르겠다. 공연계 굵직한 페스티벌이 이 시기에 걸쳐 있어 연휴 내내 세계적인 공연에 파묻혀 지낼 수 있을 듯하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연극, 무용, 음악, 총체극 등 다양한 공연예술을 만나볼 수 있다. 올해는 특히 ‘도발과 불온’이라는 주제로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16개국에서 온 38개 작품이 서울의 주요 공연장에서 선보인다(9월20일~10월14일. www.spaf21.com). 또 9월 초부터 시작된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은 세계적 명성을 가진 9개국 국립예술단체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축제다. 추석연휴가 있는 9월 말에는 그리스 국립극장의 ‘엘렉트라’와 스위스 플라스마 극단의 ‘미친 밤’, 중국 국립경극원의 ‘백사전’ 등이 상연된다
(10월27일까지. www.ifnt.kr) 이인선 티켓링크 기자
뮤지컬 ‘시카고’, 쇼 뮤지컬 ‘추석 판타지’, 영화 ‘두 얼굴의 여친’(왼쪽부터).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즐거운 인생’(위 부터).
먼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이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 한국 코미디영화의 주류를 이끌어온 김상진 감독의 신작인 ‘권순분 여사…’는 뜨내기 납치범들에게 인질로 잡힌 국밥집 사장 권순분 여사가 펼치는 좌충우돌 이야기. 중견배우 나문희가 제작진의 삼고초려 끝에 주연을 맡았고, 감초연기의 달인 유해진 강성진이 옆에서 웃음을 책임진다.
연인 또는 친구들과 함께 볼 로맨틱 멜로를 찾는다면 ‘두 얼굴의 여친’을 추천한다. 봉태규 정려원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다중인격을 소재로 코믹멜로에 접근한다. 봉태규는 기존의 튀는 연기에서 벗어나 상대를 살려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를 보여주며, 정려원 또한 이중적인 캐릭터를 무난히 소화해냈다.
이 밖에도 이번 추석에는 남성층을 아울러 겨냥한 영화가 많이 상영된다. 40대 고개 숙인 가장들을 위한 ‘즐거운 인생’과 선 굵은 남성 멜로영화 ‘사랑’, ‘두사부일체’의 세 번째 시리즈인 ‘상사부일체’가 그것.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라디오 스타’ 에 이어 내놓은 음악영화 ‘즐거운 인생’은 무기력한 삶에 지친 40대 남성들이 기타를 들고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는 동안 추억과 열정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처음 시도한 멜로영화 ‘사랑’은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거는 멋진 남자 주인공에 주진모가 열연해 매력을 발산한다. 또 ‘상사부일체’에서는 그간 정준호가 열연했던 계두식 역을 이성재가 맡아 또 다른 느낌의 형님 이미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정지원 무비위크 기자
● 전시
화랑가는 추석연휴를 맞아 휴식을 갖는 곳도 있지만, 대중에게 아트의 참맛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에 문을 여는 곳도 여럿 있다.
먼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의 행위예술 1967~2007전’은 일명 ‘퍼포먼스’라 불리는 한국 행위예술의 궤적을 추적해보는 전시다. 행위예술은 ‘일회성’이라는 약점 때문에 많은 행위예술의 실체가 사진과 일부 자료 외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번 전시는 1967년 12월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첫 행위예술이 등장한 이래 한국 행위예술 40년간의 역사를 100여 점의 자료를 통해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10월28일까지. 02-2188-6000 www.moca.go.kr).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는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를 공통점으로 구성한 각기 다른 세 전시를 연다. 백자파편을 재구성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 ‘이수경전’, 수집과 초대의 형식으로 연출한 무명씨의 ‘야릇한 환대전’, 연속컷이 조합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전영찬전’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미감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 작업,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관객들에게 던진다(9월14일~10월21일. 02-2020-2055 www.ilmin.org).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행위예술 1967~2007전’, 일민미술관 ‘이수경전’(왼쪽부터).
야외로 갈 계획이라면 예술마을 헤이리를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북뮤지엄 윌리엄 모리스에서 열리는 ‘윌리엄 모리스, 책으로 펼치는 유토피아전’은 19세기 말 ‘아름다운 책’ 운동을 주도한 영국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말년에 설립한 켐스콧 프레스에서 출간한 희귀본 53종 66권의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10월31일까지. 031-949-9305
www.heyribookhouse.co.kr). 류동현 월간미술 기자
● DVD
추천 DVD ‘본 슈프리머시’와 ‘수면의 과학’(위 부터).
첩보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본 슈프리머시’를 추천한다. ‘본 슈프리머시’는 올 추석에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전편이다. 덕 리먼이 감독한 ‘본 아이덴티티’와 함께 세 편이 하나의 시리즈를 이루지만 ‘본 슈프리머시’부터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을 맡았다. 기억상실증으로 과거를 잃어버린 제이슨 본(맷 데이먼 )이 주인공으로 미국 정부의 비밀조직 ‘트래드스톤’의 계략에 빠졌다가 누명을 벗고 기억을 회복해가는 내용이다. 제이슨 본은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와는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 첩보원으로(기억을 되찾아야 하는 까닭에 미녀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고, 매순간 쫓기는 몸이라 첨단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 영화는 보는 이의 눈을 현혹하는 액션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스토리가 탄탄한 액션영화를 원한다면 ‘식스틴 블록’이 있다. ‘다이하드 4.0’의 흥행으로 다시 한 번 주가를 올린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작품이지만 ‘다이하드’ 시리즈처럼 호쾌한 액션은 등장하지 않는다. 머리 벗겨지고 배까지 볼록 나온 퇴물경찰 잭은 연륜과 노련미로 적들과 맞선다. ‘식스틴 블록’은 삶의 애환과 씁쓸한 감정을 표현하는 주인공을 통해 액션영화로는 보기 드문 깊이를 전한다.
‘대사건’은 옛 홍콩 누아르의 추억을 되살리고픈 이들에게 제격이다. 홍콩을 대표하는 두기봉 감독의 작품으로 홍콩 경시청 경찰과 갱들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특히 도심의 총격 신과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에는 우리가 홍콩 액션영화에 바라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아 조용히 묻히는 듯했지만 다행히 DVD로 출시됐다.
마지막으로 ‘수면의 과학’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간의 뇌를 통해 들여다보는 영화다.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의 작품으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지만 꿈과 현실을 곧잘 착각해 사랑에 실패하는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의 꿈이 주요 배경인 까닭에 영화는 ‘파이(π)’처럼 무한대로 뻗어가는 상상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셀로판지와 마분지로 이뤄진 수공예적 특수효과는 영화의 백미다. 특히 DVD에는 이에 얽힌 감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함께 실려 있어 흥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