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훈의 ‘Skin of Time’ 전시회에 설치된 작품.
성동훈의 ‘무식한 상상과 감각적 실험’(갤러리 모아), 이길래의 ‘응집-나무’(아트스페이스 카메라타), 이재효의 ‘자연으로부터’(금산화랑), 정광식의 ‘돌의 환영’(포네티브 스페이스), 최태훈의 ‘Skin of Time’(터치아트)이다.
이들은 모두 미술계에 잘 알려진 중견 조각가들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다변화하는 현대미술 시대에 장인정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추상적인 작품과 형상적인 작품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조각작품의 현주소를 재해석하고 있는 것. 이들의 작업방식은 여전히 노동집약적이다.
1990년대 중반 이래 국내 미술계에서는 개념과 매체가 미술담론의 주류였다. 최근에는 미술시장의 활황과 맞물려 회화작품이 대세를 이룬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시도는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들 중 4명은 2003년 ‘불혹의 신예들’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 당시 이들은 조소작업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출했다. 30대의 모색기를 거쳐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점점 변화하는 미술환경에서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바로 당시 표출했던 문제의식의 산물로 보인다. 디지털 시대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아날로그처럼.
이길래의 작품을 보면 동파이프의 측면을 이어붙인 뒤, 이어진 단면들을 갈아내 타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소나무 껍질로 형상화했다.
최태훈의 작품은 태고의 신비를 가진 거대한 나무를 거꾸로 선 피라미드 내부나 전시장 바닥과 벽면에 설치해 시간의 축을 표현했다.
이재효는 나무토막들을 접합한 뒤 표면을 갈아내 구체나 유선형의 입체를 만들었다. 때로는 나무에 못을 박고 구부린 뒤 갈아서, 못의 단면으로 이뤄진 표면과 그 아래 그을린 나무덩어리가 묘한 대조를 이루도록 시도했다.
성동훈의 작품은 종교권력에 대한 해학적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다양한 종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상황을 전 지구적 문제로 제기하고자 한 것.
정광식은 검은 돌판을 글라인더로 거칠게 갈아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을 이어붙여 모종의 형상을 암시하게 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 전시회는 9월3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