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모습.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러시아는 2월25일 열린 노대통령 취임식에 세르게이 미로노프 러시아 연방 상원의장, 고려인계 텐 유리 러시아 연방 하원의원, 러시아 가스공사 대표 1명으로 구성된 축하사절단을 보냈다. 노대통령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와 첸지천 중국 부총리를 만난 데 이어 미로노프 의장과 면담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저녁 취임식에 참석한 외국 축하사절단, 주한 외교관, 3부 요인, 정당 대표를 청와대 영빈관에 초청해 취임 축하 만찬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도 러시아 사절단이 초청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날의 ‘자리 배치’. 청와대는 노대통령 옆 자리에 텐 유리 의원이 앉도록 했다.
텐 의원 측근에 따르면 노대통령은 다음날 청와대를 찾은 텐 의원에게 “북한의 에너지 문제에 관해 러시아가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 러시아 축하사절단에 가스공사 대표가 포함된 것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발언이었다. 이 측근에 따르면 텐 의원은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러시아측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노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동북아 프로젝트’와의 연관성 주목
보고서는 A4 용지 11장 분량이며 11가지 항목으로 돼 있다고 한다. 핵무기 개발 포기와 에너지 및 식량 대북지원을 ‘빅딜’하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북핵 해법이 노대통령의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것. 사할린 천연가스관의 한반도 통과 사업(예상경비 27억 달러),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를 잇는 방식의 유라시아 철도 연결 사업이 추진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측은 또한 자금 확보 방안으로 북일 수교와 그에 따른 일본의 대북 식민지 배상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 및 북미 수교를 기피하는 미국 입장과도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
텐 의원 측근은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에너지 확보’인데 현재 러시아 사할린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북한의 요구를 해결해줄 자원이 있다. 북한에 발전소를 지어 사할린 가스를 연료로 공급해주는 방식이다. 또한 유라시아 철도가 한국-북한-연해주로 연결될 경우 러시아는 한국과 연해주 농업(총 경작지 250만ha, 한국 경작지 190만ha)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할 것이며 한국이 연해주에서 생산한 농작물은 철도로 북한에 수송되어 북한의 식량난을 해소해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북핵 해결을 중재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신 그 과정에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시베리아-연해주-사할린 개발’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철도 연결은 대륙 진출 등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가가 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될 것이고 가스관 연결 사업도 한국에 불리할 게 없다는 것이 러시아측 시각이다. 일본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서 벗어나는 안보상 이익이 크다는 것. 무엇보다 북한과 시베리아 (자원)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 일본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러시아측 주장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백서를 통해 발표된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엔 유라시아 철도 부분은 거의 생략되어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의 연계 문제는 전혀 없다. 노대통령은 3월12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선거 때 동북아 계획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안을 짰는데 사실 껍데기밖에 없더라”고 말했다. 동북아 중심국가 프로젝트에 대한 노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의사는 이때 처음 나온 것이다. 러시아의 ‘대담한 제의’, ‘깜짝 아이디어’가 노대통령에게 정말 새로운 영감을 준 것일까.
청와대의 동북아 중심국가 태스크포스팀은 곧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는 큰 틀 짜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